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쇠해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 몸은 나날이 썩어문드러져 가는데 아직 정신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 안구와 혈관, 치아, 심장, 피부를 포함해 모든 요소는 영구적으로
동작하는 기관이 아니다. 관절과 마찬가지로 쓰면 쓸수록 내구도가 닳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효율은 떨어지기 마련.
새것으로 교체할 비용이 없으니 오래 된 스마트폰처럼 삐걱대는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며 이 몸으로 가능한 일과 하지
못할 일을 차분히 구분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최근 주말이 전혀 달갑지 않다. 주말 내내 따라다니는 두통 때문이다. 안구가 붓고 편두통으로 지끈거리며 속이 종일
울렁거려서 누워 있다가 결국 잠들고 그러다 보면 겨우 1, 2일만에 생활 패턴이 망가져버린다. 월요일날 필연적으로
출근을 해야 하므로 일요일에 일찍 잠들어야 하는데 때문에 심히 고생을 하게 되지. 원인이 되는 이 두통을 방지하면
조금쯤은 주말을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 관찰했다.
아마도 두통이 생기는 이유는 소화불량 때문인 모양이었다. 식후에 곧바로 침대에 드러누워버리곤 하는데 이 때문에
소화가 되지 않아서 얹혀버린 셈이다. 젊었을 적 그러니까 대충 10년 전에는 배가 문장 그대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생각이 들 정도로 과식하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는 게 지고의 행복이었거늘 이제는 그게 바로 몸과 정신, 주말까지
망쳐버리는 길이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다. 이게 다 나이를 먹어서지.
어쨌든 주말을 안녕히 보내기 위해 최근부터 고안한 방안은 식사 후에 눕지 않고 나가서 걷는 것이었다. 세간에서는
이것을 흔히 산책이라고 부르더군. 앞으로의 주말마다 반복할 일과이기 때문에 아직은 2회차인데 효과는 썩 나쁘지
않은 듯하다.
처음에는 집앞에 있는 공원 산책로를 무작정 걸었다. 걸으면서 오랜 지인과 간만에 잡담을 나누기도 했고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요즘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으니 지친 마음에 불어온 한줄기 하늬바람 같이
느껴져 유익하다고까지 부를 수 있을만한 시간이었다. 30분을 걷고 돌아와 몸을 씻고서 누우니까 속이 더부룩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확실하지 않았다.
오늘 점심을 먹고 누웠다가 잠들었는데 눈 뜨니 익숙한 두통이 머리를 울렸다. 또 시작이다. 하지만 기회로 여기고
마침 늦은 저녁 시간이기도 하니 식사를 한 뒤에 곧장 집 밖에 나갔다. 처음에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가끔 때리거나
관자놀이를 문질러 안마해야 했는데 이 현상이 걷다 보니 차츰 나아졌다. 걸으면서 동네 구경을 했다. 동네 구경을
하다 보니 최근 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파이널컷을 구매했는데 사용 방법이 익숙치가 않아 관련 정보가 궁금해져서
서점을 방문했다. 집 근처에 대형 서점과 중고 서점이 각각 하나씩 있는데 아마 곧 폐점 시각이 가까워지는 듯하긴
하지만 발길을 재촉해보았다.
때마침 주말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친구가 공부하고 있는 것에 살짝
흥미가 동하여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건설안전기사 책 내용이 제법 재미있어 보이더군. 그리고 당초 목적이던 책,
Finalcut Pro 강의도 알아보았다. 둘다 가격이 만만치 않더라고. 특히나 이번 10월 들어서 다시금 가계부 작성을
시작했기 때문에 솔찬히 구매가 망설여졌다. 무엇보다 이미 정리해야 하는 책이 밀려있는 상태잖아.
문서 편집 프로그램이 구비되면 이후에 중국어 공부도 해야 하고 한동안 회사 생활로 인해 망각한 플러터 공부와
진짜로 취미의 영역인 한국사 공부도 해야한다. 다른 데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네.
지음인 지인이 말하기를 산책으로 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정리한다고 했다. 바깥 공기가 아주 신선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좁아터진 고시원 방을 나와 밤 공기를 쐬며 걷다 보니 잊고 있던 게 다시 상기되었다. 아마 정신적 환기가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그나저나 MacOS에서 문서 작업은 한글 문서 프로그램 안 쓴다는데 Word 프로그램까지
구매해야 하는 건가. 이러다 정말 사과 농장주가 되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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