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즈레스(Jazreth)는 게임 《디아블로》시리즈의 조력자이자 대적자인데 1편에서는 아군으로서 함께
악의 세력과 맞서싸웠지만 줄거리상 최후의 전투에서 공포의 군주 '디아블로'를 맞닥뜨린 후 공포에
잠식되어 탈주해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2편에서 도망쳤던 그는 사막의 보석이라고 불리우는 루트 골레인(Lut Gholein)으로
흘러들어가 궁전을 구경하다가 고대의 대마법사가 남긴 어떤 흔적을 발견하고 젊은 군주 제린에게
이것을 연구할 수 있게 허가를 구했다.
제린의 승낙을 얻은 그는 궁전의 지하로 향했으며 그뒤 도시 사람들은 그를 찾을 수 없었다고 전하는데, 사실은 그가
고대 마법사가 창조한 공간인 비전의 성역 아케인 생츄어리로 이어지는 포탈을 열었으며 그 안에서 악마를 소환하고
빈집의 원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한편 바깥 세상은 완벽하게 봉인되지 않았던 악마가 다시금 세상에 자기 힘을
흩뿌려 괴수들이 창궐하게 되었고 이에 겁을 먹은 루트 골레인의 주민들 그중에서도 하렘의 여인들은 군주 제린에게
궁전에서 생활할 수 있게 보호를 해달라고 요청해 들어와 살았는데 하필 이때 포탈 통로를 통해 악마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해 죄없는 여인들을 무참히 도륙해버렸다.
제린은 도시 바깥을 배회하는 악의 군세와 대치하면서도 자신의 궁전에서 주거지로 침투하려는 악마까지 저지해야만
하는 사면초가의 사태에 직면했고 결국 모험가인 당신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디아블로의 세계관을 모험한 내 눈에 그는 공포에 사로잡혀 한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갈구하고 고집한
가엾은 병자로만 보였다. 한겹씩 자신을 층층히 에워싸는 촘촘하고 견고한 벽을 쌓고 그 안에 갇힌 채
좀 먹은 정신을 안고 겨우 목숨만을 부지하고 있는 늙은이. 현실과 적들로부터 눈을 돌리고 자기 안에
갇힌 폐인. 그런 부분에서 어째서인지 동질감을 느꼈다.
한때 함께 거대한 악과 맞서기 위해 싸웠던 동지이고 선배격 인물이지만 이미 착란에 빠져있어서인지
아니면 본의는 아니었으나 수많은 시민들이 죽게 만든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니 책임을 물기 위함인지
몰라도 일언반구 없이 그를 쓰러뜨렸다.
제거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고 그 광활한 성역에서 그를 찾아내는 과정도 짜증났지만 하여튼간 그가
안주하고 있는 공간에 처음 당도했을 때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부리는 악마 대군이
쏟아져나오는 것을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실제 인물이었더라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을
것 같다고.
온라인 게임의 장점 중 하나는 꾸준한 발전이지만 게임이 서비스 종료를 하게 되거나 비약적인 개발로
기껏 돈과 시간을 투자한 나의 아바타를 추억 속에 묻어야 한다는 불안과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을 영영 찾을 수 없게 된다는 단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즐겨했었던 게임을 다시 해보려니까 내가 알고 있던 과거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서 더이상
내가 플레이하고픈 게임이 아니게 되어버렸고 때로는 무심하게도 서비스를 종료해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니 게임으로 한시간 이내 시간을 죽여 미래를 앞당길 의도가 아니라면 굳이
과몰입하거나 돈을 쓸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더더욱 확고해졌다. 어느 지인의 말대로 투자했을 때 다시
반환되는 대가가 지극히 낮은 것을 알게 된 후 바다에 놀러가서 모래성을 쌓기 위해 토목공사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뒤늦게 눈치챈 것이다.
그렇지만 일하다가 시간이 남을 때 책을 보는 샌님 짓거리는 도저히 타락을 쫓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할
짓이 못되므로 여전히 머리를 비울 수 있는 게임이 하고 싶다. 그런 욕망이 자꾸 '영원히 날 떠나지 않고
내 입맛에 맞는 게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상충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디아블로2』를 색다르게 즐기기 위해 유저들이 자기
멋대로 개조를 시행하고 있는 MOD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 예를 들어 한번에 1마리밖에 소환할 수 없는
몬스터를 여러 마리 소환하거나 다른 직업군의 기술을 사용하는 등.
게임의 시스템들을 뜯어고치는 행위가 적법한가 아닌가를 떠나서 이를 이용해서 수익을 발생할 목적이
아니고 혼자 즐길 요량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소환술사 자즈레스'와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나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그 안에 빠져드는.
그러자 곧 다른 게임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 마비노기,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와 같은.
한 번쯤 '프리 서버'의 존재를 들어봤음직한 게임들 역시 어떻게든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서 혼자
즐길 요소를 만든다면 영영 게임이 서버 종료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마는 참사 등의 상황과
영영 마주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자즈레스가 걸어왔던 길을 똑같이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익사하고 마는.. 결국 뜻하지 않은 대참사의 원인이 된 그의 행동으로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느꼈을 위안과 안식이 부럽다.
나 역시 훗날 저작권 위반 등의 형태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을 알면서도 금단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을
저지할 수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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