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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아무 얘기

내가 당신이었으면 사람을 죽였겠죠

by 레블리첸 2022. 9. 10.

 

 

 

 

 

 

방금 전 한 생명을 죽였다. 그녀는 머잖아 누군가의 어미가 됐을지도 몰랐다. 동냥을 강요하며 집에 찾아온

그녀에게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듯이 방안의 불을 밝히고서 마치 선물이라도 줄 것마냥 찾는 시늉을 하였다.

곧 지쳐서 벽에 기대어 쉬고 있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미리 준비해놓은 전기충격기로 기절을 시킨

다음 엄지로 그 가녀린 신체를 짓눌러 소리없이 이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주검을 수습하며 되돌아오지 않을 질문을 던졌다. 왜 구태여 가진 것이라고는 그들 자신만의 세상뿐이 없는

이 빈자의 소굴까지 들이닥쳐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짓을 하였느냐고. 내 작은 고시원 방안에는 공기청정기

돌아가는 소음만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대답을 할 수 없는 망자를 대변하여 가로되 부유한 사람들의 저택은

보안과 경비가 삼엄하여 그 댁 현관 문지방을 넘는 것부터 고난이기에 차라리 걸어잠글 자물쇠도 갖지 못한

집을 방문하는 편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라.

몸을 뉘울 관 없이 땅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된 당신을 내려다보니 돌연히 측은지심이 생겨서 닿지 아니할

조언을 나지막히 흘렸다. 내가 만약에 당신이었다면 사람을 죽였을 것이라고. 죽은 사람은 저항하지 않으며

가졌던 것이 세상에 회수되기 전까진 부족한 재산이나마 당신 같은 자에게는 아마도 꽤 안락한 삶의 터전과

몇끼분의 식사를 제공할 수 있었을 터. 사람 목숨이 한낱 축생보다도 못한 지금, 하물며 이 세상에서 누구도

반길 존재 없는 이 빈자의 소굴 속 주민 한둘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쯤이야. 어쩌면 누군가는 당신의 행동에

감사까지 느꼈을 거요.

지구 어딘가에서 날벼락이 떨어져 사슴인지 물소인지 들짐승의 군락이 한순간에 죽음의 땅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사체의 산더미가 방치된 결과, 그 지역의 생태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상태까지 복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이렇듯 죽음은 항상 아픔과 상처만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순환은 막아서는 안 되는데 이미 우리들은 거대한 제방을 쌓아 떠나야하는 물길을 막고 있으니 하류 지반이

바싹 말라 불모의 황야가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70억! 한창 어렸을 때 인구가 60억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조차 이 작은 행성에 인간이 너무 많다는 말이

나왔었는데 그때보다도 무려 10억이나 늘었구나. 1초마다 1명씩 죽인다고 해도 81,018일하고도 반나절이

걸리는 어마어마햔 양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사람을 한명 죽인다고 티라도 나겠습니까. 그저 주변의 동네만

하루이틀 정도 소란스럽고 말겠지. 그런데 만약에 죽은 사람이 문자 그대로 하찮고 별볼일 없었다면 오히려

땅값 떨어진다며 다들 묻으려고 할 거요. 우리 존재라는 건 더이상 발 밑의 땅만 못하니. 인권은 천정부지로

높아지는데 정작 사람 목숨은 가축만도 못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우스운 꼴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러한 연유로 저는 당신이 남을 해쳐서 당신 몸을 긍휼히 하는 것에 찬성해요. 내가 당신처럼 힘을 가지지

못했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겁니다. 약자가 손쉽게 강자를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에는 독만큼 효율이

뛰어난 무기가 없죠. 이번처럼 바보같이 목표물의 집에 불쑥 찾아와 소리로 자신을 알리지 말고 들어왔다고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기민하게 접촉하여 독을 주입하세요. 목숨이 꺼지고 그간 모은 모든 것들이 그에게서

가치를 잃었을 때 누구의 방해도 안 받으며 필요한 만큼 가져가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끝났다고 생각한 여름의 끝자락이 여전히 불쾌하게 얼굴에 부딪히는 오늘 모기 한 마리 죽여놓고 혼자 계속

이렇게 혼잣말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요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긴 한 모양이다. 사람이라도 만나서 마음을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