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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yReview/▶ About Anything

낭만 다 얼어뒤진 무궁화호 VS KTX 비교

by 레블리첸 2023. 4. 23.

 

 

 

 

 

 

 

마지막으로 기차를 타본 게 언제였지. 서울에서 벗어날 일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에 기차를 탔던 기억이 까마득하다.

아주 어렸을 적, 초등학생이었을 때 엄마와 엄마 친구들 그리고 또래 아이들과 진해 벚꽃 축제 보러 갔었던 게 꽤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거 같은데. 아무튼간에 부산에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 있었고 어떤 이동 수단을 선택할지를

고민할 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건 그때의 추억이었던 거 같다. 지인들은 비행기 타고 가는 걸 추천했지만 왠지

기차를 타고 싶었어.

 

 

 

 

 

 

 

 

 

기차 여행의 묘미를 진득하게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무궁화호를 예약했다. KTX는 무궁화호 타고 부산까지 가는 시간에

대략 2배 정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귀가 시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무궁화호로 마지막 일격을 맞고 모처럼의 여행을

안 좋은 기억으로 변질시킬까봐 두려워서 차라리 첫날 고생하더라도 무궁화호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많이 삐걱댔던 게 기억난다. 네이버를 통해 기차표를 예매해는데 구매를 완료했더니 떡하니 이 화면을

보여주고 승차할 수 없다고 안내 문구가 적혀있는 게 아닌가. 그걸 보고 이 화면은 오로지 예약한 사실을 알려줄 뿐이고

실제로는 매표소에 가서 보여주거나 일련 번호를 입력하고 발권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차역에 일찍 가서

이곳저곳 기웃거렸는데 마땅히 발권할 수 있는 기기가 안 보이더라. 결국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그냥 화면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라. 시간과 힘을 낭비해서 상당히 어이 없었고 괜히 지쳤다. KTX도 마찬가지로 딱히 표를 보여줄 필요

없이 그냥 예약한 좌석에 앉아서 가면 됐다.

깡만 있다면 밀행도 가능하겠구만. 덧붙이자면 네이버에서 표를 예매한 경우 네이버 어플을 설치하고 홈화면에서 마이

페이지로 이동하면 예매한 표를 확인할 수 있다. 혹시라도 역무원이 표를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주면 되겠다. 여행하는

동안 한 번도 물어온 일이 없었지만.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평일에 휴가를 내고 내려가는 거라서 묘하게 기분이 들뜨는 것도 있고 한편으로 옛날에

대학교 통학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급히 기차 타고 내려간 기억이 괜히 떠올라서 부정맥이라도 오는지 심장 박동이

묘하게 빨라지기도 했다. 초조해할 필요 전혀 없는데 쓸데없이 초조해지는 게 썩 달가운 기분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꽤 좋았다고 할까. 차창으로 떨어지는 햇빛을 쬐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바깥의 풍경을 구경하기도 하는 등

정말 오랜만에 여유를 만끽하니 이게 힐링이구나 싶었다. 비록 정장 차림이고 쉴새없이 회사 업무용 채팅방이 번쩍

번쩍 빛을 발하기 때문에 아예 신경을 꺼버릴 수는 없었지만. 기왕이면 편한 신발과 편안한 바지였어도 좋았을텐데

아무튼 여행에 격식 차리는 것도 나름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꽤 오래 이동했다고 생각했건만 시간을 보니 겨우 1시간이 지났더군. 앞으로 4시간을 더 갈

생각하니까 살짝 막막해졌다. 무궁화호는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책상이 제공되지 않고

설사 제공되었다 하더라도 공간이 협소하여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앉아서 갈 수 있다는 부분을 제외하면

장점이 없다고 볼 수 있겠다. 심지어 의자도 딱딱해서 나중에는 엉덩이가 아팠다.

 

 

 

 

 

 

 

 

창밖을 보니까 어느새 완전히 도심에서 멀어져 산과 논밭만이 보였다. 근데 동시에 괜히 암울하기 짝이 없었던 대학교

생활이 떠올라서 기분이 좋아지지 않더군. 매일 아침 기숙사 나와서 대학교 강의동까지 올라가며 본 풍경과 거의 같아

눈을 돌려버렸다. 원래는 가격을 보고 귀가편도 무궁화호로 예약했었는데 이때쯤 곧바로 취소하고 KTX를 예매했었다.

돌아갈 때는 적어도 편안하게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할 때 즈음 가족이 단체로 KTX 타고 여행 갔던 기억이 떠올라 내심

아버지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무궁화호는 풋레스트도 뭔가 허접하더군. 열차칸 자체가 아무래도 연식이 오래된 탓인지 짐칸 같이 느껴졌다. 이 안만

시간이 멈춰서 여전히 90년대인 느낌이 들어서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바깥은 2023년인데.

 

 

 

 

 

 

 

 

 

정오가 지나니까 상당히 배가 고프고 그만큼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인의 강력 추천으로 공복으로 출발하지

않고 닭가슴살에 아침밥 먹고 출발하길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중간에 화장실도 한 번 들렀는데 이 안조차

여전히 90년대에 머물러있는 것 같더라. 군대의 훈련소 근방의 화장실이 70년대를 연상시켰다면 무궁화호 내부의

화장실은 그보다는 조금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구닥다리에 낡은 형태였다.

나름대로 재미있었다고 해야 할지. 기왕 일어난 김에 엉덩이 근육 좀 풀어줄 겸 차량 중간 복도를 구경이나 하다가

들어갈까 싶었지만 마침 내 다음으로 용변을 해결하기 위해 중간 복도에 들어온 사람과 마주쳐서 어색해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에는 그냥 태블릿 PC로 '유희왕 마스터듀얼'이나 했다. 아마 내가 또 다시 무궁화호에 타게

될 일은 없으리라 다짐하면서.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새 부산에서의 일정을 전부 소화하고 서울로 귀경하는 날. 예약해두었던 KTX를 취소하고

조금 더 이른 시간대의 KTX로 변경하여 탑승했다. 기왕이면 역시 부산에서 저녁까지 다 먹고 가는 편이 나았을까.

일단 무궁화호에 비하면 정말이지 천지차이더군. 역시 사람은 한번 고생을 해봐야 한다니깐.

세련된 디자인과 조명 때문인지 벌써부터 지친 심신이 회복되는 거 같더라고. 기억에 따르면 오전의 KTX는 다소

차가운 도시적인 느낌이었는데 저녁 즈음의 KTX는 나름 비싼 호텔 느낌이었다. 무궁화호는 군에 징발되어 짐짝

취급 당하며 끌려가는 듯한 인상이 낭낭해서 그때 마침 탄 한 군인이랑 참으로 배경이 찰떡궁합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말이지.

 

 

 

 

 

 

 

무궁화호와는 다르게 책상도 있어서 간단한 문서 작업을 하기에도 좋을 거 같았고 풋레스트도 적어도 무궁화호의

그것보다는 나았다. 꺼내어 읽지는 않았지만 책자 같은 것도 하나씩 꽂혀 있었지.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았으므로

뒤로 젖혀 거의 누운 채로 갈 수도 있었겠다. 사람은 원래 불편하고 싫었던 기억이 오래 남고 좋았던 부분은 금새

잊어버리기 마련이라 무궁화호의 자리에 대해서 참 말이 많았는데 KTX의 좌석에 대해서 특별한 언급이 없는 걸

보아 좌석도 무난하게 편안했던 모양이다. 어차피 2시간밖에 안 걸리는데 불편이고 뭐고 느낄 새가 없었겠지.

소문에 따르면 KTX 특실은 의자가 더욱 푹신하고 간식까지 제공해준다더라. 상당히 궁금해져서 다음 여행에는

반드시 KTX 특실을 이용해보자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옛날 기억에서는 기차 안에서 뭔가 간식 같은 걸 먹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뭔가 먹을 분위기는 아니더군. 90년대랑 2020년대의 차이인가.

 

 

 

 

복도쪽 자리에 앉았는데 콘센트가 벽에 있어서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못썼지. 부산에서 서울은 거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는 거라 고정석이나 다름 없는 반면 다른 승객은 계속 중간에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므로 콘센트 좀 쓴다

말을 하거나 설명하기 번거로워서 그냥 그림에 떡처럼 보았다. 전설에 따르면 KTX 특실은 자리마다 콘센트가 있다고.

단 몇만원 차이만으로 이렇게 삶의 질이 달라진다니 역시 돈은 최고다.

다음에는 출발할 땐 KTX 특실을 타고 돌아올 때에는 비행기를 타도록 할까 싶다. 여행 행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둘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목적지는 거진 정해져 있는 거 같긴 한데. 그러면 부산까지 KTX 특실 타고 가서 배 타고

제주도에 가보는 건 어떨까 싶네. 여행의 목적이 이동 수단을 타보기 위해서라니. 역설적이구만.

 

 

 

 

 

 

 

무궁화호를 타고 이동할 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갤럭시탭으로 '라스트 오리진' 숙제를 진행하고 동시에

아이패드로 '유희왕 마스터듀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갤럭시탭은 껐지만. 약

2시간 반만에 귀경을 완료했고 그다지 지치지 않은 몸으로 KTX를 내려서 집으로 향했다. 타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나름 돈 있는 여행객 느낌이 났는데 내리자마자 다시 평범한 소시민이 된 기분이라 힘이 빠졌다.

왠지 집에서 닭가슴살 먹기 싫은 기분이라 역 근처 뼈해장국집에서 뚝배기 한그릇 시원하게 때리고 집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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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 정리

무궁화호

  1. 돈을 아낄 수 있음
  2. 약간 90년대로 시간 여행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음
  3. 한번 이용하고 나면 그 다음 KTX를 이용할 때 더 높은 만족도를 얻을 수 있음

KTX

  1. 시간을 아낄 수 있음
  2. 꽤 편안함
  3. 책상이 있어서 다른 작업 가능
  4. 시간을 돈이라 생각하면 비싼 편도 아님

단점 정리

무궁화호

  1. 의자 딱딱해서 2시간 이상 이용할 시 고문이 됨
  2. 시간이 오래 걸려서 시간 낭비가 될 수 있음

KTX

  1. 복도측 자리의 경우 콘센트 쓰는 게 쉽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