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 닮은꼴이라 남들 볼 때 꼴이 참 우습겠다. 아마도 우리는 결혼도 못하고 평생 자가 마련할 수 없겠지.
보금자리 없는 삶이라 남을 품을 수 없어서 아쉽구나. 그래서 겁없이 나와 함께 가자고 손내밀기가 두려워진다.
떳떳하지 못한 환경이라 결혼식을 할 수 없고 변변치 않은 돈벌이라 살 집도 못구하니까 가난의 대물림할 바엔
혼자 살다 조용히 생을 마치는 편이 낫다고 말했던 누군가의 말에 싫어도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미래가 없어도 다행히 현재가 괴롭지 않다는 점에 안도해야겠지. 가진 거 없어도 적어도 자신의 인생사를 돌아
보았을 때 최소한 범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에 위안을 얻는다. 비록 살아오며 상당한 사람을 상처 입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용서받을 수 없고 관계의 회복이 불가하다면 가해자의 신분으로서 잔인하게 깔끔히 잊어버리고
없던 일로 치부해버렸다. 어차피 내가 그렇게 하려고 마음 먹을 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적어도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을 훗날 스스로 깨달은 나는 타인에게 같은 짓을 반복하지 않을테니 나 사람 만든
셈치고 제자를 떠나보내는 스승의 마음을 가져주라. 그런 이기적인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없으니.
이름 없는 피해자에게는 면목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나는 가라앉아 가는 배 위에서 이렇게 잘 살고 있다.
그것만으로 만족하냐고 묻는 친구가 적어도 태어났으면 무언가를 이루고 자손을 낳아 대를 잇기 위해 몸부림
쳐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열변을 쏟아내는 것을 보며 이 세상이 아름답다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겠다만 이미 삶은 어느 정도는 채워진 것이 아닌가. 애초에 그릇이 작았으니 많은 것을 담을 필요가 없었고
그만큼 일찍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할 뿐이다. 축하해주라. 가라앉는 과정이 괴롭기보다 재미있잖냐.
이토록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알맞은 난방 속 푹신한 의자에 몸을 안기고 포근한 조명 아래 달콤한 커피를
한모금 음미할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취미 삼아 공부하는 역사 속에 앞서 스러져간 조상들
중에서 이토록 쓸데없는 고민으로 가득차고 안락한 삶을 산 사람이 있었을까. 이게 어쩌면 신의 자비겠지.
일모도원이라는 단어가 항상 번뜩 생각나면 메아리처럼 계속 머릿속에서 울린다. 갈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 있네.
조바심으로 달려가고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겠지만 누군가는 이쯤 왔으면 됐다고 마음을 정리한 후
노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겠지. 반드시 인생에 있어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목표를 달성해야만 한다는
사명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태어난 김에 무언가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과 자손을 남겨야만 한다는 것 역시 다
자기만족을 위한 게 아닌가.
다만 한가지 남는 가장 큰 우려는 이러한 내 말에 영향을 받은 친구가 스스로 가지고 있는 원대한 목표를 잊고서
서두르던 발걸음을 늦추고 내가 포기를 선택한 것을 곡해하여 선택을 포기해버릴까 하는 두려움이다. 네 열정의
불꽃을 꺼뜨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존경하는 친우가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기를 원하듯이 나는 안락한
영면을 선택했다. 다만 구구절절 이런 말을 늘어놓는 이유는 나처럼 저물기를 택한 누군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봄에는 봄의 정취가 있고 여름에는 여름의 맛이 있고 가을에는 가을의 분위기가 있고 겨울에는 겨울의 따뜻함이
있다. 무수히 계절이 반복되어 바뀌어도 질리지가 않는 와중 같은 풍경이라도 다른 계절마다 색다르게 보이잖아.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며 자신은 실패했다며 자책하고 원망하지 말고 차라리 마음 편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러 다니고 재미있는 것을 찾아 다니는 게 낫지 않겠어? 거기 서 있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라.
색약이 있어 노을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눈에 담을 수 없는 것이 퍽 안타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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