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인마 몸 성할 때나 진행하는 거다. 아플 때는 모든 걸 잊고 푹 쉬면 그만인 거다. 공부고 나발이고
당장 뒤지겠는데 글이 눈에 들어오겠냐고.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바로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깠다. 곧바로 갈 수 있는 병원을 몰색햇고 지체 없이 빠르게 잠을 청했다. 예상했던대로 새벽 4시에 전기
장판 켜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오한이 느껴져서 깨게 되었다. 전기장판은 고장이 아니었으니까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다시 잠에 들었다가 오전 8시 30분에 일어나 곧바로 씻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감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속 항원 검사를 했더니 A형 독감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검사 비용이 굉장히
환상적이게도 4만원이 깨졌다. 회사에 혹시 제출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 진단서도 요청을 했었다.
자타공인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못박았으니 곧바로 집에 돌아와 잠이라는 보약을 한사발
들이켰다. 아프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더니 측은하게 여겼는지 친구가 병문안을 와서는 양송이
스프 한그릇을 주고 갔다. 맛있게 먹고 마저 잤다.
그렇게 토요일은 종일 잠만 잤더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저녁에는 지인이 죽을 사줘서 고맙게도 죽을 먹었다. 아프다고 그렇게까지 떠들고 다닌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혼미했던 와중에도 죽을 싹싹 긁어 먹었고 약을 삼킨 뒤 씻고서
다시 잤다. 일요일에는 상당히 많이 나아진 것 같기는 개뿔 목은 완전히 잠겼고 설상가상으로 우리 부서의
부사수도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눈앞이 까마득해진다. 원래 내일 연차 쓰고 좀 쉬려고 했건만 부사수가
아프면 절대 쉴 수 없게 되잖아. 게다가 일요일이라 병원도 운영하지 않으니 월요일날 검사 받아야만 하고.
짜증나지만 일요일은 정말 온전히 회복에만 전념해서 반드시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나아야
한다는 각오와 함께 잠이나 잤다. 토요일은 거짓 한점 보태지 않고 하루중에 20시간을 잠만 잤는데 약발이
워낙에 강한 덕분인지 일요일도 온종일 자는데 무리가 없었다.
몸상태에 대해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잔기침이 계속 괴롭히고. 오한이 느껴져 이불을 뒤집어 쓰면
발열과 함께 미칠듯이 식은땀이 나서 이불이 다 젖어버리고 이불을 치우면 다시 오한이 덮쳐오길 반복한다.
고문이 따로 없는 수준이지. 그래도 열심히 잤더니 정확히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많이 나아지긴 했어도 체력을 최대한 온존해야 비로소 출근길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이므로 일요일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미친 A형독감. 거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파급력이 맞먹는 것 같다. 내 귀한
주말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온종일 누운 채로 반송장이 되어서 보내다니 빡이 치는 와중에 누군가가
"코로나도 종식 됐는데 뭐하러 마스크 쓰고 다니냐?"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그 말로 내 마음이 약해진 건지
모를 일이다만 다시 회사에서 마스크를 벗고 일할 일은 없으리라 다짐했다. 누군가 사무실에서 왜 마스크를
쓰고 있냐 물으면 회사에서 A형독감 옮아서 그렇다고 답해야겠다.
분노에 휩싸여 이 글을 열심히 자판 두들기며 작성하는 지금은 상태가 정말 많이 나아져서 내일 출근은 아무
지장이 없고 심지어 출근한 다음에 언제 아팠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장난을 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될 정도다. 빌어먹을 몸이 멀쩡했으면 주말에 뭐하려고 했었나 전혀 기억이 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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