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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아무 얘기

오후 10시

by 레블리첸 2023. 7. 30.

 

 

 

 

 

 

 

 

 

유년기와 성장기 그리고 지금 성숙기에 각각 느끼는 시간대별 체감이 다른 게 문득 재미있다. 창작 활동 중에

듣기 좋은 노래를 찾고 있다가 어쩌다 보니 옛날에 유행했었던 게임들의 배경 음악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한참 조용히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는데 그때가 마침 오후 10시였으니 이제 천천히 잘 준비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비를 정리하고 누웠지만 어째선지 잠에 들기 어려울 거 같아 듣던 곡을 다시 틀어

음량을 귀 기울이지 않으면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하여 어둠 속에 숨 죽이며 듣기 시작했다. 잡생각이

서서히 사라지는 동시에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하더군.

시간 역행. 한창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밤샘을 숱하게도 했었기 때문에 새벽 3, 4시 무렵에서야 잠드는 경우가

빈번했었지. 영상 편집 후 게임하다가 보면 눈 깜짝할 새에 자정을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때

생각하면 나름대로 충실한 삶을 살았던 거 같으면서도 꽤나 큰 기회를 많이 놓친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는 해.

주변에 나를 제대로 끌어줄 만한 이가 없었지.

중고등학생 때에는 자정을 넘긴 다음부터 진짜 일상의 시작인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웃긴데 하교 후

터덜터덜 집에 돌아와서는 컴퓨터 켜고 이것저것 구경이나 하다 게임하고 가상 세계 속 친구들이 접속하기를

기다렸지.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해서 자료를 만들어 두었다면 좋았겟다는 생각이 든다. 폐인의 삶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만사에 일장일단이 있는 법. 특히 부정적인 면은 부각되어 보이기 십상이고 안 좋은 면에

집중했다가는 암울한 기분에 매몰될 수 있다. 좋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대학 시절 그 누구도 나를 이끌어줄 수

없으니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학창 시절에는 모니터 안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겪어 오늘날의 인격과 이 글솜씨를 얻게 되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결코 아깝지 않은 시간인 셈.

더욱 과거로 돌아가볼까.

오후 10시는 어린 시절의 내게 일종의 벽 같았다. 먼 옛날 전국민이 일요일의 마무리를 '개그 콘서트'로 했을

시절에는 모든 행동을 종료하고 잠에 들어야만 하는 마법의 시각이었지. 이미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게임에

빠져살았던 인생이었는데 '바람의 나라'를 하면서 곁눈질로 '개그 콘서트'를 보고 부디 끝나지 않길 바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중해서 사냥하다가도 결국 방송의 종료를 알리는 그 노래가 울려퍼지면 꺼야만 했으니까.

이 시각 이후로도 깨어있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어쩌면 오후 10시 이후에는 마법과도 같은 세상이

펼쳐지는 게 아닐까 망상하기도 했다.

벽의 특성상 한번 허물어지고 그 너머를 보니 특별할 게 없긴 하더군. 오후 10시 다음에는 오후 11시, 자정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 마치 20살이 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두근거렸지만 막상 20살이 되었어도 그 다음은

21살, 22살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참 특별한 거 없는 나날이었는데 어째서 설렜을까?

아마도 미지의 저편에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금기로 가로막혔던 저편을 향하는 모험으로 꿈꾸던

시절이었으므로 그때가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이제 오후 10시라는 벽은 아무때나 넘을 수 있는 선이 되어버렸고 오후 10시라는 선의 너머에는 그저 지독한

피로함만이 있다는 생각뿐이 들지 않는 자신에게서 고리타분한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렷다. 가수 없는 단순한

연주곡이 나를 감성적으로 만들어주는 모양이다. 꽤나 유용한 모양이니 음원을 설치해 반복 재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