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AnyReview/▶ About Anything

치질 수술 후기로는 이 글보다 나은 글이 없다

by 레블리첸 2020. 2. 13.

 

 

 


발단

이놈이 치질에 걸린 이유

 

 

본격적으로 치질이 심해진 것은 아마 군대에서 상병 말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1달에 한두 번 대변을 보는 것이 당연하며 오히려 매일 몇 번씩이나 화장실에 가는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뒤돌아보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진작에 글러먹은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군대에 가서도 변비와 혈변은 계속되었지만 이걸 딱히 큰 문제로 여기지도 않았었다.

오히려 바쁜 훈련과 일과 중에서도 화장실에 갈 시간을 아낄 수가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일병 말이 되어서야 항문에 흔히들 덩어리라고 불리는 치핵이 튀어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의무실에서 진찰받았을 땐 큰 탈이 없는 단계였고 특별히 아프지도 않았었기 때문에

잊고 지낼 만도 했다. 하지만 군 생활을 겁나 못해서 휴가가 많지 않았던 나는 이 치질을 십분

이용하여 일과를 빼는 데에 써먹기로 결정했다. 정말 미친놈이 따로 없다.

이렇게 열심히 키운 치질을 이용해서 병장 때에 이르러서는 한 달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을

의무대에서 보낸 적도 있었다. 전역 후에도 혈변을 본 후 치핵이 튀어나오는 상황이 반복되긴

했지만 죽을 정도로 괴롭지 않았기 때문에 방치하기만 했었는데,

 

 

 

 

와! 변도 안 봤는데 왜 덩어리가 튀어나온 거지?!

 

 

평소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치핵이 항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며칠간 도로 들어갈 생각을 전혀 안 하더라. 사실 이전부터 언젠가 꼭

치질 수술을 받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기회려니 싶었다.

 

 


전개

치질 수술 준비 단계

 

https://www.lezhin.com/ko/comic/kimjerky/1

 

레진코믹스

레진코믹스 - 성숙한 독자를 위한 어른의 만화 서비스, 코믹스 콘텐츠의 프리미엄 채널. 모바일과 웹에서 즐기는 새로운 만화.

www.lezhin.com

▲ 《니 친구 김저키》의 전설적인 1화, 본격 치루 수술 후기를 한번 보도록 하자.

 

 

 

일단 걱정했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야 당연히 병원마다 진찰 단계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미 군대에서 군의관에게 항문 공략을 당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다지 놀라운 경험이지도

않았고 어쨌든 위 만화에서처럼 겁나 큰 딜도로 후장 개통 당하는 일은 없었다. 어쩜 나를

관통했는데 내가 못 느꼈었던 걸지도 모르지. 꽤 할만했다.

특이하게도 치질 사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의외로 상태는 그다지 심각해 보이지

않았고 진단 결과 외치핵 2도 초중반쯤 된다고 말씀해주시더라. 심하게 부은 상태에 오래

방치해뒀던지라 대장암으로 변질된 게 아닌가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치질 사진을

블로그에 게시한다면 아주 독특한 자료로 활용되겠지만 좀 혐오스러울 수 있으니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분홍분홍한 게 아주 예쁘다고 생각이 들었다.

 

 

 

악명 높은 코리트산

 

어쨌든 속전속결이 중요하다 생각하므로 검사받고 바로 내일 일자로 수술 일정을 잡았다.

소변 검사채혈을 한 뒤 엑스레이를 찍고 코리트산이라는 약을 처방받았다. 저녁 식사

마친 다음에 4봉지나 되는 약을 전부 처리하라는 특명과 함께.

코리트산 복용 방법에 대해 말씀해드리자면 500ml의 병을 받았을 텐데 여기에다가 약을

타서 잘 저어준 뒤에 250ml를 마시고 10분 뒤에 다시 250ml를 마시면 된다. 이를 반복해

처방받은 약을 싸그리 처리해주면 된다. 먹방으로 쓰려고 영상을 찍었는데 확인해보니까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서 말았다.

맛은 마치 당분 쏙 빠지고 녹말 부어서 걸쭉해진 비타민약을 마시는 듯하다. 혀에 닿으면

뱉고 싶어지니까 웬만하면 혀에 안 닿도록 하고 삼켰다. 의외로 한 번 들이키기 시작하면

먹을만 하다. 나의 경우는 총 2리터를 마셨어야 했는데 마지막 회차에서는 버겁긴 하더라.

간호사님이 오한 및 가벼운 두통이 있을 수 있다고 첨어해주셨는데 딱 들어맞았다.

먹고 나니 몸은 으슬으슬 떨리고, 이따금씩 내장이 쥐여짜지는 것처럼 아픈데 화장실에선

이렇다할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 그렇다고 눕자니 속이 더부룩해서 미칠 노릇이다. 씻고서

돌아와 앉으니 복통으로 또 미치겠다가 잠시 후 내장이 뭉개져서 짜여진 피를 토해내듯이

설사를 했다. '무라카미 테루아키' 선생의 작품에 곧잘 나오는 관장 장면과 똑같았다.

 

 

 

알고 보니 코리트산이라는 게 바로 관장약이었다.

 

항상 말하지만 병원마다 차이는 있고 내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따로 식사 제공이 안 됐다.

때문에 근처 편의점에서 죽을 7개 정도 샀고 간호사님의 지침에 따라 약국에서 기저귀

구입했다.

 

 

 


위기

입원 준비 단계

 

 

 

※ 2박 3일간 입원하면서 내가 챙긴 물품들과 설명

수건 -> 총 2장 사용했다. 원래 나는 깔끔 떠는 성격이 아니다.

팬티 -> 원래 입고 있던 것 외에 여분 2장이 사용됐다.

텀블러(물통)

안경닦이 -> 안경잡이라 필요할 것 같았는데 안 썼다.

반팔티 -> 환자복 주는 줄 모르고 챙겼다.

바지 -> 환자복 주는 줄 모르고 챙겼다.

이어폰 -> 내 경우 1인실이었는데 그냥 오고 가면서 심심하니까 챙김

슬리퍼 -> 병원과 가까우면 그냥 슬리퍼 신고 가도 되겠다.

세면도구 -> 퇴원할 때까지 샤워 못한다. 샴푸, 클렌징폼, 치약, 칫솔, 면도기만 챙기자.

스마트폰 충전기

-> 단호박죽 3개, 야채죽 2개, 전복죽 2개.

단호박죽 계속 먹으니까 물리더라. 나중엔 토했다.

참고로 배달 음식 시켜먹어도 된다고 하더라.

※ 난 못챙겼는데, 챙겼으면 좋았을 물품

휴지 -> 병실에 휴지가 없었다. 말했으면 챙겨줬을지도 모르겠는데

난 소심한 A형이라 그냥 닥치고 조용히 살았다.

장갑 -> 전자레인지에 죽 데우고 맨손으로 집으니까 겁나 뜨겁더라.

물티슈 -> 간단히 몸을 씻을 수 있을 듯.

뱃속이 텅텅 빈 상태로 오후 8시부터 금식이 진행되어 물 한모금도 못마신 상태로 13시 경

늦지 않게 병원에 도착했다. 곧 입원 및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병실에 짐을 풀고 미리

구매한 1회용 기저귀 한 장을 전해드린 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대로 걸어갔다.

 


절정

맨 정신으로 느끼는 수술 과정

 

 

 

일단 진료를 받던 때와 마찬가지로 옆으로 돌아누워서 엉덩이를 까고 다리를 끌어안았다.

이유인즉슨 허리에 마취 주사를 놓을 건데 척추의 틈이 많이 벌어져야하기 때문이라 한다.

잠시후 마취 담당의가 허리에 넓게 소독약을 바르고 주사를 놓았다. 걱정했었던 것보다는

덜 아팠다.

엎드리니까 마취약이 하반신에 다 돌기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침대가 비스듬하게 세워졌다.

잠시 뒤 허리에 핫팩을 갖다댄 것처럼 한순간 화끈하더니, 본격적인 수술이 진행됐다.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테이프를 붙여서 환부를 최대한 열어젖히는 듯했고, 기구 같은 것이 삽입

되는 듯했다. 무언가가 뱃속을 휘젓는 불편한 감각을 제외하면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레이저 수술로 진행되었는데 내 살 태우는 냄새를 맡고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졸기까지

했을 정도로 무덤덤하고 아프지도 않았다. 대략 30분 정도가 된 것 같은 수술이 끝나고나서

간호사님에게 공주님 안기를 당해 병실 침대까지 모셔졌다. 이후 6시간동안은 베게를 베지

않고 천장을 보고 누워서 30분마다 한 번씩 진통제를 직접 투여해야 한다고 한다.

머리를 들면 하반신에 있는 마취약이 자칫 상반신으로 역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기본적으로 꾸준히 진통제가 투여중이긴 하지만 30분에 한 번씩 별도로 버튼을 눌러줘서

진통제를 보다 많이 투여해줘야 고통이 많이 덜 것이라는 조언에 따라 스마트폰 타이머를

설정해서 30분마다 꼬박꼬박 진통제 투여 버튼을 눌러주었다.

오후 13시 30분부터 수술 준비에 들어가서 수술이 다 끝나고 나오니까 정확히 15시였으니

21시까지 편히 잠도 못자고 뜬눈으로 버텨야만 했다. 하반신 마취가 덜 풀려서 허리 아래로

감각이 없는데 왼쪽 엄지 발가락만 까딱거리는 게 가능했다.

시간이 지나자 무릎을 움직이는 게 가능해졌고 이때쯤 기저귀 상태가 걱정되어 확인하려니

가랑이 사이에 스펀지 같은 게 있길래 양발이 붙지 않게 넣어둔 건가. 싶었는데 내 성기더라.

빵터지면서 발기가 될까 궁금했는데, 불과 몇분전까지 후장을 레이저로 지졌던지라 성욕이

한없이 0에 가깝고 그럴 체력도 없어서 실험은 포기했다.

 

 


결말

입원 분투기

 

 

 

<1일차>

진통제랑 수액 링거를 2박 3일동안 달고 지내야 해서 이동이 괴롭고 번거롭기 짝이 없다.

21시 찍자마자 마취가 풀려서 처음 일어나 야채죽과 단호박죽을 먹었다. 이후 첫 소변을

보았는데 역시나 후기 만화처럼 드라마틱하진 않더라. 아마 수술 직전에 소변을 본 덕인

듯 하다.

그런데 이때부터 항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투여해준 진통제는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싶다가도 이것조차 없었다면 정말 생지옥이었을 걸 생각하니 오싹하더라. 마치

항문에 가시 돋힌 싸인펜이 박혀있는 듯 끔찍히도 괴로웠다. 등받이에 기대어 하루종일을

반쯤 누워서 힐링하며 한국사 공부를 하려고 했던 내 예상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자정쯤 당직 간호사가 진통제를 놔주자 지속 데미지가 70%쯤 완화

되었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2시간 뒤 새벽에 똥꼬에 불난 것 같은 고통으로

눈이 뜨여졌다. 마치 후장에 알보칠을 계속 들이붓는 것 같군. 이렇게 괴로울 줄 알았다면

그냥 달고 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아마 고통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계속

항문에 박혀있는 거즈 때문일 수도 있다.

<2일차>

오전 2시에 깨서 위에처럼 고통을 참아가며 글을 쓰고 결국엔 6시까지 뜬눈으로 지새다가

새로 진통제를 맞은 뒤 전복죽 하나 먹었다. 최초로 기저귀도 갈았는데 예상했었던 것보단

양호하더라. 분뇨로 뒤죽박죽일까봐 겁났었는데 수술에 쓰인 약품과 진물뿐이었다.

오전 9시부터 드디어 좌욕기 사용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좌욕을 했다. 이후로는 쭉 졸며

시간 보내다 오후 12시 20분에 전복죽 1개 먹고 머리 감고 다시 5분 좌욕했다. 이에 더해서

항생제 3봉지를 받아 꾸준히 복용중이다.

양반다리로 앉으면 고통이 극심하지만 기대어 눕거나 아예 눕고 일어나있으면 또 멀쩡하다.

아마 거즈 때문일 거다. 13시 30분 경 원장님이 내 병실로 찾아오셨고 거즈를 교체해주셨다.

후기를 찾아보니까 수술 후 제거된 치핵이나 거즈를 환자에게 보여주는 매니악한 병원들도

있다고 들었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내가 통원한 병원은 그렇지 않더라.

아무튼 거즈 교체 후 확실히 고통이 덜어졌다.

대변은 수술 후 5일째부터 보는 것이 추후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시더라. 정자세로

앉아도 큰 부담이 없고 괄약금에 힘이 들어가도 크게 아프지 않다. 저녁 8시에 전복죽이랑

단호박죽을 먹고 항생제 알약 복용한 뒤 10분간 좌욕했다.

이때 거즈가 빠졌는데 뭐, 그만큼 직장 내 붓기가 빠졌다는 얘기니 좋게 봐야겠지. 좌욕 후

둔부를 씻은 물을 보니 분홍빛을 띄고 있더라. 리뷰에 따르면 약품이라고 한다. 피일 수도

있고.

<3일차>

지난 밤 10시쯤 이불을 머리맡에 올려서 기대었는데 간호사님이 깨워서 이불 덮어주시지

않고 그냥 불 끄고 가버리셨는지 새벽 2시쯤에 추워서 깼다. 그리고 이불을 덮고 전기장판

3단계까지 올리고 잤더니 이번엔 6시에 몸에 열이 너무 많아서 깼다.

어지럽고 속도 메슥거려서 죽을 지경이며 몸 전체가 뜨겁다. 퇴원하는 날이게 뭔 고생이람?

어쨌든 마지막으로 단호박죽을 먹었는데 곧 토했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인지 아니면 계속

죽만 먹어서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후 엉덩이에 주사 한 대 맞고 2일치 항생제를 받은 뒤

짐을 챙겨서 퇴원했다. 좌욕대를 줬는데 그냥 대야일 뿐이라 쓸모 없어 보여서 그냥 쓸만한

좌욕기를 하나 사기로 했다.

퇴원하니 눈이 오더라. 기상 정보 봤을 때 눈소식 없길래 우산도 안 챙겼건만. 올해부터 3재

라더니 아주 운수대통이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니 몸에서 약품 냄새가 진동을 한다.

<수술 후 4일차>

집에서 맞는 치질 수술 후 첫날. 계속 진물이 나서 기저귀를 갈아줘야하고 매일 3번씩이나

좌욕을 해야 한다는 미션 때문에 오전 6시에 일어나 좌욕하고 아침밥, 약 먹고 도로 잤다가

13시에 일어나 점심 및 약 먹고 좌욕한 뒤 병원에 출석했다. 정말이지 생활 패터만 보면 참

건강하기 짝이 없는데.

어쨌든 항문 상태는 벌써부터 꽤 많이 호전됐다. 금연 아닌 금변이라서 계속 배에서 소리가

나서 쪽팔리며 아직 수술 후 대변을 본 적이 없어서 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뿐.

어쨌든, 진료비 8만원입원 및 수술비 50만원 그리고 왕복해서 진료받을 때마다 6천원

비용이 들어가 통장에 꽤 타격이 있지만 나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 받았다고 생각이 든다.

무척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고, 아직 경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만족스럽다.

 

 

 

 

 

 

 

 

 

https://blog.naver.com/ravlitzen/221779173330

 

치질 수술 후기로는 이 글보다 나은 글이 없다

​​​​발단본격적으로 치질이 심해진 것은 아마 군대에서 상병 말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blog.naver.com

-2020년 1월 20일, 첫 치질 수술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