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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아무 얘기

지금 난리난 INFJ 유형이 화제의 블러드문 안 보는 이유

by 레블리첸 2022. 11. 8.

 

 

 

 

 

위 사진은 친구가 보내준 블러드문의 사진이다. 오전부터 오늘 블러드문이 뜨고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미신이

떠도니까 잊지 말고 꼭 달님 보며 소원 빌자며 설레발을 친 건 나지만 사실 달 구경에 굳이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흔치 않은 천체의 현상에서 더 나아가, 어쩌면 역사적으로 남게 될지도 모를 어떤 때를 직접 목격하는

행동 자체가 가슴을 벅차게 만들어 고양감과 성취감, 자신의 존재감이 확립되는 느낌을 받아서 좋은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굳이?"라는 의문점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깥은 춥고 방안은 따뜻하며 직접적으로 눈으로 달을 보지 않더라도 다른 이가 남긴 사진을 통해서도 충분히

달을 볼 수 있다. 달을 직접적으로 바라보며 기도를 해야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지. 난 아이패드가 얼른

국내에 정식 출시되기를 기도했다. 늦으면 11월말이 될텐데 달님이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11월 중순 즈음에도

소식을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에는 이미 사진 찍기 좋아하는 전문가가 열심히 블러드문을 촬영해서 선명하고 예쁘게 편집까지

마쳐주셨더군. 덕분에 달 구경 잘 했다. 이런 건 직접 보는 것보다 역시 간접적으로 보는 편이 훨씬 낫지.

물론 달 구경을 하고 싶어하는 연인의 기분을 망칠 생각은 없고 그정도까지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므로

니 여자친구가 달 보자는데 그딴 말 지껄일 거냐는 걱정은 접어두셔도 된다.

붉은 달이 언제부터 길조가 되었는지 모르겠구나. 예부터 하늘에서 보이는 온갖 현상은 죄 불길한 취급

받지 않았더냐. 어쩐지 다들 축제 분위기이다만 만약 지금이 1000년 전이었다면 위정자의 목은 지금쯤

은쟁반 위에 놓여 분노한 하늘을 잠재우기 위한 제물로 바쳐졌을 것이다. 서양의 어딘가에서는 신나게

인신공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우리들이 탐욕과 쾌락에 눈이 멀어 지구에서 지금까지의 생명이

살기 힘들 정도로 척박하게 만들고 있는 오늘날 보여지는 붉은 달이라니. 돌연변이라도 튀어나올듯한

전조가 아닐 수 없다. 공포 영화나 판타지 만화였으면 프롤로그에 나올 이야기로 딱인데.

해맑은 청년들은 이런 날 일 끝나고 루프탑 글램핑을 가자고 모의를 하더라. 그 밝은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울릴 나이도 아니고 어울릴 명분도 없으며 누구도 어울리자고 제안하지

않았으니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나 개인적으로 그 걱정 없는 태도가 살짝 걱정되긴 했다. 만약 저 달이

방사능이라도 발하기라도 한다면. 달빛을 쬔 모든 것들에게 어떠한 악영향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그저

헛소리에 불과하지. 하지만 그 조금의 불안도 감수하고 싶지 않은걸.

결론적으로 이 기념비적인 순간일지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될지 모를 날 그냥 조용히 방구석에 들어가

여느날과 다름 없는 일상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세상은 너무 위험한데 다들 그 위험을 모르고 산다. 알

수 없는 자연 현상에 그대로 스스로를 노출시킨다니 과감하군 정말. 극지대의 얼음이 죄다 녹아내렸고

마침내 지구라는 행성의 순환계 일종이라 볼 수 있는 기류조차 그 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야 이 별

위에서 살아야하는 생명체 입장에서야 재앙이 닥치기 일보 직전이고, 지구가 거대한 생명체라면 그저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으로 2차 성징으로 인한 성장통이거나 잠깐 감기에 시달릴 뿐인 수준일 수 있지.

그럼에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은 만약 이 지구가 지나가던 다른 별이랑 살짝 부딪혔을 뿐인

작고 사소한 사건을 맞닥뜨리는 순간, 지구는 멀쩡해도 인류는 멸종이라는 거다. 그리고 지금 지구는

누가 봐도 명백히 점점 생명체가 살기 좋은 환경으로 변하고 있는 거 같지 않아.

올해 일어난 수많은 사건은 안전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지.

블러드문 예쁘고 좋다. 하지만 이불 밖은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