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기업 이사 용역 알바를 했다. 반년만에 근력을 발휘하는 일을 했더니 전신에 힘이 안 들어가네.
기진맥진해서 귀환하자마자 뻗어버렸다. 지하철로 1시간 이상을 이동해야 했는데 이날따라 기묘하게도
인파가 많아서 앉지 못한 영향도 있었겠지. 무슨 기념일이길래 이렇게 사람이 많나, 게임물 관리 위원회
서명을 하는 날이라고 들었는데 그것 때문인가 생각하며 짜증을 냈었는데 그것이 할로윈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뒤늦게서야 알았지.
기절해 있다가 오전 6시 경에 미친듯한 메신저 알람 때문에 눈이 떠졌다. 세상 소식 밝은 지인이 열심히
속세의 정보를 퍼나르고 있던 거였다. 전화가 온 건가 생각될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진동음에 짜증나서
곧장 알림 설정을 끄려고 했는데 사망자 소식이 적혀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수가 비현실적이라
단번에 졸음도 놀라서 달아나더군. 당시 확인하기로는 146명이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국내에서 이정도 규모의 사상자 수를 확인한 적이 있었던가. 어딘가의 공장이나
물류 창고에서 화재 사고라도 발생한 건가 싶었다. 근데 사고 장소가 영 뜬금없이 이태원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화재 사고인가 생각했는데 더 알고 보니 사람이 서로 밀고 넘어지는 바람에 일어난 참사라 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당연히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길 한복판에서 넘어졌다고 압사를 당한다는
말인가.
사고 기사와 이태원에 방문한 사람들이 게시한 사고 직전 사진과 영상을 보니 가능성이 아예 없는 얘기는 아닐
거라는 납득이 갔다. 문자 그대로 사람의 물결 그 자체였었구나. 심지어 경사까지 있었으니 대참사로 이어지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저 사람의 틈에 끼어 위에서부터 서서히 스러져가는 사람의 벽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느꼈을 절망에 공감되어 나까지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경우가 안타깝지만 이번 사고의 피해자들 대부분이 곧 대한민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젊은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팠다. 최소 집계된 사망자수가 당시 146명. 그 중에
대다수가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일 것이며 또는 입사한지 얼마 안 지난 초년생일 것이다. 더군다나
뜨거운 사랑의 불을 한창 지피고 있는 풋풋한 연인 사이였을 테지. 그들의 모든 가능성과 미래의 씨앗이 재앙의
물결 아래 잠식되어 버린 것이다.
압사라는 것은 참으로 비참하고 무서운 일이다. 이 사고의 참담한 부분은 누군가는 사망자와 밀접 접촉을 한 채
구조될 때까지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창 노가다를 뛸 적에 심심치 않게 공사장에서 말라서 죽은 쥐를
볼 수 있었다. 이 광활한 불모의 땅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었지만 결국에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아사한 가련한
생명체다. 그런 시체는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아서 항상 흠칫 놀라기 마련이다. 모든 생물은 사자를 맞닥뜨린
순간 극도의 경계심을 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사망 원인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다시 압사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제 내 무게가 타인을 압박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데에 일조했던
걸지도 모른다는 죄책감과 그 사망자와 전신 밀착한 상태로 버티고 있어야 했다는 게 얼마나 큰 정신적 피해가
되었을지 이해가 될 것이다.
살아남았으면 장땡이라는 게 아니다. 과연 이 현장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청년들이 향후 마음을 놓고서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출퇴근길 지하철 인파가 끔찍하여 어차피 지하철로 몇정거장이
안 되는 거리이므로 도보로 출퇴근하다가 거리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전동킥보드를 구매했다. 그런데
계산해보니 매달마다 교통비로 평균 3만원 정도 지출이 발생한 셈이고 전동킥보드가 대략 45만원 정도이니까
본전을 뽑으려면 최소 15개월 정도는 온전히 타고 다녀야만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 순간 갑자기 아깝단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이번 할로윈 압사 사고 소식을 접하고 나니 매번 출퇴근 시간 때 겨우 숨쉬던 그 지옥철이 더는
일상적이 아니라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였고 위험하다면서 수많은 조언을 받게 해준 전동킥보드를 타고
이동하는 게 도리어 내 안전을 위함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하필이면 할로윈이었다. 구조대원조차 일종의 분장인 줄 착각하여 사람들은 경계심을 가지지 않았다. 세계적 축제
속에서 통제력을 상실한 인파 속에서 고통이 찾아온 순간 내지른 단말마는 함성 소리로 인식되고 분위기에 도취된
젊은이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 채 사고에 더더욱 부채질을 했다. 한쪽에서는 곡소리가 울려퍼지는 동시에
건너편에서는 음악 소리가 재생되었다. 전광판의 휘항찬란한 불빛 아래 젊음을 구가하며 한껏 몸을 흔드는 청년과
자녀의 비고를 전해듣고 창백한 얼굴로 뛰어온 중년이 동시에 있었다. 피해자 유가족이 느낄 비통함에는 안중조차
없다는 듯이 웃고 떠드는 유사 가해자가 바로 지척에 있었겠지. 그 괴리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 마음조차 갈갈이
찢어발겨 놓는다.
그 누구에게도 잘못을 따질 수가 없는 일이고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딘가에서 깔려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앞으로 나아가고자 밀어낸 청년을 탓할 것인가? 구내 수용 인구를 아득히 초월한 수가 유입되고 활보하게
방치한 안전 요원을 탓할 것인가? 경찰 세력을 분할시킨 시위대를 탓할 것인가? 경찰을 더 많이 뽑지 않은 정부를
탓할 생각인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전히 창궐하고 있는 이 시국에 밤 축제에 나선 이들을 탓할 건가? 어떻게 이
여파를 수습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하고 아무런 의미 없는 범인 잡기 놀이는 일찌감치 접어두어야 할 것이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우리 사회는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절벽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인력을 상실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서 재앙이 일어났다. 인구 밀도가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은 서울 각지 요소에 있는 지하철과
공통분모이다. 흔히들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2호선 등을 이용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이번 이태원 할로윈
압사 사고와 같은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번 일을 그저 비운의 사고로 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향후 지하철
역내에서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경종으로도 여겨야할 것이다.
<추가>
2022. 10. 30 08시 작성
어이없게도 펜타닐 마약 관련하여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모양이더라. 마약 먹은 사람이 취기에 사람을 밀쳐내서
이런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이 아닌 이상 실제로 유통이 되었던 말든 이번 사고랑은 무관하다고 본다. 또한 여성
피해자 대상으로 성추행이 빈번히 발생했다는 헛소리가 또 떠돌더군. 성욕으로 이성이 마비된 사람이라고 해도
길가에 뉘여져 있는 사체의 일렬을 옆에 두고 욕정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부디 현실 속에서
살았으면 좋겠네.
사건에 더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로 했다. 더이상 사건 현장 증언을 찾아보거나 첨언을 읽는 일은 피해자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그저 자극을 찾는 자위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제 사고를 알았으니
내일 회사 출근해서 알지 모른 채 입방정을 놀렸다가 분위기 싸해지는 일만 없게 하는 것이 앞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당신에게 있어 최고의 행동 방침이 될 것이다.
11월 6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됐으니 부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향으로 입과 손가락을 놀리기를 강력
권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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