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보다도 아침에 모기 물린 것이 더 인상에 남을 것 같네. 이렇게 일기 서두에 적혀있긴 하지만 정작
모기 물렸던 건 지금에서는 생각나지도 않는 것을 보니까 당장의 불쾌감은 사소한 것이나마 스스로의
노력과 정신력으로 일구어낸 어떤 성취에 따른 달성감에 비할 바가 못되는 셈이다. 조금 더 일찍 이런
맛을 알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어른이 되어 있었겠지. 인생의 절반 손해 봤군.
시험장 근처에 공원이 있었다. 무료 급식소가 있는 날인지 어르신들이 엄청나게 긴 줄을 이루고 있고
한쪽에서는 바둑과 장기를 두고 계시더군. 무료 급식소 음식 얻어먹고 싶었다. 낙원 뭐시기 상가라고
꽤 유명한 악기 상가가 있는 것 같더라. 시간이 조금 있었다면 둘러봤으려나.
HSk는 응시료가 더럽게 비싸다. 최고 난이도인 6급의 응시료가 13만원이었던가. 한자 1급 급수 자격증이
3만원, JLPT N1이 5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거기다가 이 시험은 전자의 둘과는
다르게 2년이라는 유통기한까지 딸려있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군. 하지만 대충 따보기로 했다.
시험 응시료가 왜 비싼 건지 도착해보니 알겠더라. 알겠다고 했지, 이해가 된다고는 안 했다. 한자와 일어
자격증 시험은 학교를 대여해서 진행됐는데 HSK는 학원을 대여해서 시험을 진행한다. 시험 응시자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탓이려나. 1급 응시생이 나를 포함해서 5명 정도 있던 것 같다. 고사장을 쪼개놓은 건지
알 도리가 없다만. 어쨌든 학교 규모의 응시생에 비하면 학원 규모의 응시생이 적긴 하지.
장점을 적자면 학원 건물이기 때문에 시험을 보기에는 나름 쾌적하다. 개인 좌석마다 헤드셋이 제공되서
전파음과 공명음이 뒤섞인 교내 방송으로 듣기 시험을 치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장점이겠다. 그렇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학원은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대여에 대해 엄격하여 시험 시간 이전에
미리 착석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미리 시험 시각보다 2시간 일찍 도착했는데 입장을 안 시켜줘서
결국 커피 한잔 홀짝이며 주변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이나 보냈다. 바람이 선선하고 볕은 따뜻했다.
그러고 보니 고사장 입실하는 순간부터 미리 전자기기를 제출해야 했지. 자습 시간이 모자라다.
Q. 그래서 HSK 1급은 어땠습니까?
시험이 다소 불친절하다. 시험 감독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분명히 초급자 수준의
시험을 보러 왔을텐데 시험 문제 자체는 번역해주지 않더군.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중국어 수준이 정말
HSK 1급 레벨인데 시험 문제와 안내문을 유창한 중국어로 들려주니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심지어 시험 문제 예시를 들려주는 건데도 문제라고 생각해서 풀어버리기까지 했다. 당연히도 정정하긴
했지만. JLPT N1은 최고 수준인 N1 난이도에서조차도 한국말로 시험 문제를 느긋하게 읽어줘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기 때문에 더욱 대조적으로 느껴지더라.
아무튼 HSK 1급의 수준은 초등학생 3학년 내지 5학년 수준이다. 시험지도 초등학생 학습지 같이 생겼다.
간단명료하게도 듣기 영역과 독해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듣기는 상황에 알맞는 다음 대사를 찾으면 되고
독해는 알맞는 단어 넣기 정도다. 인터넷상으로 응시하는 IBT타입이었기 때문에 시험용 소프트웨어에만
익숙해지면 어려울 거 없다.
30살 먹고 중국어 교재 조금 읽기만 해본 내가 느낀 각 시험 부문 체감은 이하와 같다.
<듣기 영역>
중국어 공부했는데 왜 한마디도 안 들리죠
진심으로 한 마디도 안 들렸다. 단어라도 주워들어야 하는데 도통 들리지가 않았다. 헤드셋 상태는
훌륭했는데 내 귀가 이상했다. 모든 단어가 다 똑같이 들리고 아무래도 망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나름대로 열심히 중국어 회화 들으면서 출퇴근하기까지 했는데 기묘한 일이다.
역시 중국 드라마라던가 중국 게임 같은 것이라도 해서 귀를 열어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중국 드라마는 왠지 진입장벽이 있고 게임에는 백도어 프로그램 깔려있잖아.
<독해 영역>
편-안 그 자체
참고로 필자는 JLPT N1과 한자 1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자의 골자를 이해하고 있고
웬만한 한자는 알고 있다. 당연히 중국어 중에는 기발한 한자 단어가 있고 외래어의 발음과 유사하도록
발음할 수 있는 독특한 한자 단어도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대표적으로 코가콜라 같은. 아무튼 다 알 수
없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한자를 보는 것만으로 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Q. 그래서 결과는요?
오해하실까봐 말하지만 HSK 시험은 JLPT나 한자 급수 자격증과 다르게 급수가 높을수록 고급 시험이다.
어쨌든 가뿐히 합격했다. 시험 끝난 후 듣기 영역 때문에 왠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참
다행스럽게도 HSK는 무조건 총점으로만 합격 기준을 나누더라. 그래서 떨어질 거라는 걱정은 안 했었다.
그럼 이제 차분히 HSK 2급 응시나 해볼까나.
아니 근데 뭔놈의 시험 결과를 이렇게나 늦게 알려주나 모르겠다. 무려 IBT 시험인데 말이지. 응시자 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기다리다가 열받아서 중국어 공부에 대한 흥이 깨져버렸다. 하지만 일단 이제 당분간은
필기 자료 정리를 좀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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