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이다. 이미 오랜 일이고 그만큼 다들 어른스러워졌으며 모두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칠 줄 아리라
믿고 글을 남긴다. 바쁜 당신이 이 글을 읽을라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만. 거의 10년만에 대학 시절
간간히 연락했던 여자 사람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안부를 묻고 그동안에
나누지 못한 근황을 들었다. 모두가 당연히 그러하듯이 잘 지냈고 저마다가 술자리에서 풀어낼 믿지 못할
일화가 많게는 너댓개 정도 생겼다. 당시 한창 한가했기 때문에 나로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만 그 끝에는
결국 어느 한쪽이 아쉬운 상태라서 아쉬운 화제로 전환됐다.
결국 돈 이야기다. 당연히 나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게임도 안 하고 놀러다니지도 않으니까
돈이야 남아돌지. 혼자 벌어 혼자서 잘 쓰지도 않는데 부족할 턱이나 있겠냐. 당연히 친구 도와주는 것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의 사이를 친구라고 볼 수 있을까. 현시점에 이제 서로 아쉽지가
않은 상태로 다시금 연락이 닿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넌 지금 날 친구로는 여길 것 같지는
읺네.
30대가 되면서 재미있는 현상이 이따금 보인다. 한참동안 감감무소식이었던 친구들과의 대화창이 돌연
대형 사고라도 터진 이후의 커뮤니티 사이트처럼 시끌벅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무슨 일인고 싶어
구경하면 마지막 이야기는 결국 청첩장을 돌리는 것으로 귀결되더군. 몇몇이 그래도 의리 때문에 결국
결혼식에 참여하고 나면 눈치가 보여서인지 한동안은 결혼식 주인공이 열심히 떠들어대지만 최후에는
다시 영안실처럼 싸늘한 대화방으로 돌아올 뿐이더라. 여러 게임을 하던 때에 생긴 지인들의 톡방에도
그렇고 동호회 모임도 그렇고 열심히 오픈톡방의 세계를 여행하던 때에 생긴 무수히 많은 톡방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유독 30대가 많은 곳에서만 빈번하다. 흥미롭다.
친구 사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마치 우정과 의리를 빌미로 수금하고 있는 수전노일 뿐이지 않은가.
30대에는 결혼도 많이 하지만 동시에 '사업병'이 도지는 경우가 많아서 너나 할 거 없이 전부 다 사업
타령이다. 하지만 사업이란 것이 마치 게임 길드 개설하듯이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 뚝딱 개업 가능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밑천이 필요한 만큼 요근래 특별히 돈 좀 빌려달라는 말이 많다. 대학생때나
사회초년생 시기처럼 10, 20만원대의 귀여운 금액이 아니라 많게는 몇천 만원까지 빌려달라고 한다.
그저 친구라는 명목 하나만으로. 심지어는 그간 연락 한 번도 없이 지내다가 최소 5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밀린 친구비를 입금해야 하는데 납입금이 최소 몇백만원이라면 넌 참 잘난 사람이구나.
부끄럽지만 나도 원래 남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성향은 아니다. 변명을 대자면 바빴고 괜히 말 걸어도
방해만 될까봐 시선을 돌렸던 경우도 많았다. 20대 초반에는 정신이 혼돈 속에 있었고 세상에 대하여
환멸이 너무 심해서 일부러 사람을 멀리 했었다. 그리고 군대에 가서 교화가 되었지. 그후에는 더욱이
바빠졌다. 살아남아야만 했기 때문에 인간 관계를 보살필 여유도 없었다. 이제 나름 여유를 찾아 그저
관계를 유지하거나 회복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간혹 지인들에게 연락을 한다만 결과는 그다지
신통하지 못하다. 근데 이건 상대쪽에서도 특별히 날 찾지 않았으니 정당방위라고 하자.
멀어지는 데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감정에 의한 문제가 아니라면 모든 이유를 붙여봤자 이유를
붙인 쪽이 차별주의자가 되기 마련이다. 수입 격차 때문에 멀어졌다던가 관념의 차이가 생겼다던가의
근거를 갖다대면 갖다댈수록 스스로를 옹졸하게 만들 뿐이지. 그걸 깨닫기에는 아직도 어린 30대라서
우리는 여전히 성장중인가 보다.
관계를 더 잃기 전에 부디 가까운 사람을 잃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보자. 요즘은 너무 간단히 잃기만
하는 시대인 것 같다. 가벼워진 인간 관계만큼 우리 사이의 유대도 가늘어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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