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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근무 일지

20210526 일용직 현장 노가다 근무 일지 (개싸가지)

by 레블리첸 2021. 5. 26.

 

 

 

 

녹록치가 않군. 그래도 오늘은 조금 할 만하려니 생각했다. 차에 타고 이동하는 동안까지는.

오늘의 임무는 '가로등 작업 보조'라고만 들었었다. 이제 와서 상기해보면 전혀 다른 업무를

했던 것 같군.

정리하자면 업무 강도도 빡셌고 쉬는 시간은 없었고 점심 시간은 짧았고 일은 정시에 끝남.

그래도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충분히 감안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었는데 사람이 문제였다.

같은 인부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업무는 간단했다. 도심지, 그것도 지하철역 입구 근처에서 진행이 되므로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일단 울타리를 치거나 이동을 유도하는 라바콘을 설치해주고 포크레인이 바닥을

들어올려 보도블럭이 산개되면 그것들을 주워다가 시민들의 이동에 방해가 되지 않으며

동시에 옆으로 쓰러져도 큰 장해가 없을 공간에다가 높지 않게 차곡차곡 쌓아둔다.

이후 파이프를 가져와 굴삭기가 파놓은 참호에다 깔고 그 위에 흙을 조금만 덮어준 뒤에

고압의 전선 파이프가 지나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 문구가 적힌 띠를 문구가 잘 보이도록

깔아준 뒤에 이중으로 흙을 덮어주는 일이다. 그러면 포크레인이 다시 흙을 덮어주고 난

후에 안마기 또는 다짐기로 불리는 기기로 평탄화를 진행한다. 이제 매끈한 흙길이 되면

그 위에 '매트'를 깔아 흙이 날리는 등의 일을 방지하는 일을 한다.

이러한 루틴이 계속 반복될 뿐으로, 처음에야 버벅댈 수 있지만 3회 정도 반복이 된다면

대충 제 할 일이 생겼을 때 우르르 몰려가 처리한 후에 또 적재적소로 파견을 갈 수 있는

수준의 일거리였다. 근데 일단 무거운 보도블럭을 옮기고 쌓는 것부터 좀 버거웠다.

 

 

 

 

 

 

거듭 말하지만, 일 자체는 숙달되면 별 거 아니었다. 비록 쉬는 시간은 없었지만 엄연히

보았을 때 중간 중간 손이 비는 시간이 있긴 했고 점심 시간은 좀 짧았지만 큰 불만까진

없었다. 보도블럭을 줍고 받아치기해가며 옮기고 쌓는 일은 힘들고 흙먼지 뒤집어쓰는

엿같은 일이었으며 업무 내용상에 적혀 있지도 않아 '이걸 왜 하지' 싶긴 했지만 까짓거

어차피 돌 나를 땐 힘들어서 시간도 빨리 가니 그러려니 넘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문제였다. 소장인지 평범한 직원인지는 모르겠고 안중에조차 없는데

계속 시비 걸고 깐깐하게 굴고 신경질을 부렸다. 기본적으로 하대한 것까진 좋다 치자.

일손을 거들어 주려고 가면 시키지도 않은 일 하지 말라며 온갖 히스테리를 다 부리고

도심지고 대로변이라 차량이 많고, 게다가 마스크까지 써서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인데 말귀 못알아먹는다고 신경질을 부리고 또 용역분들을 무시하는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하도 짜증나게 굴기에 '댁이 얼마나 높고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업체에 한 번

제가 민원이라도 넣어보면 어떻게 되는지 보실래요?'하고 따지고 오전 돈은 안 받아도

되니까 그냥 떠나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다른 용역분들은 '일가자'를 통해 각각 2 번,

5번밖에 안 나와본 사람들이라 지고지순한 편이었는데 만약 잔뼈 굵은 분이 있었다면

곧장 싸움이 났을 것 같았다. 오늘이 1일차고 연속으로 인부들 부른다는데 내가 볼 때

분명히 곧 언쟁이 있을 것이다.

노가다 경력은 2년밖에 안 되는 햇병아리지만 공사판에서 지켜야 하는 몇가지 법칙은

안다. '누군가의 말은 무조건 내게 하는 말로 들어라'라는 거다. 그게 '피하라'는 경고면

당연하고 연장을 챙기라는 지시라면 일용직이라도 놓치고 가는 장비가 있는지 한번은

두리번거리는 게 당연지사다. 피하라고 누가 외쳤는데 '난 아니겠지'하고 하던 일이나

하고 있다가 지게차에 깔려죽은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 갑자기 그 문제있는 인간이 존댓말로 업무를 지시하기에 나에게

시킨 일이려니 해서 '네'하고 대답했더니만 대뜸 '어이 아저씨. 너한테 한 얘기 아니야'

라고 말하기에 '예. 말씀하세요.'하고 대답했더니 여기에 대고 '하 거 겁나 쫑알거리네'

하더라. 어제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 싶었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공간인데다 폐쇄회로나 블랙박스가 도처에 즐비해서 그러시는지,

이 험악한 세상에 상대가 자신을 절대 해코지할 수 없다는 비뚤어진 고정 관념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아주 대하기 껄끄럽게 행동하시더라. 못배운 것마냥. 직원이나 시에서

나온 직원에게는 웃는 낯으로 한참 어려보이는 사람에게도 존댓말하면서 비위까지도

잘 맞추시는데 왜 용역 나온 사람들에겐 인상 쓰고 기본적으로 반말 찍찍 내뱉으실까?

그 모습을 보며 '참 이중적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덕분에 용역분들이랑은 의기투합이 잘 되었다. 다른 직원분이 '내일도 나오실

건가요' 물어보셨는데 나는 안 나온다고 전했다. 다른 둘은 그래도 예의상 나오겠다고

대답하고 안 나갈 거라고 한다. .....음.. 내가 볼 땐 그게 더 경우에 어긋나는 거 같은데.

아무튼, 인력 두 분도 오전까지만 하고 그냥 탈주해버릴까 심히 고민하셨다 하시더라.

우리 모두 일은 나름 할 만한데 그 사람이 참 문제여서 이 현장 오기 싫다는 의견으로

입이 모아졌다. 뭐, 덕분에 돌아가는 길이 재밌었다. 다신 안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