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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근무 일지

2022년에도 언제나 사람 빡치게 만드는 방송 보조출연 알바 후기

by 레블리첸 2022. 9. 15.

 

 

 

 

 

오늘은 방송 보조출연 알바를 뛰는 날이다. 주말에 한 일이 있어서 신청했는데 어제 연락 받았다. 마침 글감도

없었는데 잘됐군. 어제 근황 알리는 글을 쓰면서 어떻게 방송 업계 용역 사무소의 업계 환경이 바뀌었을지 좀

기대가 된다고 적었는데 출발하면서 생각해보니 7년 전에나 쓰던 용지 양식을 고대로 가져다 쓰는 것을 보니

크게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 낫겠더라.

새벽 5시 20분 기상 후 출발. 이렇게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진짜 오랜만이네. 노가다를 마지막으로 뛴 게

대략 3월 정도니까. 간만에 지하철로 이동하니 밀린 일기도 써야지. 하늘이 장난을 치시는지 가까운 거리인데

버스 기사님이 풍류를 즐기시며 느긋하게 운전하신 터라 도로 위에서 시간을 꽤 잡아먹혔다.

도착하니 6시 20분인데 막상 집합하려고 하니 갑자기 아침 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편의점

들러서 밥 사고 왔다.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일지를 제출하라고 한다. 원래 써왔기에 제출했다. 대기 시간동안

밥이나 먹을까 했는데 그러기에는 조금 눈치가 보이더라. 쓰레기 버릴만한 곳도 없고.

야외 무대를 둘러싸고 다같이 앉아있었다. 심심하니 주산이나 굴렸다. 어제 면도기, 중국어책, 이어폰 팁, 침대

다리 고무 커버, 과자랑 음료에다가 추가로 오늘 준비해오라고 지시받은 의복까지 총 37,000원을 지출했으니

본전을 뽑으려면 최소 4시간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 최저 시급으로 치니까.

 

 

 

 

 

 

본격 촬영이 시작되는데 옷을 대여해주더군. 이럴 거면 왜 굳이 옷을 챙겨오라 한 거지. 괜한 지출을 했단 생각이

드니까 조금 짜증이 났다. 어차피 사야 할 옷이긴 했다만. 날이 아직은 쌀쌀해서 외투 걸치고 다시 앉아 대기했다.

겨울이 아니라 다행이구만. 그런데 여름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서 방심할 수 없었다. 아직 볕이 뜨겁다. CG를

편집해서 이어붙일 요량인지 관객석을 옮겨가며 환호성과 연호, 간단한 춤을 반복해야 했다. 목 아프다.

줄 서 있는데 볕은 엄청 뜨겁고 쉬는 시간은 안 주니 힘들었다.

 

 

 

 

 

 

오늘 하루 확실히 망했다는 직감이 들었다. 일단 방송인을 꿈꾸는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문계열

학생은 아닌 것 같은 학생들이 같은 업체로 합류했다. 혈기왕성한 청소년이라 그런지 통제를 따르지 않았는데

그 와중에는 내가 썩 어른스러운 외모가 아니기 때문인지 시비를 걸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날도 후덥지근해서

꼴받는데 꼬라보기에 정강이라도 걷어차서 계단 아래로 굴려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지만 학부모랑 실랑이할

생각하면 성가셔서 그냥 말았다.

일이 진짜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냐면 만약에 예비군 훈련에서 이렇게 굴렸으면 바로 폭동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기다가 협조성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어린 학생. 껄렁대기나 하며 튀는 게

멋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거슬렸다. 학생 특징인지 아니면 여학생 특징인지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고 덕분에 나 같은 솔로잉 뛰는 성인들이 참여가 힘들었다.

 

 

 

 

 

 

 

 

학생들이 많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반말을 들으면서 일했다. 방송업계가 여전히 마초식이다. 요즘은 노가다판도

보통 인부와 작업 반장이 상호간의 존중을 하는 세상인데 이쪽은 어째 아직도 변한 게 하나도 없군. 공사장에선

CCTV도 없는 철골 구조물 속에 서로 연장을 든 상태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삐끗한 순간 치명타기 때문에

다들 압도적인 신사가 되는 이유도 있겠다만.

딱 보기에도 훨씬 나이 있어 보이는 어르신 노동자도 계신데 욕 섞으며 마치 2000년대 수련회 조교가 학생에게

대하듯이 행동하는 건 많이 그랬다. 그리고 아무래도 찍소리도 못내는 힘없는 10대 미성년자들이 대상이라선지

환경이 너무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예비군 훈련소에서도 이렇게는 안 시켰을 거다. 그랬으면 연대장 한번

나와보라고 아우성쳤을 거다.

이래저래 인력난이라서 연예인을 지망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홀리기 쉬운 학생들 꼬셔다 일 시키는 것 같이

보였는데 어쩌면 환상에 눈먼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현실을 깨닫게 해주려는 선생의 극약처방이었는지 모르겠군.

일하다가 옆에 있어서 말을 트게 된 한 청년은 배우를 꿈꾸며 이 일을 통해 현장 경험을 쌓을 생각이라 말했는데

아마 오늘 일을 통해 그 꿈을 접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철야 뛰고서 19만원 벌었다며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딱하더라. 노가다판에서 철야 작업했으면 그 돈의 2.5배는 받았을걸...

애시당초 용돈이나 벌려고 나온 일이었고 오히려 너무 빨리 돌려보내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예상을 뒤엎고서

생각했었던 것보다 너무 근로 환경이 쓰레기여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심지어 근무 시간이 끝난 후에도 붙잡아

놓고 뒤늦게 출석을 부르거나 하더라.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노가다판보다도 이래저래 못한 환경이었다. 차라리

생동성을 뛰었으면 좋았겠군.

자꾸 직원이 나를 가리키며 친구라고 불러대는데 나중에 가면 점점 열받더라. '친구'라고 부르며 그 안에는 전혀

존중이라곤 없더라고. 근데 민증 까면 당연하겠지만 내가 더 형일 걸.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누웠는데 피부가 다

타서 목이랑 팔뚝이 따끔거렸다. 나야 뭐 이것저것 방비를 잘해서 이정도에 그쳤지만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되던

학생들은 지금쯤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회사 출근하면 주말동안 어디 바다라도 놀러갔다 왔냐고 물어보겠군. 2015년 때와 방송 업계 인력 사무소 근무

환경은 크게 달라진 바가 없었다. 여전히 피고용자를 하대하고 사람 쓰기를 우습게 보는 것 같다. 통제를 겁나게

안 따르는 학생들이 그런 관계로 유도한 것일 수도 있겠다만. 아무리 힘이 없는 미성년자이면서 피고용인이라도

고용자로서 대우를 해줘야하는 거 아닌가.

이토록 빡치는 일이 많았는데 한마디라도 하지 그랬냐고?

쉽지 않음ㅋㅋ

 

<총정리>

근로 환경 : 예비군 훈련보다 빡셈

 

시급 : 최저 시급으로 노가다보다 돈 안 됨

 

노동자 대우 : 2000년대 수련회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