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넌 이런 거 피지 마라..
피라고 칼 들고 협박해도 안 한다. 피지 말라고 칼 들고 협박하면 금단 증상으로 손 덜덜 떨며 한대만 태우게
해달라 울고불고 질질 짤 사람은 오히려 그쪽일텐데. 진짜 금연해야 한다는 말을 지겹게도 입에 달고 살지만
식후땡은 못참는다며, 사회 생활의 일부이니 어쩔 수 없다는 등 요리조리 변명거리는 요령껏도 만들지. 담배
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상기시켜주면 일이 뭐 같아서 또는 인생이 뭐 같아서 도저히 안 태우고는 버틸 수가
없다고 말하지.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참 나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은 황금의 시대라고 불려도 될 만큼 윤택하다. 갖고 싶은 건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다. 귀족의 사치품이던 그 담배를 서민들이 향유할 수도 있게 되었던 것도 그렇고.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작가가 쓴 소설이나 그린 만화, 만든 동영상을 겨우 마우스 클릭 몇번만으로 간단히 접할 수 있다.
종합 예술 작품이라고 불리는 게임조차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지.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마찬가지로 간단히
구매할 수 있고 최근에는 심지어 당일 배송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마저 대폭 감소됐다. 이런
천국이 어디 있겠냐.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다. 다같이 노를 젓고 있지. 누가 잘났으며 누가 못났고는 거시적으로 보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회사와 같은 집단에서야 상사가 존재하지 우리 인생은 저마다가 각자의 선장이니까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같은 배를 타고, 같은 흐름을 타고, 같은 풍랑을 견디고 있다. 모두가 같은 상황 속에
놓여있다. 누군가는 돛단배이거나 심지어 종이배, 요트일 수 있다만 단언컨대 나는 조각배에서 주걱따위로
열심히 물살을 가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저마다 고통을 느끼는 역치가 다르니까 당신이 힘든 것을
두고 나무랄 생각따위 없어.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강자인 내가 당연히 약자를 보며 "약하구나" 평하는 걸
나무라지 말아줬으면 한다. 겸손하게도 그런 생각을 입밖으론 내지 않았잖아.
힘들어서 담배를 핀다는 말을 들으면 웃긴다. 힘이 들면 구름 과자 태우지 말고 얼음 과자를 먹어서 당분을
채워보는 건 어때. 모든 근심 걱정 내려놓고 이불 뒤집어쓴 채 한숨 푹 자는 건 어때. 볼만한 야동 한편으로
개운하게 딸딸이나 치는 건 어때. 내가 고생을 모른다는 말을 들을 때면 웃긴다. 노가다를 뛰면서 대학교를
다녀보았나. 한겨울에 하수도에 들어가서 바닥 긁어본 적이 있나? 한여름에 우수로 가득찬 지하에 내려가
하루종일 눈삽으로 물을 퍼낸 적은 있나? 새벽 5시에 일어나 공사 현장을 찍고 퇴근하자마자 철거 현장에
출근해서 심야까지 땀 뻘뻘 흘리며 일해본 적은? 열등감에 쩔어있는 방송 업계 관리자들 사이에서 제대로
사람 대우도 못받으며 온갖 멸시와 하대를 뒤집어써가며 비위를 맞춰본 적은 있나? 회사 다니며 주말마다
헌혈하고 봉사활동한 적은 있나? 회사 퇴근한 후에 자격증 학원 다녀본 적은 있나?
그럼에도 살만한 인생이고 재미있는 삶이다. 당연히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분통이 터졌었지.
못버틸 정도로 힘든 날이면 욕심내서 아이스크림 3개 정도 먹으면 그만인 일이지만. 그래서 난 담배 안 펴.
너보다 약하지 않아서.
문신? 그냥 예뻐서 한 건데?
안 예쁘다. 무언가 바라는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인상 팍 구기며 팔뚝의 문신을 드러내는데 문신이 예뻐서
했다는 말따위 해봤자 무슨 신빙성이 생기기를 기대하는 거냐. 생쥐 시체만 봐도 기겁하는 주제에 왜 뱀과
해골을 문신으로 새겨놓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문신해놓았으면 인정이라도 하지.
미용적인 목적으로 문신을 한 게 아니라 기능적인 목적으로 문신을 한 것이 너무나 티가 난다.
약한 부위에 일부러 문신을 새겼다는 등의 주술 목적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웃음보가 터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약자의 증거인 셈이구나. 한때 나도 까마귀가 마음에 들어서 까마귀의 그림이라도
문신으로 새겨볼까 했다만 그만두었다. 문신하면 헌혈을 못하더라고. 선천적으로 약한 곳에 문신을 한다.
고대의 수렵 민족이라도 되는 걸까. 도대체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 걸까.
어떤 약한 생물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화려한 색과 장식으로 위협을 한다고 한다.
주로 물고기가 그랬던가. 버섯이 그랬던가. 뱀이 그랬던가. 그 공통점은 독이 있다는 건데 사람은 비슷한
맥락으로 무언가 독이 오른 상태라고 진단된다. 그게 강자의 표식이라는 뜻이 아니지. 사람이 품은 독은
당사자와 그 주변 사람들을 망치니까 정신병의 표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신을 근본도 없는 문신으로
도배한 사람을 보면 멋지다거나 강해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줄 착각하고 있는 걸까. 나로서는 대체 어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걸까 걱정부터 든다.
진정 강한 동물은 오히려 위장색을 띈다. 사자가 그렇다. 범이 그렇고 악어가 그렇지. 목덜미가 물리면
아무리 정신 잡고 있어도 꼼짝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 비록 내가 그런 강자는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 안 피고 문신은 하지 않는다. 이유는 말했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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