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늘은 방청 알바가 있는 날. 교회에서 이런 일을 의뢰하다니 뭔가 미심쩍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궁금해서라도 가보고 싶어졌다. 설마 공포 영화처럼 제물로 바쳐진다거나 일당은 십일조로 대체되는 등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역시나 누워있는 자세가 문제다. 주말에는 누워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지니 그만큼 경추에 무리가
커지는 모양이다. 때문에 어제는 긴급히 경추 교정용 기능성 베게를 구매했다. 제발 조금 나으면 좋겠군.
9시 30분 집합인데 1시간 정도 일찍 와버렸다. 통제관이 집합 시각 전달에 실수한 듯. 50대 정도로 뵈는
아줌마 모임도 비스무리한 시간대에 도착했는데 여지껏 기다리게 했더니 성이 단단히 나셨는지 싸움이
날 지경이다. 관심 끄고 노래나 들으며 하늘 구경했다.
기다리다가 따분해서 교회 구경도 조금 둘러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만화나
보고 있어도 좋았을걸. 비가 와서 날씨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날만큼은 비 냄새가 그리웠던 모양.
바깥을 휘휘 한량처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기웃거렸다. 교회 건물이 참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집이 가까웠다면 좋았을텐데.
소집 완료. 최종 참여율은 60% 정도였다. 일요일에 할만한 나름대로 쏠쏠한 알바인데 다들 귀차니즘이
우선시되어 버린 걸까. 어쨌든 개신교도답게 통솔자는 부담스러운 친화력을 보여줬으며 이에 몸서치를
치며 입장했다. 이런 자리와 환대는 오랜만이라 재미있다.
교회 소개 영상을 보는데 목사가 전세계를 돌면서 난치병 환자와 악마에 씐 자를 고쳤다는 선전 영상을
틀어주더라. 내용을 보니 웃음기가 전혀 없어서 돌연 무서워졌다. 황급히 교회 이름을 검색해 보았는데
다행히도 신천지처럼 신흥 이단 종교는 아니었고 인터넷에 박제될 정도로 열렬한 개신교도 집단이라는
모양이다.
거기서부터는 안심하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어린 아이부터 청년, 장년까지 많은 신도들이 선보이는
무대 공연을 즐겼고 종합 콘서트 보러 온 느낌으로 참석하였다. 이따금 가사가 부담스럽지만 그냥 신경
끄면 어쨌든 좋은 음악과 춤사위다. 보다 보니 귀엽기도 하고 어쨌든 사람이 죽상인 것보다 심리적으로
건강해 보여서 보고 있으니 저절로 힐링이 되더군. 식구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게 교인이니까.
나름대로 새식구 취급 받으며 상당히 오랜만에 포근한 시선을 한몸에 받으니 나도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주말마다 집 근처 교회에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살짝
걱정했는데 십일조로 장난치는 등의 불협화음 없이 온전히 일당을 지급 받은 것.
게다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일찍 끝났다. 무대가 펼쳐지는 것을 본 순간부터 최소 2부로 나뉘어졌으리라
생각하고 저녁 즈음에 귀가할 각오를 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내게는 필요 없지만 뚝배기도 받았다. 들고
돌아갈 생각하면 난감하긴 했다만 어쨌든 선물 받으니 좋았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사는 데에는 선물이
최고라니까.
교회에서 밥 얻어먹고 돌아갈 수 있다면 점심 비용도 아낄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겠다만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성전 내에 취식은 금지라고 한다. 아쉽구만. 만약 점심 저녁을 싼값에 해결할 수 있었다면 차비를
내서라도 교회에 찾아갈 예정이었거늘. 전동킥보드 타고 열심히 달리면 아주 못닿을 거리도 아니고.
어쨌든 짐 때문에 묵직해진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옴뇸뇸 맛있게 간식을 주워먹으며 하루를 정리했다.
근처의 교회도 한번 알아보았다만 유감스럽게도 청년회는 15시부터라고 하는군. 15시라면 너무 늦잖아.
에바라고 생각해서 그냥 말았다. 교회는 내 마음 속에 있으니 기도는 집에서 하지.
받은 뚝배기는 저렴하게 팔아서 주님의 뜻대로 지역 주민들의 삶을 긍휼히 하고 나 자신을 구원했다.
회사 점심에 사먹을 도시락 비용 정도는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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