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202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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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살이든 타살이든 죽으면 제가 가진 모든 자산은 임준현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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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시점에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을 비롯 모든 은행 잔고의 총액을 합한 액수만큼 임준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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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임준현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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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책임을 물지 않고 앞서 작성한 계약 내용대로 이행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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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가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을 경우에 위 내용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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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녀석이랑 살고 있는데 현재 살고 있는 집 화장실 바닥이 심히 미끄러워서 몇번이나 넘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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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다칠 뻔했다. 잘못 넘어져 머리 부딪히면 바로 황천길 직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 혹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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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넘어져서 거품 물고 쓰러지면 친구 녀석에게 119에 신고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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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호흡을 하지 않는 게 확인되면 그후 30분 후에 119에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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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괴로운 일이고, 목숨을 잃을 기회가 찾아왔으면 붙잡아야 한다. 괜한 동정심으로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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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언젠가는 현장에서 궂은 업무들을 도맡기 때문에 가끔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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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운이 따르지 않아서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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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해서 모든 돈은 결국 어떻게 되겠나 생각해보니까 차라리 친구 녀석이 알뜰살뜰히 사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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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이 그나마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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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복학까지 하고 학기중이나 방학중에도 꾸준히 노가다를 뛰는 한편 재택근무까지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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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까지 해가면서 열심히 사는 이유는 죽을 수는 없으므로 잘 살기 위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죽으면 모두 무용지물인데 어쩌면 그 상태가 내가 가장 바라는 형태일지도 모른다. 사는 게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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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의미를 못느껴서. 언젠가 글을 적었는데 생명체들은 기본적으로 번식하는 것이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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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가죽을 남기는 데에 의미를 느끼는 별난 생물이다. 허나, 가죽보다는 가족을 남기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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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유의미한 일이다. 죽으면 만사가 당신에게 무용지물인데 가죽이 남으면 무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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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세상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가죽을 만들진 못했으나 적어도 친구가 복권의 2등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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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되었다 생각될 만한 돈은 벌었으니 이 누추한 가죽이라도 친구의 미래를 위해서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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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내 친구도 이런 나에게 감화 받아서 사망하면 가까운 친구에게 전재산을 양도해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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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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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애도 안 하고 결혼도 포기한 청춘들이 많다. 그런 청춘들이 인생에 의미를 찾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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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미래를 위해 돈만 벌고 있다. 그런 친구들이 맞이할 종착 역의 비슷한 형태를 이미 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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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판과 고시원을 전전하면서 가족 없이 지금 당장과 어쩌면 미래를 위해 계속 돈만 모으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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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하는 사람들은 많이도 봐왔다. 그렇게 열심히 모은 재산들은 노잣돈으로도 못쓴다. 어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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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뒤에 남은 세상일엔 미련따위 느끼지도 못할테니 떠난 사람 걱정은 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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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사람은 미련하게도 대신 안타까워 하며 혀를 차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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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내가 남길 가죽은 남겨진 사람에게 남겨져서 누군가를 대신 안타깝게 만들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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