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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yReview/▶ About Anything

남자 자존감 빨아먹는 글램 사용 후기

by 레블리첸 2020. 3. 17.

 

 

'첫 소개팅'에서 셀카 연습 좀 많이 하라는 조언을 괜히 받은 게 아니더군.

 

“ 그렇게 생겨먹어도 골드 턱걸이는 하시는군요.. ”

 

“ 다.. 닥쳐 ”

평소 셀카를 즐겨찍는 타입도 아니거니와 모아둔 것도 없어서 승부용 셀카가 없었고 미래를

위해 퇴사 후 막 복학한 시점이라 늦은 나이 28살에 직업이 대학생인 게 아마 크게 결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 변명이다.

 

 


시작하게 된 계기

이번 달에 들어 갑자기 부쩍 외롭고 급격히 우울해져 극단적인 생각마저도 들기 시작하더라.

물론 자해를 해본 경험도 없고 정신질환 없는 멘탈이 튼튼한 사람이라서 걱정해주실 필요는

없다. 아마 원인은 퇴사 후 '톱니바퀴'로서의 자신을 잃은 상태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지는 바

람에 장기간 자가 격리가 지속됐고 준비했던 자격증 시험들이 연기되는 바람에 붕뜬 상태가

되어서 그런 것 같다. 시간 죽일만한 거리를 찾거나 사람과 소통을 하면 낫겠지.

*실제로 이 원고를 작성하던 시점(3월 초)에 비해, 대학 개강이 시작된 지금은 우울할 겨를이

없고 연애를 할 여유도 못느끼고 있다. 지금 나의 머리에는 데이트 코스보다 공식을 더 많이

집어넣어야 한다.

연애는 취직 후 나이 서른 즈음부터 시작하기로 예정했었지만 돌연 생각이 드는 게 만약 그때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은 연애를 하게 되면 내게 시간을 뺏긴 상대는 내 비슷한 또래일테니 꽤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미안해졌고 따라서 아직 30줄을 넘기지 않은 지금 연애 경험을 쌓는 편이

나와 상대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헤어지게 되더라도 나와 상대에게 큰 짐이 안

되는 시기에.

연애 경험 없는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는 것조차도 버거운데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더욱 그렇다.

더 늦어지기 전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해봐야 하는데 남고 공대 군대 회사 복학 루트를 탄 나에겐

소개팅을 해줄만한 친구가 전혀 없게 됐다. 아무런 인맥도 없는 내가 이성 친구를 어찌 사귈 수

있을까. 대학에 들어간다면 소개팅이라도 애걸복걸하련만 현재 개강 연기로 싸해진 이 시국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해서 찾은 결론이 '글램'이었다.

 


글램은 어떤 어플인가?

 

 

어플은 총 5개의 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첫번째 탭에서는 두 명의 대상을 소개 받고 그중

한 명에게만 '좋아요'라고 불리는 구애를 할 수 있다. 나머지 한 명에게 보내려면 결제 후에

얻을 수 있는 재화를 소모해야 하며, 심심한 경우 아래로 더 스크롤하면 더 많은 이성 유저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고 외모에 대해 평점을 매길 수 있다.

여성분들은 제법 날카롭게 남성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점수를 주는 것 같은데 남자는 대게

어필에서 여자들이 던진 떡밥에 허덕이다, 지쳐 할 일이 없으면 실시간 추천인의 프로필을

구경하면서 5점을 뿌려댄다. 상대에게 5점을 줄 시, '나를 높게 평가'한 사람 목록에 표시가

되기 때문에 상대와 조금이라도 접점을 갖기 위해 5점을 안 줄 이유가 없다.

여성 유저가 작성한 글램 어플 사용 후기를 보면 백이면 백 다이아몬드 티어에 있는 의문은

이것으로 해소되겠지.

 

 

 

2번째 탭은 '어필'이라고 불리는 공간으로 '인스타그램'과 같이 사진 또는 짧막한 글을 게시하여

이성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곳이다. 특이한 부분이라면 남녀의 사용 가능한 영역을 완전히

구분해놓아서 남자는 남자가 쓴 글을 볼 수 없고 프로필 확인도 안 되며 답글도 달 수 없다. 아마

여자도 동성에 한해선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작성한 어필이 동성의 무수한 어필 공세에 묻힌

건지 아니면 도배가 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남자인 나는 여자가 쓴 짧막한 글, 심지어는 반려견 사진에조차 한 번만 연락 주세요, 우리 개랑

같이 산책시켜요 등등 수십개의 덧글들이 몇초 간격으로 달리는 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웃긴 건 그들 전부 무시 당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여성의 글에서 봤던 닉네임을 또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모 남성 유저분이 작성한 글램 사용 후기에 '남자들이 하도 어르고 달래대니 여성 유저의

콧대만 높아져간다'고 일침했나 보다.

참고로 여성 유저들의 어필을 새로 고침하는 경우 접속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는 5분에 1, 2개

꼴로 업로드되고 동틀녘 즈음에는 30분에 1개 정도가 올라오는데 놀랍게도 달리는 덧글의 수는

엇비슷하다. 남자들의 성에 대한 집념은 정말 대단하다.

 

 

 

 

3번째 탭에서는 자신을 높게 평가한 사람, 내가 높게 평가한 사람 목록을 확인 가능한데

특별한 의미는 없다. 4번째 탭에서는 서로 '좋아요'가 일치한 대상과 결제를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는 공간인데 써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고 마지막 탭에서는 프로필을 수정할 수가

있다.

 

 

 


결제 좀 해보셨습니까?

'좋아요'를 날려도 회신이 없는데 무한정 뻐꾸기만을 날리기 위해서 결제를 할 수도 없는 노릇.

글램 개발자 양반은 돈을 빨아먹기 위한 판단을 그르쳤다. 서로 신호를 주고 받는 건 무제한에

공짜여도 대화방 개설 단가를 높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얼굴값 하시는 남자들 후기를 보니

대화방이 개설되어도 얼마 못가 쫑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듯하다. 상대방이 글램을 설치하고

사진만 올려두고 삭제했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어쩌면 유령에게 열심히 헛수고하면서 헛돈만 쓴 게 아닌가 싶어서 날이 갈수록 공허해지기만

하고 아무리 구애 공세를 펼쳐도 답이 없어 자존감만 떨어져간다. '남자를 호구로 안다'는 글이

괜히 쓰여진 게 아니더라. 결국 주인이 실존하든 말든 예쁜 인물 사진 몇장 올려두면 어리석고

순진한 남자들은 결제를 해가면서 뻐꾸기를 날려대는 거다.


결론은?

 

 

원고상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구애 공세를 펼쳐볼 예정이라고 썼지만 대학 개강이 시작되고

예상 공부량과 난이도를 실제로 마주해보니까 절대로 그럴 여유가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글램을 하면서 카톡 차단한 이성 친구에게 돌아오지 않을 메세지를 날려대는 남자들의

처절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자존감이 깎여나가며 더욱 우울해지니 차라리 친구에게

소개팅을 받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건 다른 분들 사용 후기를 읽어보니 남녀마다 글램을 보는 시점이 다르다는 부분인데,

여성들은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야 아무 글을 던져도 수십개씩 덧글이 달리고 원한다면서

욕정하는 무리들이 달려드니 재미있을만도 하다.

반면 남자들은 나처럼 자존감이 대폭 하락되어, 결국 어플을 삭제하는 경우가 빈번한 모양이다.

다시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들의 무리로 나뉘어지는 셈이다. 역사는 항상 반복되듯이

선택받은 사람들은 또 쉽게 쉽게 상대를 내치고 여성은 상처 받아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잠근다.

그러는 와중에도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열심히 애정을 갈구하지만 턱도 없다.

글램 커플 성사율이 낮은 이유?

여자는 남자에 비해 멘탈이 약하고 쉽게 무너진다. 성차별적 발언이 맞다. 남녀는 원래 다르니.

나이를 먹어 여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선 많이

자유로워지지만 '여자는 감정의 노예'라는 말이 괜히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똑같은 정신적 상해를 입었을 때 남자는 속된 표현으로 '딸 한번 치고 극상의 정신 상태로 회복'

이 가능하지만 여성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들여야 한다. 똑같이 딸 한 번 치고서 멘탈 회복이

된다고 가정해도 과연 남성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당장 나만 봐도 3월 초까지 '외로워서

죽을 것만 같다'고 징징거렸는데 2일 전 개강해서 할 일이 주어지자마자 싹다 잊었다.

최근 일본어 공부 때문에 시작한 트위터에서만 봐도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하고 자해를 하거나

가상의 적군을 만들어 열심히 쉐도우 복싱을 하는 등의 마침내 무너져내리고만 여성의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개중에는 원나잇을 통해 분비되는 도파민과 그런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망치고 있는 생각으로

흥분을 하는 어린 여자들도 있었고 철없는 남자들은 이런 미숙한 상대가 속으로 썩어 곪아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마치 글램에서 그러듯 좋다고 달려들어 열심히 허덕이고 있었다.

이는 뜬금없고 관련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을텐데, 짝을 구하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남자의 품질과 무관하게

어쨌든 짝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개차반 양아치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할 여자는 아마 없다.

그런데도 글램에는 여전히 '짝을 구하지 못한 남자 및 여자'가 넘쳐난다. 일주일 정도 글램을 쭉

지켜봐오니 봤던 사람을 계속 보게 되었고 이쯤에서 의문이 들었다. 남자들은 얼굴이 합격점을

받지 못해서 계속 남아있다고 가정해도 왜 여자들은 남아있는 걸까.

글램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있다. 유유상종이라니 여기 모인 남자 역시 나랑 처지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처럼 친구 없는 찐따거나 아니면 원나잇이나 할 여자를 찾는 능력있는 남자거나.

아무래도 온라인상으로 이뤄지는 만남이기 때문에 후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냥터겠지.

얽혀있는 이해 관계가 없으니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리면 다신 볼 일 없으니.

어쨌든 여자들도 극히 외로운 상태일텐데 위에서 지겹도록 말했던 '위태로운 정신 상태'를 어필

등에서 자신에게 열심히 구애하며 필요로 하는 남자들을 보면서 멘탈을 회복하고 '헌팅 포차'의

여왕벌이라는 부류들이 그러듯 이를 즐기고 몇몇은 중독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남자는 끊임없이 허덕이지만 여자 입장에선 상대가 '제대로 된 놈'인지 확인할 수단이 부족하고

실제 만남으로 이루어져도 얼굴값하는 남자들이 늘 그렇듯 만남에 진중함을 읽을 수 없으니

포기하고 떡밥만 던지고 남자들이 이걸 물었을 때의 손맛만을 즐기는 여자들만이 남게 된다.

*얼굴 점수 떨어지는 남자는 서류 전형 탈락이다.

그리고 남자는 글램에서 애인을 사귈 수 있다는 헛소문이나 광고를 접하고 이에 혹해서 접근을

했다가 길어봤자 한 일주일 정도 돌아오지 않는 답에 자존감 소모해가며 허덕이다 결국 어플을

삭제하는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이다.

“ 그건 너가... ”

“ 글램에서 짝을 못만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튼 아님. ”

 

 

 


사용 후기 한줄평

차라리 '커넥팅'을 하거나 친구에게 소개팅을 부탁하는 게 낫다.

 

글램에는 욕망의 망자들밖에 남아있지 않다. 여자들은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자신을 필요로

하는 남자들을 보는 것만으로 채우고 있고 남자들은 외로움에 이성적인 판단을 잃고 허덕이길

반복하고 있다. 당연히 극히 낮은 확률로 제대로 된 만남이 이뤄질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에

기댈 바에는 차라리 친구에게 소개팅을 받도록 하자. 친구가 없으면 만들자.

 

 

그럼 전 애니 보러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