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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아무 얘기

올해는 삼재라더니

by 레블리첸 2020. 3. 13.

 

 

 

작년 겨울 혼자서 영화 《조커》를 보러가는 길에 웬 낯선 남자가 길을 물어왔는데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서 시간이 꽤 남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 관계로 안내를 해주었더니 뜬금없이 내

관상을 봐줄테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더라. '그래 내가 왕이 될 상인가'하려다가

연애와 운이 없는 것 같은데 결혼을 할 수 있을런지 물어보니 전체적으로 봤을 때 못난 상이

아닌데 본인 스스로가 사실은 연애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늦어도 30대 중반

즈음에는 결혼을 하게 될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예언하더라.

시간 괜찮으면 좀더 어울려달라는 말에 곧 영화가 시작된다며 뒤돌아 내 갈길을 재촉했는데

저만치 뒤에서 '내년부터 삼재인 건 알고 있느냐'고 아우성을 쳤다. 생년월일 같은 거 알려준

적이 없는데 네이버에 검색해보니까 실제로 작년 기준 내년부터 삼재가 맞는 것을 확인하고

참으로 기묘한 일이로군 생각하고 영화관으로 서둘렀다.

삼재는 간단히 설명하면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운 시기로 생명의 위험이나 재정적인 위기가

될 수 있는데 이겨내면 거쳐온 화가 복으로 변해서 돌아올 수도 있다 한다. 내 목숨 내어주면

그만이고 재정적 위기는 어떻게든 버텨내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말았다.

결국 맞이하게 된 삼재인 올해. 재정난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꽤 많은 풍파가 있었다. 우선

첫번째로 얼마 비용이 들지 않을 줄 알았던 치질 수술이 입원을 하게 되며 꽤 큰 충격을 내게

안겨주었다. 이어지는 2월에는 대학 등록금을 납부하니까 통장에 오랜만에 바람이 불어댔다.

이번 달에 들어서는 피부과에서 나름 거금을 들여 점을 제거했고 나 자신을 꾸미기 시작해서

항상 갔던 동네 시장이 아닌 제대로 된 가게에서 코트를 구매했다. 갈아엎은 피부가 진정되면

향수와 피부 화장품을 구매하고 그만큼 머리가 길어졌으니 비싼 값을 치뤄서라도 미용실에서

사람답게 머리를 잘라볼 예정이다.

이렇게 돈을 펑펑 쓰면서 그만큼 줄어든 통장 잔고를 보니 속이 쓰린 한편 이후 학교를 다니며

제대로 된 알바 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커지기도 하는데 여기에 바이러스까지

성황이라 기업이 휘청이는 바람에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며 이제 와선

제대로 공부를 따라가서 학점 관리는 가능할지에 대한 두려움까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놀지도 않고 꾸준히 자격증 공부를 해왔으니 덕분에 아주 대단하신

수준까진 아니지만 적어도 중소기업에서는 환영할 만한 급의 스펙을 갖추게 됐었고 그건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수월하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은 품을 수 있지만서도 여전히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어느샌가 '나이'가 내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십대 중반까진 어느 회사에 들어가도 막내라인을 벗어나지

못해서 전혀 긴장을 할 수 없었는데 후반이 되니까 갑자기 세월 체감이 훅 들어오대.

하지만 삼재가 지나면 겪었던 화가 복으로 바뀐다고도 하고 막혀서 들어오지 못했던 재물운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는 강력한 리워드가 따른다는 말이 있더라.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비용을 들어 투자한 것들로 얻게 될 이점을 생각해보면, 결코 헛된 게 아니란 생각이 들긴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각해져서 업무에 큰 지장을 초래했던 치질도 이번 참에 뜯어고쳤고 어릴

적부터 계속 신경이 쓰였던 얼굴의 점을 제거했고 피부도 갈아엎었다. 무엇보다도 버텨내기만

한다면 고졸 타이틀을 벗어나 4년제 대졸자로서 한단계 높은 수준의 기업을 노릴 수 있게 된다.

지금 돈이 부족해진 이유는 계산을 실수해서 너무 많은 돈을 예금으로 묶어놨기 때문이지 딱히

가난해진 것도 아니고 올해만 버티면 다시 이자를 포함해 원금을 돌려받을 수가 있고 급해지면

까짓거 조금 아까워도 예금 해지하면 된다.

소개팅에서 두들겨맞은 덕분에 올해는 스펙 쌓기보다 자기 관리를 할 줄 아는 남자로 거듭나길

목표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학점 관리를 해줘야하지만 약 3년동안 놓아버렸던 전공 공부를

이제 와서 붙잡고 제대로 해낸다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는 것 같으니까 올해는 살아남기에 보다

치중을 해야겠더라.

다만 걱정인 부분이라면 빌어먹을 바이러스 사태가 점점 더 심각해져서 최악의 경우, 예정보다

빨리 원룸 생활을 시작하게 되어서 묶어뒀던 예금을 통째로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튼 삼재라는 말에 걸맞게 이래저래 불안 요소가 많이도 겹쳐져서

잠도 제대로 못이루고 있는데 이런 곳에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