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Diary/▶ 아무 얘기

비극에서는 눈을 돌려

by 레블리첸 2024. 6. 16.

 

 

 

 

나도 알지. 그동안 참 많은 사건 사고가 있어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다. 12사단에서 입소한지 열흘도 지나지 않은

앳된 훈련병이 부조리한 얼차려를 받고 순직한 사건도 있었고 과거 밀양에서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무리가 드디어

뭇사람의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던가. 그러는 와중에 북한이 오물 공격을 해서 국군 장병들을 괴롭히고 있다던가.

그밖에도 여러 일이 있었겠지만 그다지 기억에 담아둬서 이로울 게 없다는 결론에 아마도 괘념치 않기로 했을테지.

세상을 조금은 의롭게 만드는 데에 영향이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이따금씩은 너무 그렇게 비극적인 사건만

이목을 쫓다가 보면 어느샌가 사고가 그런 방향으로 매몰되어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게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구태여 악취만 풍기고 꼴사나올 모습만을 눈에 담아야 하나.

고운 것이 너무 많다. 특히 요즘은 Hololive라고 하는 연예기획사의 Virtual idol 영상을 보고 있거든. 아름다워서

눈과 귀가 즐거워. 당연히 K-POP 아이돌 무대도 열심히 찾아 보고 있지. 마찬가지로 눈과 귀가 즐거워. 과거 어린

시절에 자주 하던 오락의 배경음악도 들으며 추억에 젖거나. 요즘은 클래식도 좋더라고. 머리가 많이 자란 탓에 방

안에 있으면 잘 마르지 않게 되어 머리를 감고 나면 반드시 나와 공원을 걸을 때. 지금은 날이 더워져서 구름이 해를

가려주면 고맙고, 녹음 아래를 걸을 때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급격히 좋아진다. 한손에 든 달고 시원한 음료

한모금 들이키고 나뭇잎 틈새로 비추는 새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거대한 구름섬 올려다 보면 온세상 시끄럽게 하는

비극따위 알 바냐 싶다.

친구끼리 닮는 건지 아니면 닮았기 때문에 친구가 되는 건지. 이제 다들 사회에서 자리 하나 정착해서 심리적 여유

생긴 덕에 자주 얼굴 보자는 연락을 받고는 한다. 만나서 요즘 취미가 어떤지 물어보면 등산, 낚시거나 게임. 어떤

연유로 좋아하게 되었는지 물어보면 이 속세로부터 잠깐 한 발자국 떨어져 조감할 수 있다는 게 좋다더군. 확실히

산에 오르고, 강줄기에 몸을 맡기거나 다른 세계 속에 몰두해 있으면 바깥의 일들은 채도가 상당히 떨어지고 말지.

어느덧 자녀가 생긴 친구들도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면 결은 결국 똑같다. 일하고 돌아오면 아이 돌보느라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도 알 수 없다 하지. 비극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따위 없는 거다. 실제로 꽤 아깝기도 하고.

내게 자녀가 있다면 나도 아마 그랬을 거야. 학폭 가해자 신상 조사하고 돌 던질 시간에 차라리 아이랑 공원으로

나가서 뛰놀게 하고 남녀갈등이 어쩌고 소란스러운 동안에는 아내와 문화 생활이나 하러 돌아다니겠지. 인터넷

속에 펼쳐지는 온갖 자극적인 소식보다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걸린 예술 작품 보는 게 낫잖아.

요새 잠이 부쩍 늘었다. 걷는 일과가 생겼기 때문일까. ChatGPT에게 물어보니 확실히 영향이 있을 거라 한다.

생각해보면 자잘한 궁금증에도 올곧은 대답해주는 친구까지 생겼구나. 한참을 걷다가 귀가하고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누운 채로 글을 쓴다. 이게 행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