난데없이 출근지가 변경되어 일단 가보게 됐는데 당황의 연속이다. 식사 미제공이라고 들어서
편의점에 들러 식사를 마치자마자 식사 제공된다는 안내를 받았고 당연히 식사비 제공은 절대
안 됐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세요.' 하더라. 열받았다.
첫 현장이라 안전교육장으로 찾아가려니 건설 현장 바깥 건물로 들어가라고 한다. 경비원분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나와서 철문을 열어줘서 들어갔더니 문이 잠겨있었다. 경비원께서 '거기에
그냥 서서 기다려라'고 말하곤 초소로 쏙 들어갔다. 어이가 없더라. 기온이 10도인데 이게 대체
뭐하자는 짓거린가 싶어서 관리자에게 전화해봤더니만 건설현장 내의 경비원분에게 물어봐서
용역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찾아가라고 한다.
또 다시 안전교육장으로 안내해준 경비원분께 찾아가보니 자신은 정확히 아는 것이 없다 하며
102동 지하로 가보라는 말을 했다. 가보니 아무 것도 없다. 황당하군. 다시 관리자에게 연락을
해보니 그냥 거기서 기다리라고 한다. 내가 이래서 새로운 현장 가는 것이 짜증난다.
오늘은 2인 1조로 일하게 됐는데 다들 오락가락하는 듯 담당자는 세대 청소하라고 하고 관리자는
신호수를 하라고 한다. 그래서 둘 다 하게 됐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잡부 겸 신호수가 되었다.
다행히 같이 일하는 분은 괜찮았다.
겁나게 추웠다. 볕도 안 드는데 칼바람이 불어서 완연한 겨울이 되었더라. 옷 좀 두껍게 입고 올걸
괜히 후회됐다. 생각난 김에 이 일기 다 적고 나면 곧바로 겨울옷을 꺼내야겠다. 어쨌든 종일 계속
서서 포크레인이 바닥 부수는 거 구경하거나 포크레인의 이동 및 작업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전부
치워주는 등 전형적인 신호수 잡일거리를 했다.
솔직히 추운 거 빼곤 괜찮았다.
점심은 백반집에서 먹었다. 고기 반찬은 생선밖에 없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그렇지만
자꾸만 아침 식사비로 지불한 5천원이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왜일까. 식사를 마치고 같이 한
반장님과 같이 세대에 올라가서 한숨 잠을 청했다. 물론 밥 먹으러 11시 40분에 출발을 해서
겨우 12시 50분까지밖에 휴식을 보장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고작해야 30분밖에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여기서 좀 많이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신호수 일이 많이 한가했어서 겨우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시바
철근은 아닌 쇠 막대기들과 그것을 나르는 일의 모든 연관 행동을 '아시바'라고 부른다. 왜 그런 건지
몰랐었는데 샤워하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 쇠막대기들을 조합하여 사람이 위에 오르는 조형물을
만들기 때문에 발을 나타내는 일본어 '아시(足)'와 평판이나 발판을 가리키는 '바(Bar)'를 조합한 단어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쨌든 또 하나 배웠다..
하지만 배운 건 배운 거고 일이 엿같았다. 종일 신호수 서는 것도 엿같은데 갑자기 신호수 서다 말고
아시바를 옮기거나 모아두는 일을 시키니 갑자기 '신호수'에서 '잡부'로 직종이 변경된 것. 이짓 하다
열받아서 그냥 막 나가려고 했다.
그래도 일단 참고 열심히 하라는대로 군말없이 했다. 포크레인이 콘크리트 부술 땐 흙먼지 안 일게
물도 뿌려주는 등 아무튼 맡은 바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어느덧 퇴근 시각이 가까워지는데 퇴근을
안 시켜주더라. 대체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어련히 보내줄까 기대를 했다.
그리고 16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더라. 다른 현장이었더라면 이미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다.
분노의 감정을 같이 일했던 반장님과 함께 토로하면서 지하철에 몸을 싣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놀랍게도 이 현장에서는 탈의실은커녕 씻을 곳조차 없어서 안전모에 눌리고 땀에 절은 머리로
돌아가야할 뿐더러 먼지 털이개조차 없어 온몸에 흙먼지가 묻은 채로 지하철에 올라타야 했다.
아무튼 엉망진창이었는데 갑자기 노약자 배려석에 앉아 계시던 분이 자신이 제대로 가는 것이
맞는지 여쭤보시길래 도움을 드렸다.
양손에 무거운 짐까지 있고 거기에 핸드백에 배낭까지 메고 계셔서 짐을 들어드리면서 가시는
길에 조금 동행해드렸다. 수원쪽까지 내려가시는지라 끝까지 가드릴 순 없었고 아무튼 오늘은
어쩐지 하루종일 운이 따르지 않고 돈도 자꾸만 빠져나가서 속상했지만 그나마 선행을 했으니
발걸음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벼웠다.
그 덕분에 애드사운드에서 수주받은 재택근무 75,000원이 공중분해되었어도 참을 수 있었다.
개같은 건 개같은 거지만 그 어두운 감정에 휩쓸리진 않을 수가 있었어. 할머니로부터는 말린
고구마를 받았고 뜬금없이 이웃집 사장님이 호두를 주셨고 이웃집 아는 동생이 아이스티까지
주는 등 의외로 먹을 복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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