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용역은 처음이라 긴장된다. 동행자 4분이 계시니까 괜찮겠지 생각하고 출발. 일단 표시된
도착지는 가까웠었는데 이동하니 1시간이나 걸리는 위치에다 교통편도 거지 같아서 좀 빡쳤었다.
여튼 조식비를 제공해주는 흔치 않은 현장이니 한번쯤 가볼만은 하겠지.
길찾기가 겁나 빡셌는데 어쨌든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용역분들이 안 오시길래 좀
불안하다 싶어 사무소에 연락해보니 오늘 예약 잡은 인원이 나뿐이라고 하더라. 소장은 4명정도
오는 거로 알고 있어서 골치아픈 상황이었다.
어쨌든 5톤 화물차량에 기사님 겸 반장님, 나, 청소 이모가 탑승하고 사다리차 한대가 따라 가는
것으로 현장에 출발했다. 집결지는 부천인데 물건을 내리기 위해 도착한 곳은 저 먼 상도동이다.
일단 시작은 물건을 내리기 앞서 아파트에 들어가 바닥에 흠집이 안 나도록 '보양재'를 깔아두고
이삿짐을 담기 위한 상자들을 올린 뒤에 사다리차로 포장 상자 및 가구들을 내리는 절차로 진행
되었다.
상자는 대형은 이불 박스, 중간 크기는 중상자, 작은 상자는 책 박스라고 부르고 화물칸에는 또
그밖에 아이스박스, 모포, 복도에 까는 깔개, 구루마(끌차) 및 바구니들이 있었다. 어쨌든 명칭
같은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다리차 기사님과 화물 기사님이 워낙 숙련된 베테랑이라 사실
나는 필요가 없었는데 고객이 한창 실력이 뒤떨어지는 초심자가 끼여있으면 좋아하지 않는단
이유로 최대한 티를 덜내기 위해 폐기물을 엘리베이터로 내리고 지상의 잡동사니를 가져오는
잡무를 맡았다. 반장님이 '이런 거 자꾸 시켜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착하시군.
내가 이삿짐 날라보는 게 아예 처음이라 티 안 내는 것은 글러먹은듯. 그냥 막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일단 슬프게도 커피를 마셨더니 배가 아파왔지만 화장실 갔다오겠다는 말을 못하고 무거운 짐짝들을
내리거나 화물차에 오르내리다가 방귀를 뀌었는데 이 나이에 변실금이라도 온 것일까 싶은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했다. 찝찝함을 안고 똥 씹은 표정으로 일하다가 확인해보니 다행히 아니었다.
어쨌든 그후로는 상자들을 베란다의 사다리차를 통해 내리는 일을 했는데 지상 10층의 창문 바깥으로
값비싼 물건이 든 상자를 안전 장치 하나 없이 흔들거리는 판때기 위에 올리는 게 흔치 않은 경험이라
많이 떨렸다. 물건을 밀어내다 실수로 너무 많이 밀어 물건이 떨어지면 어쩌지 또는 물건이 내려가다
흔들려서 추락하면 어떡하지 등등의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물건을 다 내리고 다같이 차에 올라서 새 보금자리가 될 장소로 이동했다. 무려 서울의 동쪽 끝인
강동구로, 일단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삿짐 뺄 때와 마찬가지로 일단 바닥
상하지 않게 보양재를 깔고 엘리베이터에도 커버를 씌워주었다. 그리고 화물 기사님과 이모님이
들어가서 상자를 까는 작업을 하는 동안 나와 사다리차 기사님은 포장상자들을 구루마에 싣고서
위로 날랐다. 힘들었지만 그럭저럭 배우면서 하니깐 할만 했다. 내가 워낙 말귀도 못알아먹고 잘
용어도 몰라서 답답해할만도 한데 다들 웃고 장난치며 일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퇴근 시각을 넘겼는데 화물 기사님이 조심스레 일이 19시 넘어서도 안
끝날 기세라고 말씀하시길래 바로 캐치해서 '추가 수당 괜찮고 한번 시작했으니 끝을 보겠다'고
말했다. 어리석은 짓이지만, 내가 숙련자였다면 더 빨리 끝났을텐데 겁이 많고 조심스러운지라
구루마도 시원시원하게 끌지 못했고 사다리차엔 물건도 조금씩밖에 못올려서 지체되었으니까
유구무언이었다.
하루가 끝날 무렵에야 난 겨우 0.4인분을 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면목이 없더라고. 나에게는
좋은 경험치가 되었을 뿐이다. 장비 이름도 모르고 물건 제대로 나르지도 못하고 분류도 못하고
속도는 굼뜨고 말귀도 제대로 못알아먹었는데도 다들 '처음엔 누구나 그렇다'면서 웃어넘겨줬다.
내일은 다른 센터에서 일하기로 예약이 되어있다 말하니깐 오늘의 경험을 통해 다음 현장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하라는 격려를 해주셨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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