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방랑 생활을 지속해온 나란 남자에게도 드디어 정착할 곳이 생긴 걸까. 수많은 고시원을 전전했지만 이번에
계약한 고시원은 여태까지 살았던 곳과 확연히 달랐다. 매일 매일 공용 화장실과 계단, 공용 주방을 청소하는 광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부터가 그랬다. '보여진다'는 게 무섭다. 내가 의도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타인의 행동은 보여지는
부분밖에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해피하우스 영등포점 원장님은 내가 미처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어딘가도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얼마전 수면 아래 잠긴 빙산의 뿌리 중 한 면을 발견했다.
일기에도 작성했던 거 같지만 그 비밀스러운 부분은 바로 세탁실이었다. 어느날 문득 세탁기에서 빨래물을 꺼내는데
옛날 그렇게나 청소에 진심이던 친구랑 동거했을 무렵 그녀석과 세탁기를 청소한 날이 떠올랐고 먼지가 쉽게 쌓이는
부분을 확인했는데 마치 그날 청소한 것처럼 먼지 한톨 없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던 적이 있었다. 다음부터 빨래를
할 때마다 세탁기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세탁기에 먼지가 하나도 없다'는 공포스러운 비밀을 알게 되고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세탁기에서 먼지를 발견하진 못했을 정도다.
청소는 고시원의 관리에서도 무척이나 귀찮고 육체적으로 고된 영역이며 매일 해도 매일 일거리가 쌓이는 일이므로
사람은 어느샌가 어느 정도 자신과 타협하고 그 빈도를 줄이기 마련이건만 고시원 입주하고 1년이 되어가는 지금껏
단 하루도 해피하우스 영등포점 고시원 원장님은 청소를 거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하, 나 해피하우스 영등포점은
매일 매일 혁신하고 있다고
해피하우스 영등포점은 건물 외관상 시설이 노후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애시당초 건물 연식이 오래 됐기
때문이다. 원장님에게 듣기로는 이것을 충분히 감안하고 고시원을 인수하셨다고 하더라고.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참 보수 공사가 많았다. 공용 화장실 타일을 갈아엎고 주방 바닥을 뜯고 옥상 방수 처리를 새로 진행했다. 사실상
건물 외관만 늙었을 뿐이지 내부는 그 장기를 갈아끼운 듯이 점점 젊어지고 있는 셈이다.
놀랍게도 얼마 전에는 주말동안 서점으로 놀러가려는데 웬 세탁기가 나와 있길래 물어보니 세탁기가 오래되어서
교체를 하시는 걸 보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노후된 세탁기를 교체해주는 고시원 원장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아서 오랜 토박이 생활을 청산하고 후배와 세대 교체하는 세탁기를 기념으로 촬영했다.
이렇게 운영되고 있는 해피하우스 영등포점이 운영 1주년을 맞아서 고시원 입주민 전부에게 피자를 돌리는 행사가
이루어졌다. 고시원 원장님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임하는지. 본인의 입으로 열정 없이 오로지 의무감 하나만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광기'라고 표현하자면 얼마나 광기에 빠져 고시원을 가꾸시는지 아는 사람으로써
낼름 피자만 받아먹고 자리를 뺄 수 없었다. 그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못했다.
원래는 피자 가게에서 미리 주문한 피자를 가지러 가는 단계에서까지 동행해서 힘을 보태어 드리려고 했는데 이건
원장님이 가족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해결해버리셨더군. 도와드릴 수 없었다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피자를 옥상의
주방까지 나르는 것을 거들었고 이후에는 입주민들에게 피자를 배급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도왔다. 이 무더운 날에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면 나름대로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고시원에 사는 몸이지만, 근래
생각해보니 겨울에 추웠던 적이 없고 여름에 더웠던 적이 없었다. 원장님이 아낌없이 보일러와 에어컨을 가동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고객으로서 누려야 하는 당연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천방지축 말종 쓰레기가 있다면 어디 한번
서울 한복판에서 이곳보다 투명하게 운영하는 곳이 더 있는지 찾아보게 시키고 싶군.
다행히 이미 자격증 시험은 끝났고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원고도 검토 및 작성이 완료되어 매우 한가해진 상황이라
14시의 철수 시각까지 주방에 남아서 진행을 도와드렸다. 역시나 땀범벅이 되었길래 후다닥 샤워하고 답례로 받은
간식을 먹다가 깜빡 잠들었다. 지금 일어나 뒤늦게나마 1주년 축하를 글로 남긴다.
해피하우스 영등포점 고시원 원장님은 언젠가 2호점, 3호점까지 내고 싶다는 야망을 보이셨다. 그 꿈이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한 손익 계산 다음에 이루어진 행동이라면서 변명하시는 고시원 원장님이
대단한 사람인 거 같다. 가끔 자격증 공부 때려치우고 그냥 퇴근하면 새벽까지 떡툰이나 영상을 보면서 몸과 정신을
쉬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소리로 나태함에 취하려는 자신을 깨우곤 한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는 와중에 '14시에 철거하면 땡이다. 그때 못먹은 사람들은 먹을 복이 없는 셈'이라며 냉정하게 말씀하던
고시원 원장님이 방을 일일히 돌면서 못받아가신 입주민들에게 피자를 나눠주시는 걸 보았다.
로또 당첨되면 해피하우스 영등포점의 모든 시설을 새것으로 교체해서 돈쭐내고 싶어질 정도였다. 아마 너무 정을
붙인 거 같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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