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우리나라의 인싸들 사이에서 마라탕 이야기로 떠들썩했을 때 굳이 마라탕 가게 찾아가서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먹었는데 그후로 시간이 좀 지나 한번 마라탕이나 한번 먹어볼까? 했더니
모 가게에서 매우 비위생적으로 마라탕을 조리하던 것이 적발된 것을 시작으로 '모든 마라탕을
다루는 가게는 비위생적이더라'는 고발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경험해보기를 포기했었다.
마라탕을 굳이 먹어야 할 이유도 없고 굳이 먼 동네까지 마라탕 먹으러 갈 바에는 집 근처 자주
찾는 국밥집에서 4,500원에 뜨끈한 콩나물국밥 하나 주문해 날계란을 풀어서 먹으면 충분하지
않느냐 생각했는데 동거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더라.
설마하니 '밀키트'를 통해 집에서 마라탕을 만들어 먹게 될 줄은 몰랐다.
친구는 나름대로 요리를 즐기기도 하고 본인 나름의 확고한 신념까지 있는 녀석이라서 언제나
그렇듯이 주방에서의 지휘는 그 친구가 담당하고 나는 조용히 옆에서 보조적인 잡무를 돕는다.
사용이 끝난 식기구를 즉시 설거지한다거나 주방이 너저분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즉각 비닐
등의 쓰레기를 버렸다. 요리를 즐기는 남자에 관심이 있으면 덧글을 남겨주시라. 소개 시켜 줄
수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포장 상자에 조리법이 적혀있고 재료는 진공 포장이 되어 있기 때문에 뜯어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 같더라. 키친타올을 이용해서 고기의 핏물 좀 제거해달라는 부탁
받긴 했는데 화장할 때처럼 톡톡 두드리고 보니 굳이 할 필요도 없겠더라.
레시피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냥 물을 붓고 준비된 재료들을 순서대로 넣어 끓이면 끝난다.
별로 기대는 안 했는데 마라탕이 끓고 있는 냄비와 방안에 퍼지는 그 중국음식 특유의 향기를
맡으니 꽤 그럴싸한 것 같더라.
땅콩으로 만든 어쩌구 소스가 있는데 아무튼 마라탕에 있는 재료들 건져서 찍어 먹어보니
왜 마라탕이 여성들을 매료해서 단박에 인싸 음식이 되었는지 알겠더라. 기본적으로 기름
둥둥 떠다닐 정도로 기름져서 밥을 말아먹기 꺼려지는데 중국에선 거지 근성이 있는 자를
두고 '마라탕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을 놈'이라고 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주재료는 보통
야채, 버섯이기 때문에 먹고 있으면 웰빙 내지는 비건 푸드를 먹는 듯해 건강하게 먹는단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적당히 매콤한데 이름 모를 땅콩 소스는 은근한 단맛이 있어 한
번에 두 가지의 복합적인 맛을 즐길 수 있어 맛이 입체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간단히 말하자면 기름덩어리라서 맛있는데 건강하게 먹는 거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니까
인기가 있는 거다. 중국에서 온 재료들이라 내겐 익숙한 향이 안 나는데, 고수처럼 호불호
강하게 갈릴 만한 것들도 아니라서 '별미'로 여겨지기도 하고.
밀키트 자체를 집에서 조리해본 것도 처음인데 마라탕도 처음 먹어서 프레시지 밀키트의
퀄리티가 어떤지 가늠할 수 없었는데 일일 주방장인 친구가 평가하기를 고기가 가게에서
파는 마라탕의 1.5배 정도로 많이 들어있었고 무엇보다도 집에서 직접 조리해먹기 때문에
위생적인 면에서 안심된다더라. 가격은 2인분에 대충 1만 8천원 꼴이라 동네 마라탕 가게
가서 먹는 것보단 비싸지만 고기가 많으니까 인정하겠다고 한다.
친구도 내 블로그를 보고 내가 본인에게 어떤 뒷담을 하는지 체크하기 때문에 직설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데 지가 뭔데 인정, 비인정 여부를 판가름하는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우리
우정을 위해 이 내용은 친구가 못읽도록 독자와 나 사이의 비밀로만 간직하자.
나는 떡볶이를 내 여자 친구가 먹자고 할 때만 먹는다. 그것마저도 식사 대용으로 할 수 없다.
맛있지만 밥을 볶아먹지 않으면 배가 안 부른데다 그렇게까지 먹기에는 가성비가 안 좋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순대국밥 한그릇씩에다가 모듬순대 하나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까지도 밥먹고 싶단 의욕이 안 생길 정도로 배가 빵빵해지게 먹을 수 있다.
이번에 처음 마라탕을 먹어보니 느낀 건데 나는 여자 친구가 원하지 않으면 마라탕 먹으러도
굳이 안 갈듯 하다. 차라리 이 돈이면 6,500원짜리 한식 뷔페 가서 배터지도록 먹고 후식으로
뜨끈한 무료 믹스커피 한잔 마시고 챙겨온 박하사탕까지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별미이기는
했는데 일단 그다지 배가 안 불렀고 비싼데 밥 말아먹기엔 좀 그렇다. 여자 친구가 안 생기니
다음 마라탕을 먹는 시점은 30대 중후반에 결혼하고 난 이후가 되겠군.... ;ㅅ;
프레시지 마라탕은 그런 의미에서 괜찮았다. 요잘알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 정도라면
프리미엄급 마라탕이라고 하니 이젠 어디 가서 마라탕 먹어봤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만약 동네에서 파는 6,000원짜리 마라탕 가게 가서 먹었으면 고개 갸우뚱거리며 우리가
먹은 게 제대로 된 마라탕인지 모르겠으니 다른 가게 가서도 한번 더 먹어봐야겠다면서
비용을 배 이상 지출해야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집에서 해먹는 거라 설거지가 귀찮긴 했는데 만약 당신 여자 친구가 마라탕을
먹고 싶다고 칭얼대면 밀키트 주문해서 라면 만드는 것만큼 간단한 레시피를 따라 하며
요섹남에 빙의해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요리 후 같이 맛있게 식사 마치고
깔끔하게 설거지까지 마치면 아마 여자친구분은 속으로 '결혼할 남자를 찾았다'고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애니 보러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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