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못박아둬야 할 말이 있는데 나는 나 이외의 사람에게 조금도 관심 없다. 아마 민감한 주제를 이야기할텐데 이 글을
읽고 누군가 상처받을지에 대해서는 개미 뒷다리만큼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구태여 풀어서 설명해드리자면 누군가 상처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주둥아리를
놀리고 마는 유형의 사람이니까 일침을 하고 싶으면 그 날붙이가 들만한 사람을 찌르라는 말이다.
어떻게 사람이 되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덧글을 다는 사람이 있을 거 같은데 이러한 말을 무심하게 내뱉는 사람을
용케도 사람으로 인정해준다니 감복하지 않을 수 없지만 괜히 힘 낭비하지 말고 갈길 가시라고 적어도 사람된 도리로서
조언을 드리고 싶다.
여기저기 멀쩡한 구석이 없다. 본디 육신 역시 소모품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망가져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지. 더이상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 역시 스스로를 한탄할 일이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니 말이다. 회복력도
더이상 예전같지 않다. 다양한 방면에서 힘이 부치고 있는 것을 느낀다. 단순히 체력뿐만 아니라 소화력도 떨어지고
있다. 원래 나이 서른이면 서서히 앓아가다 죽는 것이 순리인데 그 흐름을 거스르고 시간을 거역하여 삶을 영유하는
중이니 지금 받고 있는 모든 고통은 스스로 자초한 일인 셈이다.
스스로 자초한 괴로움이라지만 억울하다. 오랫동안 살만한 세상인데 오래 살아서 괴롭다니 고문이나 다름이 없잖아.
치아는 썩어문드러지고 머리는 빠지고 손발톱은 부러져대고 피부는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영원히 젊을 수 없고 육신은 슬슬 그 내구도에 한계가 다다른 셈이다. 가끔은 원인조차 모르는 편두통에 시달리거나
뜬금없이 치통에 괴로워 음식을 못씹어넘기고 소싯적엔 열받았을 때 폭식하며 화를 참지만 이젠 화난다고 무식하게
음식물을 위장에 쑤셔넣으면 그 다음날 거의 반쯤 송장이나 다름 없는 꼴이 되어버린다. 나이가 들어 몸 이곳저곳이
박살나니 살맛이 안 나는구만.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밤잠을 설치다보니 억하심정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치통이 문제라면 그냥 치아를 뽑아버리고
틀니를 끼운 채 살면 되지 않을까? 머리카락도 성가시니까 차라리 대머리가 되어 가발 쓰면 어떨까. 소화가 안 되서
괴로울 바에는 차라리 인공 위장이라도 달아버리자. 뜬금없이 안압이 높아져 발생한 편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뜯을 바에는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시각 정보를 전달해주는 의안으로 대체해버리던가. 자꾸만 부러지는 손발톱이
거슬리니까 두팔 두 다리를 뽑아서 의수와 의족을 달자. 이런 식으로 점점 신체의 이곳저곳을 기계로 대체해서 기계
인간이 된다면 갖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아마 어떤 과학자가 기계로 신체를 대체하고자 하는 연구의 실험체를 모집한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곧장 자진하여
나서겠지. 끈질기게 젊은 시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젊고 싶지가
않은 거다. 아마 오랫동안 이 세상의 오락거리들을 향유하고 싶거나 노화가 초래하는 각종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참으로 이기적이지.
사람은 원래 가지지 못한 것에 동경하고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마 같이 식사하던 노인들이 나를 보며 씹는 맛을
운운하며 상대적으로 건강한 치아 상태를 부러워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바라보면서 치아가 썩을 일 같은 것을
걱정할 필요 없는 그들을 부러워한 이유는 같은 뿌리를 공유하겠지. 이기적인 건 항상 나고. 그게 나쁘니까 지양하란
말따위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고 자동적으로 노이즈 캔슬링되는 첨단 프로세스를 가졌다. 모든 장기를 인공 장기로
교체하려면 지금 쓰고 있는 30년 이상의 중고 장기를 처분해야 한다는 거고, 외골격을 사용하려는 게 아니라면 의수
또는 의족을 쓸 경우 필연적으로 팔, 다리가 없어야 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불편함은 책상 위에 거론되지도
않은 채 오로지 이점이나 멋따위에만 안중이 있는 거다. 하지만 로봇 팔을 어떻게 참냐.
다 불편함이 따르겠지. 얼른 노쇠하고 불편한 이 육신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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