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지독한 외로움과의 사투였던 것 같다. 일단 시작부터가 그다지 훌륭하지는
못했다. 시급 5만원인 줄 알고 쾌재를 부르며 달려나갔던 현장은 일당이 5만원인데다가
밤늦게까지 붙잡혀 있는 것도 끔찍한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바람직하진 못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맞물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아이스크림을 3개피나 연속으로 불태우고
잠을 잤는데 눈을 뜨니 오전 11시로 약속 시간에 거의 지각이나 다름 없는 상황!
그래도 이 암울했던 추석에서 꼽을 수 있는 유일한 빛이라면 추석 황금 연휴 첫날
오랜만에 친구들의 얼굴을 보았고 간밤의 설움을 토로했으며 맛난 음식들을 먹고
보드게임을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것. 어쩌면 그후 이어지는 5일간 외로움에
사무쳐야 했던 건 이토록 따스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을까...
느긋하게 쉴 수도 없었다. 생각해보니까 내 본분은 대학생이더군. 일본어 초급2 강의,
토익 중급2 강의를 듣고 각각 과제를 처리하고서 남은 교양 강의도 들었다. 즐겁구만.
룸메이트 녀석도 추석이라고 지방으로 내려가 버려서 집에는 나밖에 없다. 이게 뭔가
해방감이라도 주면 좋았을텐데, 나이 서른에 독신이 여기서 더 해방감을 느낄 요소가
무엇이 있겠어. 인생 자체가 구속이 없는걸.
기운이 없기에 시장에서 장어구이 하나 사먹으면서 탑툰 보며 《라스트 오리진》이나
했다. 아니, 오토 피규어 전시 게임이니 했다고 해야 할지 보고만 있었다고 해야 할지.
JLPT N1 공부는 좀처럼 손에 안 잡혀서 책만 펼쳐봤던 것 같다.
사실은 이렇게 무미건조하게만 지냈으면 적어도 평타는 쳤을텐데 시장판 장어구이가
문제였었는지 아니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인지
체한 것으로 추정되는 몸상태가 되어 거의 2일간 두통과 씨름하며 앓아누었다.
근데 사실 아픈 것보다는 외롭고 무료하다는 심리적 부담이 더 컸는지 당장 노가다판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추석 연휴날의 마지막날까지도 침대에서 식은땀에 흠뻑 젖어서
끙끙거리다가 가다 인력 사무소에서 주는 친근한 현장을 놓쳐버려 결국 목요일까지도
쉬게 되어버렸다.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이더군.
연휴는 조졌고 어쨌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얼른 노가다나 뛰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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