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어쩐지 뭔가 허전하다 싶더라니 넥워머를 지난 번 현장에 벗어두고 그냥 퇴근했다. 어쨌든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사무실 이사라고 해서 한번 도전해봤다. 두 분의 용역과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초장부터
묘한 기류가 흐른다. 한분은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노가다를 50번 넘게 뛰었다며 구구절절 이야기하며
결코 자랑이 아닌데 자랑을 하고 있고 다른 분은 조금 뺀질거리는 인상이었다.
어쨌든 사무실 이사는 간단한 일이라 경험상 땡잡은 거라는 자칭 베테랑의 말을 믿었건만 현장에 한번
올라가보니 사무실과 회의실, 원장실, 비품실까지 통째로 들어올려야 하고 큰 가구도 많은데다 대부분
연약하고 민감한 전자제품 투성이라 굉장히 고생할 것 같았다. 근데 이삿짐 직원분들도 사무실 이전을
한다고 듣고 계약을 한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라. 어쨌든 까라면 까야지.
일단 자칭 베테랑은 자신이 진두지휘하겠다면서 사무실로 올라가 직원분들이 짐을 포장 박스에 담아주면
그것을 구루마에 싣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내려주는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이 사람 특별히 한 일도
없구만. 어쨌든 나랑 뺀질 반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받은 후 건물 바깥 도로로 끌고 나와 화물차에다가 실어
올리는 일을 했다. 저마다의 고달픔이 있겠지만 10톤차량 2대가 운용되었기 때문에 간간히 신호수 역할도
해야했고 올리는 상자나 가구의 무게가 장난 아니라서 체력이 많이 소모됐다.
서로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자칭 베테랑 반장은 어째선지 나를 붙잡고 뺀질 반장 일 못한다면서 뒷담을
늘어놓는다. 솔직히 뺀질 반장이 신호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낸 모습을 봐서 공감은 안 됐고 뒷담 하는
것까진 괜찮은데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서 결국 둘은 사이가 일찌감치부터 틀어지고 말았다.
자칭 고수 반장은 계속 투덜거리면서 앞으론 혼자 일을 하겠다고 난리다. 자꾸만 뒷담화에 나를 초대하려
하지만 어울려주지 않자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여태까지 웬만한 현장에서 후딱 일을 끝내서 3,4시간만에
일당을 받았고 단 한번도 정시 퇴근따위 해본 적이 없다는 무용담을 늘어놓던 남자는 작업 시작 전만 해도
사무실 이사따위 점심 먹기 전에 끝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놓고 완전히 틀어지자 창피한 이유인지 아니면
조바심에 안달이 난 건지 계속 주변 이삿짐 센터 직원들에게조차 '왜 이렇게 일을 답답하게 하냐'면서 연신
화를 냈다.
이삿짐 일을 2번 나가본 내 시점에선 물건 상할까봐 조심조심 운반하는 사람이 자기 빨리 퇴근하고 싶다며
서두르는 사람보다 훨씬 믿음이 가고 일 잘하는 듯 보인다. 결국 점심 먹기 전에 계속 핀잔받은 것으로 짐작
되는 직원분이 '나한테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은 거냐, 싸우자는 거냐?'며 으르렁대자 곧바로 꼬리를 말더라.
직원분과 붙어서 일할텐데 싸웠으니 겁나게 신나겠구만 싶었는데 다행히 직원분이 심성이 고와서 용서해준
모양이다.
물건을 다 화물차에 올리니 14시였고 곧장 동대문으로 이동해 물건 내리고 올리기 시작하니 15시 30분 경과.
그래도 꽤 할만했다. 아쉬운 건 우리 꼰대 반장이 성급히 차문을 열다가 그만 거울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인데
직원분이 뒷목을 잡았지만 그냥 조용히 묻으시려는 듯했다. 어쨌든 물건을 열심히 올리고 가구 배치까지 다
해줬더니 어느덧 17시가 임박했다.
점심 먹을 때 팀장님이 반쯤 진지하게 연장 수당을 시간당 1만원 고정이라 말했고 이때 갭 반장이 정색하며
연장 수당은 3만원이라고 했더니 결국 2만원으로 합의를 봤다. 나, 갭반장, 꼰반장 셋이 머리를 맞대고 이제
어떡할지 회의를 한 결과 일단 19시까지 더 하기로 합의를 했다. 그뒤로도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7시가 됐고
어찌할까 눈치를 보니 갭반장이 '시간 됐다고 마무리 직전인 단계에서 휙 가버리면 너무 의리가 없지 않느냐
우리가 웃으며 잘 해주면 상대도 잘 챙겨주기 마련이다.'라고 말하기에 나도 웃으며, '암요. 인지상정이 제일
중요한 법이죠.'하고 화답했고 일이 다 끝나니 19시 45분이었다.
나름 훈훈한 분위기에서 종료됐다 싶었건만 우리 꼰반장이 돈은 제대로 주는 거냐며 특유의 심통이 잔뜩난
말투로 직원들을 쏘아붙이기 시작해서 초쳐놨다. 공기가 급속도로 냉각되는 걸 느낀 것은 분명 11월을 하루
앞둔 밤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갑자기 직원들 보는 앞에서 업체 사장에게 직접 전화해서 따져대고
팀장 붙잡고 윽박지르고 말도 아니었다. 결국 당초에는 가까운 지하철역까지라도 태워주겠다는 호의조차도
사라졌고 용역 두 분과 터덜터덜 10분 거리의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팀장님도 열받았는지 19시를 45분을
넘겨 일한 것에 대고 '그냥 자원봉사하실 의지로 안 가신 것이 아니었냐, 정식으로 연장 근무를 인정한 적이
없다'는 자세로 나왔고 꼰반장은 갭반장에게 '당신이 연장 근무하자고 해서 이렇게 된 거 아니냐, 나는 원래
17시에 갈 계획이었다'며 남탓을 시전했다.
길 위에서도 두 반장님은 계속 실랑이를 벌이셨다. 갭반장은 '합의했지 않았느냐. 그리고 19시 넘겨서 좀더
일한 건 당신이고 우리는 이건 강요하지도 합의하지도 않았다. 왜 안 가셨느냐'고 따지자 꼰반장은 데꿀멍.
업체에서 안 주겠다하면 그만, 따져서 더 나올 것도 없고 논리도 없어 결국 꼰반장은 '쨌든, 난 기분 나쁘고
앞으론 혼자서만 일할 것이다'는 혼잣말만 늘어놓으며 떠났다.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할 걸 그랬다 앞으론
혼자서만 하겠다 노래를 불러댔고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잡부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나는 현장에
50번 출근해본 고급 인력'이라는 자만에 사로잡혀 빈축을 샀다.
일 끝나고 보수도 그렇고, 정보 나눌 겸 연락처 교환이나 하자고 했더니 '현장일 안 해본 티 그만 좀 내라'
면서 비웃고 가더라. 기분이 나쁠 건 없었고 사람됨이 참 딱해보였다. 갭반장님이랑 같이 두런두런 얘기
나누면서 일을 하고 추후엔 개인 일도 약속 받았는데 그동안 당신께선 그나마 붙어있던 직원과도 결국엔
최후까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앞으로 혼자서만 일을 하겠다 하시는데 부디 그러셨음 좋겠다. 내가
보기엔 3~4시간만에 보내준 건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일을 도저히 못해먹겠어서' 보내버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갭반장님이랑은 웃으며 서로 격려하고 헤어졌다.
결국 기본급 14만원에 시간당 2만원으로 2시간만 연장되어서 18만원이 입금되었다. 꼰반장님이 길길이
날뛸 것을 상상하니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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