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사람을 만났었다. 집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몸과 마음과 통장은 편안하지만
이게 과연 청춘인가 걱정과 함께 어쩐지 지울 수 없는 공허함이 자꾸 속을 갉아먹는 것 같아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봤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주식, 남자, 여자, 비트 코인, 회사.
그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공통 화제는 역시 결혼이 얽힌 연애 이야기다. 여긴 모두 외로워서
나온 사람들 뿐이니.
솔로인 친구, 연애중인 친구들 이야기를 라디오처럼 들으면서 음료수를 마시는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스스로 한 번도 연애를 못해봤고 영원히 혼자서 살듯 하다면서
불안해하는 친구A에게 친구B가 자신은 여친도 있고 그냥 잠만 자는 관계인 여사친도 3명이
있는데 관계가 복잡해지고 깊어질수록 골치만 아파지니 그냥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격려를 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나라도 살짝 분위기가 냉랭해진 것을 느꼈는데 뭐, 어차피
오래 볼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서 대단하다 부럽다는 식으로 맞장구를 쳐주고 친구A에게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만남 어플을 써보거나 만나보려는 노력을 해보면 언젠가는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며 다독였던 것 같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원래 가진 놈은 더 가지고 없는 놈은 없는대로 사는 법이다. 불공평하다
여겨지겠지만 타고나는 놈이 있거나 어렵지 않게 손에 거머쥐는 놈이 있는가하면 누군가는
그 무언가를 위해 피땀 흘리며 주경야독을 해야 한다. 그 노력의 갭 때문에 간단히 열등감이
발생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열등감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떤 친구는 여자를 못만나봤는데 어떤 친구는 여자가 주변에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고 하지.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훗날에 다른 술자리에서 여사친C가 친구B랑 잠만 자는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여사친C는 친구B랑 진지하게 교제하고 싶은데 친구B는 결혼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고 말하며 선을 그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여사친D가 친구B랑 사귀는 사이고 심지어
여사친D는 여사친C가 친구B랑 곧잘 잠자리를 갖는다는 걸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말이지
머리가 어질해지는 상황이었다. 여사친D는 친구B랑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친구B의 마음을
돌리거나 휘어잡을 자신이 있다고 한다. 여사친C는 언젠가 자신에게 기회가 올 거라 믿는다.
모솔 친구A는 여사친C에게 호감이 있지만 상대는 이를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친구A가 아니라 여사친C나 D가 안타까웠다. 친구A는 회사 생활도 잘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조건이 충족되면 결혼해서 얼마든지 평범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C나 D는 점점 불리해진다. 듣자하니 나랑 동갑인 친구B는 21살 여사친E랑도 만나고
있다고 한다. 완벽한 제3자인 나는 깊은 사정까진 잘 모르는데 D는 조울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친구B는 남자들끼리 모이면 곧잘 E랑 통화하며 깨를 볶는 걸 보니 친구B는 E랑 뭔가
더욱 깊은 관계를 원하는 것 같았다.
정리하자면,
친구A -> C를 좋아함
친구B -> C, D, E랑 사귐
친구C -> B랑 사귐
친구D -> B랑 정식 교제중
여자E -> B랑 사귐, 21살
못난 사람이랑 결혼을 해서 여생동안 고통받을 바에는 평생 훈남 재벌의 첩으로 살겠다고 하더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뜯어고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괜히 긁어 부스럼이니까 그러려니한다.
첩인 관계에서만 그치는 것을 당신께서 진정으로 바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리 지식을 얻고 문명을 쌓아도 결국 우리는 생명체고 동물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남자들은
가능한 많이 씨를 뿌리고 싶어한다. 그걸 절제 못하면 짐승 같은, 좋게 말해서 원초적인 놈이 된다.
또한 여자는 남자에게서 충족받고 싶어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경제 능력을 본다.
공식적으로 일부다처제가 있었던 과거를 보자. 가깝게 조선 시대만 봐도 얼마나 본처들이 남편이
애첩을 만나 외도하면 괴로워했는지 여자간의 심리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적어도
황후와 후궁의 사이가 각별하고 그런 사이가 끝까지 갔다는 사례는 없진 않겠지만 특이할 테지.
그럼에도 일부일처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나라에서 일부다처제가
부활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 연예인의 첩이 되고 싶다면 그리하고,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고 싶다면 그리할 수 있게. 연애중인 훈남 또는 유부남의 또 다른 연인이 되고 싶다면 그리 하게.
세컨드가 되어도 좋다고 했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친구A 같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본인은 더욱 각고의 노력을 해서 능력을 만들면 될 일이잖아.
그것이 불공평하다 느낄 수 있다면 산꼭대기에 올라 높은 곳의 바람을 느끼는 것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사는 곳이 바닷속이라면 입을 벌렸더니 해수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원래 세상은 불공평하니까.
일부다처제가 되면 여성들은 능력이 있는 남자를 쫓을 것이고 그 파벌 내에서 경쟁력을 만들고자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국가의 차원에서 희망적 관측을 가지고 있다. 미소적으로 보자면 개인들이
애를 가지든지 말든지 최대의 행복을 꿈꿀 수 있으니 됐고 저속하게 말하자면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가련한 부인들이 밤거리로 쏟아져나올테니까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을까 기대도 된다. 돈을
많이 쓰게 될테니 이게 바로 진정한 낙수 효과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 관광업, 서비스업도 호황을
맞게 되겠지.
그렇다면 역으로 일처다부제는 왜 어려울까? 그건 남자라는 생명체가 독점욕이 심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수컷은 암컷이 자신의 핏줄을 잉태할 가능성이 낮으면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된다. 사실은 나도 일처다부제가 더 꼴린다. 이런 나라도 능력있는 재벌 누나가 데려다
애첩 삼아 가지고 평생 가지고 놀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꿈을 꾸는 건 남녀에 구분이 없다. 그런데
일부다처와 일처다부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를 저울질해보니 전자가
더 가능성이 높은 듯해서 그쪽에 투표했을 뿐이다. 왜냐면 남성은 태어나면서도 유전자에 깊숙히
박혀있는 생존 전략상 끊임없이 상위의 계층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게 되고 따라서 재벌가들의
수장은 다수가 남성이다. 여성은 개인의 행복과 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평생동안 근로하면서
경쟁한다는 건 절대 행복한 일이 아니라 최상위 계층의 자수성가한 여성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다.
재벌 여성이 재벌 남성보다 많은 국가가 있으면 말해주라.
그런데 가뜩이나 수도 적은 재벌 여성이 능력이 닿는대로 훈남들을 모조리 채가서 유부남 만들면
능력없는 중하위층 여성들은 그야말로 평생 말라죽는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나마 머리수라도
많은 재벌 남성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게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 골치 아픈 청춘들의
번뇌를 안주 삼아 음료나 들이켰다. 아무려면, 행복이 우선이지.
친구A는 듣자하니 사내 커플이 되었다는 듯하다. 친구B는 여전히 C, D, E를 만나고 있다. 아마도
C, D, E는 다들 행복할 거다. 와중에도 나만 여전히 솔로인데 적당히 25살 때 즈음 전쟁이 터져서
이미 죽었는데 신이라는 자의 은총으로 목숨만 연장하여 또 다른 세계선에서 본래의 남은 수명을
태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낫고 행복하다.
아아- 소난다.
'현재 세계선'의 '이 차원'에서만 【싱글(Solo)】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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