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빨래 건조대가 갑자기 왜 필요한 건지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겠군. 새벽에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흡착식 빨래 건조대가 눈에 들어와서 구경해봤더니 재미있어 보여서 구매했지만 장난감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여야겠다. 고시원에는 다양한 세탁물 건조법이 있는데 건물 옥상 같은 공용 공간의 건조대에
널어두는 방식이 있고 보통 방 천장에 달려있는 봉에다가 걸어서 말리는 방식으로 나눌 수 있을 거다.
겨울과 여름이 각각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것 역시도 양날의 검을 가지고 있는데 옥외에서 건조 방식은
일광 소독이 가능하고 실거주가 이루어지는 방안의 습도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제대로 털지 않으면 고비 사막에서 입고 구르기라도 한 것처럼 흙과 먼지 투성이가 될 수 있고 자칫 잊고 지내다가
비라도 맞으면 말짱도로묵이 된다는 거. 도난의 위험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주로 방안에서 건조를 더
선호한다. 하지만 방안에서 건조시키면 필연적으로 실내습도가 올라간다는 단점이 있지. 게다가 보통은 침대 위에
위치하기 때문에 바지나 외투처럼 기장이 길면 바로 이마 언저리까지 내려온다는 거. 그래도 겨울에 보습 효과만은
끝내주지만.
근데 와식 생활을 하고 있어서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 위에 누워서 보내는데 바지나 셔츠가 자꾸만 모니터를 가리는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의자에 앉고 마찬가지로 책상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랑 같이 특수한 상황이랑
맞닥뜨릴 경우는 좀처럼 없을테니 공감되지 않겠지. 어쨌든 머리맡에 빨래 널고 사는 게 조금 거슬리기 시작했는데
옥상의 먼지 투성이 빨래 건조대 쓰는 건 비위생적이고 분실 위험도 있으니 다른 해결 방안을 찾은 거다. 그게 바로
벽에다 붙여서 사용 가능한 흡착식 빨래 건조대를 구매한 이유지.
무엇보다 멋있어 보여서 산 것도 있다.
딱 생각한대로라고 해야 하나. 당연히 벽지로 도배된 벽에는 사용할 수 없고 매끈매끈한 벽면에만 부착이 가능하다.
유리창이나 거울 또는 대리석 벽면 같은 곳. 고시원 복도에 붙이려 했는데 막상 붙이고 옷을 걸고 보니 다른 주민의
통행에 적잖이 방해가 되어서 결국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어차피 한 번 사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초조해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정작 꿔다 논 보릿자루 같은 신세로 만들 거 같아서 대안을 모색한 결과 방문에 달린
거울에다가 부착해서 쓰기로 했다.
만족스러운 위치는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이런 방법이 아니면 가벽을 설치할 수밖에 없는데
벌써 비현실적이잖나.
처음에는 서랍문에도 부착해보았는데 영문은 모르겠지만 곧잘 떨어지더라고. 애시당초 빨판 달린 면도기 건조대도
툭하면 떨어지니 빨래 건조대를 부착시키겠다는 게 허무맹랑한 꿈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다시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거 같군. 왜냐하면 지금 상태는 여러모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벽에 나름대로 잘 붙는 것까진 좋았는데 설치하고 빨래물을 걸어둔 다음 막상 생활해보니 출입할 때 매우 불편하더라.
옆으로 살짝 밀어 접은 다음 몸을 비틀어 방에서 나가곤 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조금 빡치는 부분은
자다 보면 새벽 중에 가끔 접착력을 잃고 바닥으로 낙하해버리는 경우가 이미 3번 정도가 있었는데 물론 바닥 청소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심히 오염되진 않지만 일단 잠이 깨서 짜증나고 빨래물이 바닥에 떨어졌으니 더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으로 두 번 빡친다.
그래도 잘 샀다는 생각은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벽에다 설치할 때마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기질이 있었는지
어떻게 하면 더욱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궁리하는데 그 과정도 즐기고 있다. 지금은 바닥에 떨어뜨렸을 경우에
세탁물이 오염되는 정도를 가급적 줄이기 위해 속옷이나 양말 같은 면적이 작은 것은 예전처럼 침대 위 빨래봉에 걸고
바지와 셔츠처럼 기장이 긴 것들만 걸어둔 채 쓰고 있다. 그러면 빨래 건조대에 더해지는 하중도 줄어들잖아.
하지만 조금 스스로가 멍청했다는 부분은 인정하고 인지하고 있다. 특히 밥을 먹으러 갈 때나 설거지하러 방을 나가고
들어갈 때마다 낑낑거리며 전신을 비틀어 어떻게든 그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몸을 비집는 자신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이게 인생이지. 생각했던대로 안 풀리는 것이 원래 인생이고 생각지도 못한 변수와 맞닥뜨린 것도 인생이다. 인생이란
그래서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 어떻게든 편하게 환경을 바꿔보겠다고 궁리한 끝에 결국 자기 집의 방문 출입 난이도를
대폭 올려버린 꼬락서니라니 같잖으면서도 귀여워 가소로웠다.
사람은 죽고 나면 다음 생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여 닮고 싶은 외형으로 태어난다고 하던가. 겨우겨우 문앞을 가로막는
건조대를 뿌리치고 방에 들어와 천천히 식사 준비를 하다가 문득 거울 속에서 기진맥진한 채 한숨을 내쉬는 나 자신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이런 귀여운 생물체가 자신이라니 꽤나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큰 흥미를 유발하는 대상이 바로 자신이거든.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짧을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까. 어떻게 그러한 행동을 할까. 가끔은 원리를 종잡을 수가 없고
시시각각 갈대처럼 마음이 바뀌며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보는 맛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라는 게 재미있다. 지루할 틈이
없어서 하루종일 집에만 있어도 즐겁다니까.
각설하고, 다음 번에 빨래할 때는 한번 다시 서랍 벽면에 붙이는 시도를 해봐야겠다. 하나 더 사고 싶어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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