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새벽 4시 알람을 못듣고 5시 반 알람에 겨우 깼다는 점이 불안요소로 작용한다. 어쨌든 늦지
않게 도착했다. 도착하니 한산하다. 한파에다 폭설이라 결근 및 데마가 많은 듯. 교육장에서 환복
하고 있으니까 아직 6시 반인데 제설하러 나오라면서 난리다. 나가주면 착한 멍청이고 안 나가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거지. 당근 안 나간다. TBM도 안 했는데 직원도 아니고 왜?
진짜 더럽게 춥다. 영하 15도에서 제설. 옥상에서 어제 깔아둔 천 위에 쌓인 눈을 삽으로 퍼내서
항공 마대에 담는다. 업무는 단순한데 환경은 극악에 입김이 안전모 챙에 닿아 응결돼 고드름이
맺힐 정도로 좁고 칼바람이 붙었다.
난로불을 낭낭하게 쬐었는데도 나가자마자 1분이면 온기가 온데 간데 없더라고. 눈삽이나 항공
마대가 아직 올라오지 않아서 조금 대기하다가 올라가서 마저 일했는데 갑자기 사람을 2명까지
지원 받길래 내려가봤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옥상에서 항공 마대에 담은 눈을 크레인으로 올려서 지상까지 내려주면 그걸
뒤집어까서 마대를 비우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힘든 건 아니었지만 눈밭 속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안전화 안으로 눈이 들어가서 무척이나 괴로웠다. 눈덩이가 들어가면 발에 상처까지
생길 수 있고 녹아서 양말이 젖으면 영하 15도에 동상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바로 근처에 고체 연료가 있어서 몸을 녹일 수 있게 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시원찮았다. 이건 절대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점심이 되어서 밥을 먹고 안전교육장에 들어가서 신발과 양말을
최대한 말려보려고 노력은 했었다. 다행히 날이 워낙 추운 탓에 눈이 잘 녹지 않아서 양말이 많이
젖진 않았었다. 젖긴 젖었지만.
오후에도 오전의 마지막처럼 항공 마대 비우는 일을 하게 되나 걱정했었다. 역시나 똑같이 불려갔다.
망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다른 데로 또 데려가더라. 그 담엔 야적장에서 화목일을 하는 거였다.
느긋하게 행동하면서 내심 잘됐다고 안도했다. 최소한 여기 있으면 눈 때문에 젖을 일은 없을테니까.
마찬가지로 같이 마대 비우기를 하다가 화목장에 팔려온 용역 분과 눈이 맞아 훨씬 낫다며 얘기하고
행복 노가다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또 지원자 3명 중에 껴서 다른 데 팔려갔다.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참 지랄 맞더라. 4층 타설 예정 지역 철근 길에 보양을 설치 안 해서
철근 사이 사이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는데 그것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치우는 일을
지시 받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참도 못먹고 지원 요청한 팀이랑은 엄연히 소속이 달라서 각종 지원도 못받아서
기분도 잡쳤다. 바람막이도 없어서 계속 칼바람 맞으며 철근 위에 쭈그려 앉아 손가락이나 자그마한
나뭇조각으로 눈을 퍼냈다. 그래도 시간 하나는 기똥차게도 빠르게 흘러가더군. 같이 마대 비우기를
했었던 용역분은 나보다 상황이 안 좋아서 양말이 폭싹 젖은 상태였는데 아마 깔창에 붙여둔 핫팩의
열 때문에 눈이 빨리 녹은 탓인 듯했다. 어쨌든 그분은 난로에 손을 좀 녹이려 장갑을 벗으니 손 끝이
이미 검게 변해서 동상을 입은 상태더라. 푹 쉬면 나을 거라며 내일은 쉴 거라더라.
16시를 지나서 해가 지기 시작하자 바람이 점점 미친 듯이 불기 시작하고 그나마 몸 좀 녹여줄
볕도 없어져서 도저히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이제는 퇴근해도 좋다는 지시가 떨어졌다.
저체온증에 걸렸는지 그나마 춥지 않은 실내에 들어왔는데도 몸이 벌벌 떨리고 전신에 감각이
없었다. 내일도 이런 비슷한 일을, 내일은 영하 18도를 찍어서 더 추울 거라는데 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쉬기로 결정.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서는 서서히 체력을 회복했는데 마침 어제 도착한 발열조끼가 큰 역할을
해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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