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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아무 얘기

생일 축하를 받는 것

by 레블리첸 2021. 4. 27.

 

 

 

 

잔혹한 4월이었다. 열심히 달리다가 그만 손바닥에 부상을 입어서 며칠간 휴식기를 가져야겠구나

생각하고 쉬는데,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했더니 바통터치 하듯 새끼 발가락 발톱이 뜯겨나간 터라

회복에 전념하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4학년 1학기의 중간고사가 닥쳐왔다. 만사가 다 그렇듯 결국

지나갔다. 폭풍과 같은 2주일이 지나고 이제야 좀 걸을만해진 발과 붕뜬 일정만 남았다.

 

 

 

 

 

 

 

 

아직 일을 하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아 상황을 지켜볼 겸 멀리까지 걸어갔다 와보기도 했다. 특히나

이제 더이상 쓸모가 없는 전공서적들을 죄다 중고서점에 갖다 팔았다. 어쩐지 가벼워진 몸만큼이나

마음도 가벼워진 것 같았다. 5월에도 변함없이 바쁜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시험처럼 정신을

흔드는 성질의 일정들은 아니라서 심란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고정된 약속이 아니라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그러고 나면 또 6월엔 기말고사인가. 그때까지만 더 버티면 다시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유유자적한 시간을 되찾을 수 있겠지, 그런 희망을 안고 달리고 있다.

 

 

 

 

 

 

 

 

노가다를 하고 싶어도 발톱이 절반밖에 남지 않은 새끼 발가락으로 궂은 현장일을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시험도 방금 끝나서 적어도 내주가 오기 전까진 할 일도 없기에 온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는데 뜻밖에도 근황을 물어오는 지인들이 있었다. 곧 생일이지 않느냐고.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딱히 학생이라기엔 애매한 지금, 학창 시절에야 당연히 생일이 되면 축하를

받았었고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생일이 되면 군필자들은 알듯이 케이크가 지급되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생일날이면 회사의 차원에서 배려를 받아서 근무 시간 중에 직원들끼리 소소하게나마

축하 겸 케이크 시식 시간을 가졌다. 회사를 그만둔 뒤 방에서 나갈 일 없이 방 안에서 대학 강의를

수강하며 지낸지 2년..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 중에 정말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도

얼마 없고 먼저 다가와주는 사람도 그다지 없다는 사실이 문득 와닿았다.

아마도 모두가 그렇겠지. 그게 따끔하고 불편하게 느껴진 적 없이 모두 결국 자기 경주를 마치느라

바쁜 거지 생각하고 새하얗게 생일에 대해서 잊고 지내던 차에 전혀 생각지 못하게 받은 생일 축하

안부 인사에 어쩐지 가슴이 좀 뭉클해졌다. 발을 다쳐 낑낑거리니 온갖 먹거리를 가져다 주고 직접

붕대까지 감아준 이웃들을 보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덕을 볼 만큼의 덕은 쌓고 살았군' 싶긴 했는데

내가 특별히 기별을 준 일도 없이 생일이라며 찾아와준 지인들이 있다니 감사했다.

돌이켜 보면 이래저래 축복을 받았는지 인생에서 혼자만 남은 시간이 없었는데 유아기는 당연하고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 때도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알 사람은 알겠지만 모 게임을 아주

열심히 했기 때문에 교내에서 항상 조용하던 내가 온라인에선 백명을 이끄는 리더?! 라는 느낌으로

휴대폰 터질 정도로 바쁘게 살았고 블로그 관리나 영상 편집 등의 취미에 쏟는 열정 때문에 오히려

현생을 놓아버렸을 정도였다. 교우와의 추억이 얕은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긴 했지만 아주

고립된 것도 아니라 자칫 '암울한 상황'에 놓였을 수도 있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밝고 명량하게

잘 지냈다. 즉 한마디로 일축하자면 찐따인데도 리얼충이었다.

학교 졸업한 뒤,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을 적 가족도 없고 대학교 동기들은 일찌감치 군대로 떠났고

친한 선후배가 없어서 혼자 밥 먹어야만 할 때는 어땠던가. 가엾게 여겨주었던 건지 동기 여자애가

어울려줬고 고달프다고 징징거렸었지만 이제서 보면 기숙사의 형과 동생들이랑 잘 놀고 다녔으며

그런 와중에도 열심히 게임과 소설에 집중했었다.

군대도 마찬가지로 초반 적응이 힘들었지만 모든 군인들이 그렇듯, 어쩌면 특출나게도 동기들이랑

하하호호 웃으며 해맑게 지냈었기 때문에 외로울 일도 없었으며 마냥 즐거운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회사에서도 역시 초반에 적응이 힘들었지만 어느샌가 잘 적응해서 많이는 못벌어도 평생을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로 사람들에 둘러싸여 즐겁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 그만두고 나와서 노가다 출근할 때를 제외하면 특별히 고시원 방 바깥으로 나갈

일이 없는 현재. 아주 오랜만은 아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받은 생일 축하에 평상시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내 생일 같은 건 신경쓰지 말아달라고 대답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전부를

쳐내고 주변에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쓸쓸한 핀라이트 조명을 맞으며 정말로 나밖에 안 남았나

문득 겁이 나서 주변을 돌아본 후에야 눈에 들어온 발치의 작은 새싹처럼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 저물어가기 때문이겠지. 이제 더이상 어디서도 어린애 취급은 받지 않는다. 어린 육체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젊다는 것만으로 향긋한 내음이 나므로 언제나 찾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슬슬 젊음이 기울어 가며 외부와의 연결 고리가 하나 둘씩 끊어져가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이제사

진짜로 외로워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아마 그래선지 생일을 챙겨준 지인들에 더욱 감사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