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단 한 장으로 일축할 수 있다.
어제가 역대 최저 기온일 줄 알았는데 내가 한국의 추위를 얕봤군. 기상예보를 보니 목요일 무렵 가장
기온이 낮던데 걱정이다. 어쨌든 오늘은 하수도에 들어가는 날. 최대한 가볍게 옷을 입고 출발을 했기
때문인지 겁나게 춥다. 작업복 바지, 반팔티, 외투 2겹에 목도리만 입고 출발했다. 어차피 다 갈아입고
작업에 투입될테니. 아참, 우의도 챙겼다.
나름 유경험자라고 준비는 90% 완벽했다. 도착하고 산책로에서 간단히 양수기 관련 작업을 도와주고
곧바로 하수도에 내려가기 위해 외투를 전부 벗고서 작업복 바지와 반팔티만 입은 상태에서 제공되는
방진복 상하의를 위에 껴입고 방수복을 입었다. 이후 개인 안전모 및 랜턴, 보안경을 착용하는 등 정말
만반의 준비를 마쳤건만 내려가보니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어 당황했다.
사진을 봐서 알겠지만 하수도 내부가 지난 번 터널처럼 엄청 넓었던 것과 달리 높이 1m에 발을 디디는
것이 가능한 너비가 어깨 너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허리를 완전히 굽혔는데도 천장에 등이 닿더라고.
그 안에서 커다란 바위가 담긴 고무 대야를 줄에 매달아 질질 끌고 다녀야만 했었다. 밀기만 하면 슥슥
나가는 깨끗한 길이 아니고 그 내부는 정강이 높이까지 오수가 차있었으며 바닥면에는 진흙과 돌맹이
그리고 각종 쓰레기가 쌓여있어서 쉽지 않았다. 무거운데 자세는 거의 오리걸음 자세..
원래는 아래에 작업반장님을 제외하고 용역은 4명이 내려가기로 했는데 어제의 그 베테랑 용역분께서
내려오자마자 폐소공포증을 호소하며 탈주해버려서 결국 네 명이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용역 한 명이
선두에서 바닥을 긁어 큰 돌과 작은 돌을 분류하고 큰 돌들은 대야에 담으면 나랑 다른 용역B가 그것을
받아치기해가며 출입구 쪽의 작업 반장님에게 전달하면 작업반장님이 그것들을 양동이에 옮겨 담아서
위로 올리는 절차로 진행. 용역B는 선두의 용역과 함께 바닥 긁는 작업을 보조했고 나는 작업 반장님의
작업을 보조했는데 돌이켜보면 객관적으로 내가 좀 많이 빡셌다.
쉬는 시간을 주긴 했지만 올라가지 않고 내부에서 쉬었기 때문에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반팔에 우비를
걸치고 그 위에 제공받은 방진복을 입고 방수복을 입어서 오수가 튀어도 젖을 일은 없었다. 얼굴에 조금
튀긴 했지만 그정돈 괜찮았고 다들 뭐하러 안전모를 또 쓰냐고 했지만, 돌이켜보면 이걸 안 썼다면 아마
천장에 자주 머리를 긁어서 머리를 다쳤을 것 같다. 그런데 양말을 챙겼다면 좋았을 것을 싶었다. 하수가
샌 건 아닌데 땀이 배출되지 못해서 양말이 땀으로 쫄딱 젖었고 이대로 작업화로 갈아신으면 작업화까지
젖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여튼 정신없이 돌 나르다 이후에는 바닥에 퇴적된 흙을 긁어서 퍼냈다.
오후부턴 내부에서 틈틈히 쉬긴 했지만 피로는 전혀 줄지 않았다. 사람은 적응하는 생물이라서 나중에는
그냥 폐수가 흐르는 물 위에 그냥 첨벙 앉아 쉬기도 했다. 일 다 끝나고 올라오니 16시 10분, 천만 다행히
오전에 했던 밑작업의 뒷처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고생했다며 먼저 퇴근하라더라. 기분 좋게 좀비처럼
걸으면서 집에 갔다. 허리가 끊어지게 아파서 계단에 오르기도 벅차더라.
내일은 좀 쉬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출근 욕심을 내버렸다...
'■ Diary > ▶ 근무 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1230 일용직 현장 노가다 근무 일지 (혹한3, 겨울의 노가다, 갈탄) (0) | 2020.12.31 |
---|---|
20201217 일용직 현장 노가다 근무 일지 (혹한2) (0) | 2020.12.19 |
20201215 일용직 현장 노가다 근무 일지 (혹한1, 하천 하수도) (0) | 2020.12.17 |
20201208 일용직 현장 노가다 근무 일지 (하수도 박스) (0) | 2020.12.10 |
20201204 일용직 현장 노가다 근무 일지 (빈수레, 화목, 병치레) (0) | 2020.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