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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EA/▶ 장편 소설

제2인간 암컷 타락 스토리 너무 꼴려 1편.txt[라스트 오리진 콘문학]

by 레블리첸 2021. 6. 4.

*본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실제의 인물, 국가, 기관과 일절 관련이 없습니다.

또한 모바일 어플 『라스트 오리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용이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작중 시점은 '프로젝트 오르카:별밤의 무대' 이후입니다.

*1일차

시야가 밝아졌다고 해야 할지 정신을 차렸다 해야 할지 눈이 뜨였을 때에는

낯선 천장이 아닌 낯선 얼굴들이 나를 뚷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몽롱함에

취한 탓인지 적대감보다 앞서 의문이 머리를 내밀었다. 아마 당연히 의사가

아닐까 생각하고 경계가 느슨해진 이유가 컸을지도 모른다.

 

 

여긴 어디지?

 

말이 끝나자마자 위화감을 깨닫고 순간 경직됐다. 내 몸 안에서 울려퍼지는

이 목소리와 억양은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과 함께 불안이라는 감정이 한번

철렁 심장을 훑고 지나가며 한순간에 온기를 잔뜩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확장된 눈과 입을 닫지 못하고 그대로 눈동자를 굴려 다시금 나를 바라보는

면면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걱정스런 눈초리를 하고 있는 백발의 한 여성이

부드러운 동작으로 천천히 다가온 후에 자세를 굽혀서, 나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정신이 드셨군요, 인간님? 당황스러우시겠지만

곧바로 설명을 시작할게요.

인류는 철충의 침략으로 멸망했지만, 기적적으로

발견된 멸망 이후 첫 번째 인간, 지금의 사령관님

지휘 이래 세력을 회복하고 인류 재건을 목표로

부흥을 시도중입니다.

 

 

멸.. 망? 아니, 그럼 넌 바이오로이드야...?

윽.. 머리가 아파.. 지금, 이 몸은 뭐지?

 

어렴풋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널부러졌던

기억이 뇌리를 스치며 두통이 몰려온다. 끝이 뭉툭한 볼트 같은 것으로 내

머리의 전두엽 부분을 은근히 힘을 줘서 누르는 것 같은 지끈거림에 한 쪽

눈을 질끈 감은 채 머리를 싸매고 작은 정보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내게,

마치 당신은 몰라도 될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여자는 상냥한 말투로

냉정하게 정보의 뭉텅이를 맹렬히 퍼부었다.

 

 

 

 

...아미나의 유산과 펙스산업, 에바 존스의 기술을

복합 응용하여 저희는 인간 님의 인체를 재구축 후

전뇌세계로부터 다운받은 '기억소체'들을 모듈에

입력하여....

도대체 이 바이오로이드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은근 화가

나려고 하는 찰나, 두통마저 다 씻겨갈 정도로 청량한 음색을 가진 소녀가

끼어들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언니! 인간 님 머리 폭발하겠어!

안녕, 난 닥터야! 내가 요약해줄게!

인간 님은 되살아났고 인간 님 본래 육체가 아니라

바이오로이드의 육체에 뇌가 이식됐어.

궁금한 거 있어?

 

결국 간단히 설명하자면 멸망해버린 세상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구나.

단순명료하지만, 이 소녀는 진행이 너무 빨라 도저히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허나 이런 상황이니만큼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남자였을 터인데....?

 

기억은 불분명하고 어쩐지 불현듯이 머릿속에 스쳐가며 연상되는 장면들이

마치 자신의 과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때로는 그것이 어떤 매체를 통해

본 시청각 자료인지 아닌지조차 애매하지만 단 하나 내 자신의 성별이 분명

남자였다는 확신만은 가지고 있다.

 

 

 

 

아아~ 그게 잘 안 됐어!

노력중이긴 해. '선례'는 있었으니 잘 될거야.

다른 질문!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요소이자 뗄레야 뗄 수 없는 성별을 두고 '잘 안 됐다'

한마디로 일축해버린 것이 어이가 없었지만 아직 어떤 상황인지도 알 수 없고

더군다나 이 바이오로이드들은 이런 성격인 것 같으니 넘어가고,

다음으로는 내 기억 상태가 회복중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여부를 물었다.

 

 

 

어..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응? 차츰 기억날 거야.

본인이 남성이었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잖아?

 

 

 

어, 그래..

 

일단은 언제까지고 이러한 상태로 머물러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 하나만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기억이 조금 더 회복되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나 현상황에 대한 타개책 등등이 생각날 것이다. 우선은

나의 안전이 최중요 요소다.

 

 

 

... 인간 님,

일단은.. DNA맵핑과 연성 준비가 끝나면 아무리

늦어도 한달 정도면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실 수가

있으실 거예요.

그때까지라면 기억도 어느 정도 회복되시겠죠.

남은 건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일..

그동안 우선 이 '오르카 호' 내부를 안내해드려도

괜찮으실까요?

 

 

 

으.. 응......

 

여전히 이 바이오로이드에게 무척 사무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받는다. 나의

기억이나 관념대로라면 바이오로이드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친절히

행동하도록 설정이 되어있을텐데, 아마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고위 개체가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도 살짝 주의를 하게 됐다.

그런 나의 심리라도 읽기라도 하는 것인지, 마치 화롯가의 불처럼 은근하게

나를 바라보던 노을빛 눈동자와 한 차례 시선이 마주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이 하얀 바이오로이드는 곧 출입구의 옆에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감시하고 있던 '콘스탄챠S2' 모델에게 눈짓했다.

 

 

 

우선 머무실 방과 편의 시설, 선내 바이오로이드

몇명을 소개해드린 다음

사령관 님께 모셔다 드릴게요.

 

상냥하고 온후한 말씨에 드디어 나도 마음의 안정을 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콘스탄챠의 꽁무니를 따라 이동하며 그 바이오로이드들을 통해 얻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종합했다. 즉, '오르카 호'는 철충을 피해 해저에 정박중인 잠수함이고

인류는 '사령관' 외에는 사실상 전멸이라고 한다. 아마 그 밖에도 다양한 적들이

있다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절체절명의 상황이라는 것 같다.

콘스탄챠S2 모델을 따라다니며 나는 우선 함내의 식당과 거처를 안내 받았으며

곧 각양각색의 바이오로이드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 모두가 어쩐지 '사람'같단

인상을 받아 사실은 다들 바이오로이드인 척하는 몰래 카메라인가 의심마저 들

정도로, 분명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고 들었지만 화기애애하며 밝은 분위기였다.

인류가 멸망한 다음 AI만이 남은 세상이 이런 모양새가 되는 건가?

한참후에 함내를 전부 돌아본 나는 소완이라고 불리우는 최상급 개체가 내어준

미트파이를 대접 받은 뒤에도 무려 바이오로이드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몇몇의

시설들을 구경하고 마련된 독방에서 휴식 시간을 가졌다가 취침 소등할 시각이

되어서야 소문의 '사령관'과 만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콘스탄챠 기체의 안내를 받아 함교를 지나서 함장실로 향했다.

 

 

.. 안녕하세요?

멀끔한 인상의 청년이 가볍게 내게 인사를 건네자, 그 낯선 중저음의 음성에

어쩐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예, 아.. 안녕하세요...

 

함장실에 오기 전까지는 특별히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문득 내 생사여탈권이

오롯이 이자의 손아귀에 달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때문인지 조금, 어색하고 기류가 우리 둘 사이에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저

사령관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 귀의 하얀 바이오로이드와 저만치 뒤에

자리를 잡고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 콘스탄챠 모델과 그리고 사령관의 옆에서

선 채 나를 관찰하듯 구경하고 있는 백금발에 제복을 걸치고 있는 소녀.

이 불편한 집단 사이에, 마치 점도 높은 액체가 와류를 형성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무거운 분위기를 지워버린 존재는 바로 사령관이었다.

뜬금없긴 했지만 사령관은 내가 처한 이 상황에 잔뜩 공감해주었다. 듣기로는

사령관 자신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로 불려온 존재이며 아직 자신 역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단계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함내의 재밌는 얘기를

조금 늘어놓았다. 사령관은 곧 하얀 고양이 바이오로이드 CS페로와 한랭지의

지휘관 개체라고 하는 백금발 미소녀 바이오로이드 레오나를 소개해줬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샌가 콘스탄챠S2 모델이 차를 내왔다. 자연스럽게

찻잔을 받고 바로 탁자 위에 내려놓았는데, 사령관은 콘스탄챠가 내온 찻잔을

받자마자 "고마워,"라고 말하고 싱긋 웃어보이며 홀짝 마신 뒤 소리가 안 나게

살짝 탁자 위, 내 찻잔 맞은 편에 내려놓은 뒤 콘스탄챠 모델을 향해 "맛있구나"

하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과 차이를 보고 어쩐지 나는 수치심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뒤늦게 나도 고개를 푹 숙이고 '고마워'라고 작게 말했다.

사령관과 눈빛을 주고 받던 콘스탄챠 모델은 의외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나를 살짝 바라보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하고 물러섰다. 사령관은 또

평범한 일상 얘기를 늘어놓았는데 어느 순간 우린 '얼마 남지 않은 협력자이자

파트너'라는 이유로 말을 놓고 편하게 얘기하면서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속으로 참으로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최종 안건은,

최소 1달 간은 사령관을 경호하는 컴패니언 모델과 함께 자신과 동행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인간에게 무조건 복종을 해야 하는 인공 생명체와 사실상 다를 바

없는 현재의 나에게 지시가 아닌 제안이라.

'사령관은 다소 별나다'는 모 바이오로이드의 평이 조금 이해가 가는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나자 긴장이 풀리면서 사령관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바이오로이드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간단히 사랑에 빠지도록 설계되었다.

더군다나 그는 지금 바이오로이드인 '내'가 처음으로 보는 인간. 오리의 새끼가

처음에 본 생물체를 부모로 여기고 따르듯이 어쩌면 바이오로이드로서의 나도

같은 맥락으로 영향을 받고 있거나 받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그럼, 밤이 늦었으니 이만 해산하자.

...나는 오르카호의 사령관으로서 할 일이 아직

남았기 때문에 더 있다가 자야될 것 같아.

..아,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 이름은 기억났어?

 

 

이름........

모르겠어...

 

오늘 하루동안 특별히 건진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조금 전 쓰러진

기억조차도 그 날붙이에 맞아서 쓰러진 대상이 나였는지 아니면 철충들에게

당한 피해자들 중에 한 명인지에 대한 확신도 들지 않는다.

갑자기 오르카 호의 함장실을 밝히고 있는 주황색 랜턴의 밝기가 어두워지고

어둠이 부쩍 커져서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공포감이 엄습해오면서 어깨가

떨리기 시작하려는 순간에, 나를 안심시키는 중저음의 상냥한 목소리가 마치

부드럽게 껴안아 안심시키듯이 귓가에 들려왔다.

 

 

그러면 기억나기 전까지는

'소나'라고 불러도 될까?

...별 건 아니지만. 페르소나(Persona)에서

따온 거야.

 

 

페르소나. 그것이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면이라고 할 수 있는 심리학 용어이다.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지금 당장은 앞으로 쌓아가는 현재에 온전히

의존해 새로운 인격을 형성해야 하며 현재 상황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나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이런 용어들을 알고 있을 정도면 원래 '나'는 꽤 교양을 갖춘 사람이

아닐까 하는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소나..

그래. 그게 지금의 내 이름인 거네.

고마워, 사령관! ..아, 난 아직 네 이르..

 

 

 

잘자, 소나.

엇..

통성명에 실패해버렸다. 그토록 친절하던 사령관이 처음으로 단칼에 화제를

전환해버렸다. 마치 선을 긋는 것처럼. 어쩐지 그 사실이 날카로운 비수가 돼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혹시 내가 말실수한 게 있나' 의심마저

들었다.

이 1초도 지나지 않는 찰나에 사령관의 안색을 살피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는

동안 '사령관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는 아픈 사실이 또 다시 한번

뒤통수를 가격하는 듯했다.

 

 

 

 

응... 잘 자...

혼자 오해하고 혼자 이해했다. 그 사실이 조금은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사령관이

버티고 있는 중압감과 그 또한 가지고 있을 슬픔, 불안함이 와닿았다. 그런 와중

내가 상처받지 않게 하고자 하였음에 따스한 위로마저 느꼈다.

 

걱정이 사라지자 차갑게 느껴졌던 사령관의 작별 인사는 차까운 껍질이 벗겨져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그 온기가 드러난다.

'잘자 소나' 단 두마디뿐인 작별 인삿말에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대고 몸 전체에

부유감이 느껴질 정도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한편 왠지 몽롱하기까지 한다.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홍조가 띄어졌다.

이, 이게 바이오로이드의 신진대사라니.. ..연애도 못해봤는데 첫사랑이 남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겠어..... 나참 '내 꿈 꿔'까지 붙었으면 저기

CS페로 모델에게 볼썽사나운 꼴을 보일 뻔했잖아 ...

 

 

-제2인간 암컷 타락까지 앞으로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