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힘들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최대한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천만다행히도
원래부터 외식이나 유흥거리, 게임 등에 돈을 잘 쓰지 않는 생활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인생의
저점에서 수입이 적고 체력도 지식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기초 자산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조건
아끼고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은 원래 안 먹었으니 괜찮았고 점심은 회사에서 제공되니까 최대한 배부르게 먹고 저녁까지
회사 식당에서 야간 근무자인 척하고 먹었다. 주말 점심은 라면으로 고정. 격주마다 헌혈을 할 때
일찌감치 센터 방문해서 과자로 끼니를 채우고 헌혈 후 받은 상품권으로는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최대한까지 머리를 기르고 이발할 땐 군인처럼 삭발을 했다. 의복은 저렴한 재래시장을 이용했지.
고시원에서 살았으니 특별히 추가적으로 돈이 나갈 일은 없었고 교통비도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멀지 않으면 까짓 거 걸어다녔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괜찮았고 취미로 하는 건 대게 집에서 끄적이는 일이라
놀러다니느라 돈이 나갈 일이 없었고 마침 연인도 없어서 최소한 가난 때문에 슬픈 사랑의 역사를
쓸 일이 없었다는 데에는 안도의 한숨까지 쉴 정도다. 스펙을 올리고자 국비지원을 받거나 무료로
강좌를 들어 자격증을 취득했고 봉사활동을 했다. 그 덕분인지 괜찮은 회사에 취직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방심할 수 없었다. 지금도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자산이 그때 당시엔 더더욱이
모자랐으니까. 돈을 더 모아야만 했다. 돈을 굴리려면 돈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점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점차 돈을 사용하게 되더라. 10만원짜리 코트를 구매했고
염색이랑 펌도 했다. 피부과에도 들렀다. 초유의 판데믹 사태 때문에 반찬가게가 줄줄이 폐업했기
때문도 있지만 점점 외식을 하는 비율이 늘어났다. 퇴사 후에 대학교 등록금을 지불하게 되었는데
수업 일정 때문에 벌이가 영 시원찮았기 때문일까 불현듯이 자산이 그다지 많이 모이는 것 같지가
않은 것 같았다. 한번쯤 자신을 반성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작년 여름부터다.
왜 가계부를 쓰면 좋을까?
까놓고 가계부를 쓴다고 해서 용돈이 생기지도 않고 옛날의 내가 그랬듯이 애시당초 통장 자체를
봉쇄해놓고 살았다면 딱히 쓸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쓰긴 해야지. 써봐야 내가 대체
얼마나 정신줄을 놓고 살았는지 체감이 와닿을 것이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사람은 얼마나 버는지
보는 것보다 얼마나 남기는지가 더 중요하거든.
믿기지 않지만 세상엔 의외로 매월 말에 단 한푼도 남기지 않는 사람도 많고 오히려 적자로 끝을
맞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많이 봐왔는데 대부분 공통적으로 돈을 굴리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고 저금리 시대라는 말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예적금을 가입하려고 들지도 않고 앱태크처럼
소소하게 몇백원씩 벌어들이는 건 답답해서 못해먹겠다고 하면서 비트 코인이나 주식은 무섭단
이유로 하지 않거나 또는 제대로 운용도 못하면서 허세만 부리는 경우가 허다하더라. 알고 있지.
여러분은 아마 자신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자격증을 따거나 이직을 꾀할 노력을 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적게나마 큰 노력이 없이 무료로 외식할 기회를 주는 앱태크를 추천하기보다 먼저
가계부 작성을 권장했어야 옳은 순서가 아니었을까 이제사 조금 후회가 된다.
왜냐면 가계부를 써야만 비로소 '돈을 더 벌거나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의지를 굳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를 써야만 매달 내가 진짜로 받는 순수익이 얼마인지를 알 수 있으며
이것을 어떻게 운용하면 좋을지 판단하는 재료가 생기기 때문이다. 월 500만을 번다고 순수익이
500만원인 게 아니야. 월세 등으로 80만원, 식비로 60만원, 교통비 30만원, 게임 30만원, 애인과
놀러다니면서 60만원, 꾸미는 데에 50만원, 스스로를 위한 선물로 50만원, 술값으로 50만원으로
매달 총 420만원을 사용한다면 그 사람의 순수익은 월 80만원인 셈이다. 꽤 흥청망청 쓴 것 같아
보여서 현실감이 없겠지만 회사 다닐 때, 노가다 뛰면서 본 사람들의 지출 내역을 더해본 거라서
가능성이 아주 0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 근데 가계부는 어떻게 쓰는 건가요? ”
가계부를 쓰는 걸 어렵게 생각할 필요 자체가 없다. 괜히 이것 저것 예쁘고 딱 보기 좋게 꾸미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지 혼자 골치 아픈 문제를 만들고 혼자 고민하게 될 뿐. 누구나 폰이 있으니
당연히 달력 어플리케이션이 있을 거다. 거기에다 매일 소비하면 소비한 만큼, 벌었으면 번만큼
적고 매월 말에 계산기 두드려가며 정산만 해보면 그게 가계부다.
그게 귀찮다면 '뱅크 샐러드'라는 어플을 사용해봐도 괜찮다. 자동으로 각종 은행사와 연계되어
직접 등록하거나 작성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가계부가 작성되고 월말에는 보고서까지 주더라.
꽤 괜찮은 어플이었지만 앱태크가 아니라서 딱히 건드리지 않게 되고 나 스스로 매일 가계부를
기록하는 습관이 생긴 뒤로는 저장 공간이 아까워서 그냥 삭제해버렸다.
꽤 괜찮은 점은 주거래 은행인 신한은행에서 제공하는 '신한SOL' 어플에서 가계부 기능이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 저장공간을 줄일 수 있다는 부분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은행 어플
'우리WON뱅킹' 하나은행 '하나원큐'에는 없는 것 같더군.
처음엔 귀찮을테니 '뱅크 샐러드'같은 자동 작성 가계부 어플을 이용해보고 재미를 붙여서
어느샌가 스스로 작성을 하게 되는 단계에 다다르면 내가 하듯, 어플을 이용해보거나 또는
달력을 사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가계부를 써서 시야가 트였다는 사람은 많이
봤는데 가계부를 써서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매스컴에도 소개된
바가 없다. 그러니까 일단 해보자. 소크라테스 형님이 말했던 것처럼 '너 자신을 알' 필요가
있다. 가계부는 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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