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추석 연휴로 일이 없다기에 출근하기로 결정했다. 어제도 출근해야 했지만 쉬었지. 체력
너무 부족했고 표현은 안 했지만 친구놈이 사준 치킨 먹고 속이 나빴다. 내가 치즈 소화 잘 못한다
그렇게 말하는데도 왜 굳이 사주는지 모르겠다. 21,000원짜리 치킨값 중 20,000원은 내가 냈으니
내가 샀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친구는 추석이라 고향에 내려간대서 새벽에 같이 출발했다. 당분간 외롭겠군. 오전에는
104동 42층에서 창틀에 떨어진 돌부스러기들을 처리해 달라고 한다. 가 보니 별 거 없었다.
바닥이 더럽길래 바닥 청소 좀 하고 아랫층 구경까지 한 뒤 8시에 1층에 내려가 합류.
야적장에서 하루종일 무지성 노가다해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도로 올라가서 2, 3층 주차장의
트렌치 인근에 산재한 자재류 등을 정리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다. 잔잔하게도 일감이 많구만.
오후에는 밥 먹은 뒤에 안 쉬고 곧바로 일 시작해서 15시에 끝내준다고 하더라. 별로 안 내킴.
아무튼 식사를 하러 가는 도중에 공간아트라는 업체로부터 21시부터 24시까지 시급 3만원의
공연 무대 철거일을 의뢰 받았다. 그리고 오후는 이어서 목재들을 수거. 시간 안 가네.
이후에는 이팀장님과 합류해서 트렌치 내부에 쌓여있는 흙더미들을 손으로 퍼내게 되었다.
힘든 건 아닌데 아무래도 비위가 필요한 일인듯 각종 벌레 시체도 많았다. 아무튼 마대에다
담고 모아서 버린 뒤에 귀가했다. 이렇게 하루를 끝냈다면 좋았으련만.
일단 그 다음날 친구들과 약속이 있기 때문에 길었던 머리를 이발하고 왁싱 모델 일이라도
받을까 싶어서 길렀던 수염도 면도하고 공간아트라는 업체에서 받은 내용대로 철거일이나
하러 출발했다. 이렇게 꽃단장하고 심야 철거 작업하러 간다니 눈물 나는군. 늦으면 나쁘니
1시간 일찍 도착했다. 그냥 도망칠걸.
나까지 포함해서 2명을 불렀던데 현장 담당자인지 대표인지 하는 사람과 통화한 순간 알아차렸다.
이 현장은 열심히 하면 손해보는 현장이라는 곳을.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꼰대력 및 현장의 분위기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옛날 옛적 드라마 촬영 소품팀에서 일했던 악몽이 떠오르더라.
일하기 전에 대기하면서 용역분과 얘기를 나눠보니 뭔가 핀트가 안 맞았다. 알고 보니 시급 5만원
인 줄 알았더니 일당이 5만원이더군. 이야기가 얼추 진행되자 용역분은 곧바로 탈주해버리셨더라.
일단 대표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니 '시급 5만원 주는 일이 세상에 어딨냐'며 콧방귀를 끼신다.
노가다판에서는 오후 5시만 넘기면 시급 3만원이고 심야로 넘어가면 1.5배~2배까지 준단 사실을
모르시는 것 같군. 짜증나서 나도 보는 앞에서 탈주해버리려다가 참았다.
일은 적당히 빡셌다. 일당 5만원에 치면 체력을 꽤 쓴다. 에이원맨파워 업체에서 받은 의뢰들은
이것보다도 힘을 더 안 쓰고 주간에다가 겨우 2~3시간만 하고도 최소한 6만원은 받는데 말이지.
이래저래 수지타산이 안 맞는데도 굳이 남아준 것은 '한 번쯤 무대 철거일을 해보고 싶어서'이다.
다음부턴 무대 철거일 의뢰 들어오면 꼭 제대로 얘길 나눠보고 해야겠다.
꽤 빡치는 건 통화상으로도 분명히 시급 5만원이라고 했고 문자상으로도 시급 5만원이란 말이
애매하지만 있었던 것. 여기에다 더 대놓고 진짜 시급 5만원이 맞냐고 더 따지고 들어갈 이유도
없었다. 왜냐하면 노가다판에서 시급 5만원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고 아프리카TV에서 근무하는
내 친구의 말에 따르면 엔터업계가 돈을 많이 쓴다고 했으니까.
아무튼 철거라고 해서 무슨 일을 하나 했는데 뭐 거의 짐 나르기였다. 기술이 필요한 건 없었다.
절단하는 등 칼날과 불똥이 튀는 일이 있을까봐 보안경과 안전모도 챙겼는데 쓸모 없게 되었다.
아예 일이 편한 건 아니고 무거운 것들을 몇몇 들고 날라야 해서 내가 땀 흘릴 정도였다.
한편 엔터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랑 일할 때면 언제나 조금 비뚤어진 사람이 많다는 인상이 있다.
노가다판보다도 오히려 꼰대가 많은듯.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 말해보니까 직원조차 아니었고
나처럼 일일 단기로 불려 나온 사람인데 그냥 불러주니 나오는 사람들이더라. 이런 강도의 일을
이런 시간에 이 돈 받고 할 바엔 노가다 뛰는 게 훨씬 체력/시간적으로 이득인데 이해가 안 되어
인력 사무소 소개나 해주려다가 그냥 말았다. 돕고 싶지도 않더군.
대충 일 끝나고 집 돌아가는데 뒤통수 맞은 것처럼 더러운 기분이라 아이스크림 3개피 연속으로
피우고 잤다. 어쨌든 공연 무대 철거일을 한번이라도 해본 게 가장 큰 수확이네. 내 나이 30대면
충분히 적지도 않은 나이인데 왜 노가다판에서도 잘 못 듣는 반말 들으며 애기 취급 받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가는군. 내가 좀 동안이긴 하다만.
아무튼 잊지 않겠다, 공간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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