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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아무 얘기

결혼 안 할 거면 결혼식에 가렴

by 레블리첸 2022. 10. 17.

 

 

 

 

 

 

군대 동기가 결혼을 했다. 친하냐 아니냐를 따지자면 조금은 애매한 관계이긴 했는데 일단 지인인데다

오랜 인연이고 식장이 가까워서 참석할 만한 이유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결혼식 참가하는 걸 좋아한다.

결혼하는 당사자도 반겨주고 축복하는 자리에 가면 엄밀히 따졌을 때 나랑 크게 상관은 없는 자린데도

훈훈한 분위기에 마음이 누그러지며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안 가서

나쁠 게 없잖아.

연결되어 있는 오랜 지인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꼽을 수 있겠다. 이번에 결혼한 친구는 같이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군대 동기를 함께 만날 수 있었는데 언젠가 만나자고 떠들기만 하다

드디어 제대로 대면했다. 오랜만에 만나니까 너무 반가웠고 왠지 내일이면 휴가 복귀로 부대에 가야만

할 거 같은 오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10년이 지났는데 마치 1년도 지나지 않은듯이 모두가 그대로였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항상 나오는 군대 이야기. 그 군대 이야기를 가장 맛나게 나눌 수 있는 군대 동기와

만나니까 예전의 추억들을 곱씹으며 웃고 떠들 수 있었다.

 

 

 

 

 

한창 군대 있을 때에 한자에 재미를 들려서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들여다보고 다녔는데 그 모습을 보면

개패고 싶었다는 동기의 이야기 들으니까 재미있었는데 동시에 많이 미안했다. 군생활을 지나칠 정도로

해맑게 했어서 군대의 모든 그림자와 힘든 부분을 전부 가까운 사람들에게 떠넘겼고 혼자 무구하였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 많은 만큼 오래 숙성된 좋은 술 같은 이야깃거리가 넘쳐난다.

과거의 몰랐던 속편을 알게 되고 끊어질듯이 위태로웠던 오랜 인연의 끈이 다시금 두꺼워지는 효과까지

있는 셈이구나. 까맣게 잊고 지내던 이야기까지 상기되니 흥이 나지 않을 수 없었고 어느샌가 10년 전의

나로 돌아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많이 모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몇은 결혼식도 중요한 자리이지만 나를 보러 왔다고 말을 해주어서

기뻤다. 언젠가는 11명의 군대 동기가 전부 모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어떤 친구가 물었다.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 아직 나를 온전히 이해해줄 짝을 못찾았을 뿐이지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자신을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했다. 결혼하지 않을 것이므로 축의금을 내도 돌려받지 못할테니 결혼식에는 안 간다 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안 할 거면 더더욱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부부가 맞벌이를 한다면 당연히 혼자 벌 때보다 가계는 불어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맞벌이를 안 하면

가정이 위태로워지므로 이는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다행이라면 출산 휴가, 육아 휴직 등등의

제도가 고착화될 만큼 많은 여성이 가정을 꾸리고 은퇴하여 가정에만 전념하지 않고서 산업 인력으로

복귀하여 계속 일을 하길 소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 때문에 당연히 가정을 꾸리면 혼자서 벌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지만 동시에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젊은 부부가 함께 나아갈 길을 결혼하지 않을 사람이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혼자 살면 미래가 없는 것은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자명한 사실이니까 미래가 있는 쪽에 보탬이 되는

편이 누가 봐도 합리적일 것이다. 이는 가라앉아가는 여객선에서 미래를 위해 애를 먼저 밖에 보내고

다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성을 내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가까운 미래에 정부가

30대 이상의 독신들로부터 독신세를 납부받아 50대까지의 젋은 부부에게 생활비로 지원해준다해도

그 누가 볼멘 소리를 할 수 있겠어.

결혼하고 싶지 않으면 결혼식에 가보자. 안 죽을 거라서 장례식에 안 가는 것도 아니잖아. 진심으로

축복을 나누고 힘들게 자리해주었음에 감사를 받으면 결혼할 수 있을 때에 후다닥 결혼해야겠다는

생각마저 생길 거다. 나가서 오랫동안 못본 사람도 만나고 대화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그간

살아온 삶을 돌아보기도 하자. 과연 내가 결혼할 땐 누가 와줄까 생각하면 가까이에 있는 지인과의

연을 돈독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생길 것이다.

사실은 알고 있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결혼하지 못할테니까 다 내던지는 심정으로

독신주의자를 표방하고 있다는 거. 독 오른 독신주의자는 닭가슴살처럼 퍽퍽해진 삶을 살아 점점

괴팍해지고 고독은 가중되기 마련이니 차라리 이상주의자가 되어 서로 믿고 사랑하자. 안 되어도

적어도 노력은 기울여 봤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