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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근무 일지

20230812 일용직 단기 연예인 행사 스텝 일기 (덕 중에 덕은 여덕이라)

by 레블리첸 2023. 8. 30.

 

 

 

 

 

 

 

 

오늘은 친구의 추천으로 어느 작가의 사인회 보조 스텝으로 일하게 되었다. 원래는 오전 11시 40분에 만나서

같이 밥 먹고 느긋하게 집결지에 가려고 했는데 시각을 착각해 친구랑 만날 예정이 어그러졌다. 어쩔 수 없지.

다행히 좋은 시각에 도착해서 설렁탕도 먹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만두 사서 먹었다. 부추가 들어가 있는

만두였는데 설렁탕은 맛있었지만 만두는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

어찌 되었든 늦지 않게 현장에 도착했다. 식사하면서 친구랑 그래도 아마 다른 알바생까지 대략 대여섯 명은

있겠지 대화 나눴는데 정말 둘이 하는 일이더군. 그리고 행사의 주인공은 일반 작가가 아닌 가수였다고 한다.

행사 이름은 <2023 이솔로몬 생일 파티 어느 벅찬 날>이었다.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참가했군.

 

 

 

 

 

 

 

 

 

 

 

집에 도착해서 느낀 벅찬 감동을 글로 남가려고 했건만 키보드가 뻑이 가서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적당히

갤럭시탭을 키보드로 사용하는 법을 알았으니 시도해볼만 하겠군. 놀랍게도 마우스도 되네. 아무튼 모 연예인의

사인회 같은 행사에서 책을 나눠주는 일이라고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정보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여태 내 온갖

경험상 연예계 관련 일용직으로 일했을 때 좋았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초장부터 잔뜩 겁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기우였다. 현장 담당자의 직책명은 리더라고 불렸는데 일용직인 나와 친구에게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주셨다. 친구랑 내가 사회 초년생이 아닌 직장인이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존중 받았고 업무

지시는 합리적이었다.

심지어 간단히 짐을 나르거나 뒷정리하는 등의 잡무를 해달라고 요청하셔도 되는데 스스로 하시더라. 이뿐만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행사가 시작되니 잠시 쉬고 오라며 카페 보내주셨다. 1시간 정도 친구랑 카페에 가서 커피를

홀짝이다가 복귀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무언가를 많이 먹이는 것이 효과가 탁월하다고 했던가.

리더 님이 지금 다니는 회사 그만두고 이쪽으로 이직하겠냐고 물으면 바로 승낙해버릴 뻔했다.

 

 

 

 

 

 

 

 

 

 

업무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도서를 선주문한 고객이 이름을 호명해주사면 두께가 대략 5cm 정도가

되는 장부에서 일치하는 성명을 찾고 구매하신 책을 드리는 일이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구매 수량을 본 후

서명 받은 다음 책을 건네드리면 되는 일. 가나다순으로 정렬된 장부는 고객의 진짜 이름과 아마도 팬 카페

등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닉네임이 혼재돠어 있어 상당히 찾기가 까다로웠다. 나름대로 리더 님이

규칙을 친절히 설명해주셨지만 밀물처럼 몰려드는 방문객들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에 숙지되기 어렵웠다.

또한 숙련된 요원이 아닌 탓에 초반에는 혼동이 있긴 했다.

업무 개선을 위해서라도 엑셀 파일을 활용해서 노트북, 태블릿을 썼다면 일처리가 더욱 깔끔하지 않았을까?

아마 직접 서명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종이 장부를 써야 했던 게 아닌가 싶지만 해당 부분은 '모두의 싸인'과

같은 것을 활용해도 좋았을 테고 말이다. 느려터질 수밖에 없는 절차에 실제로도 답답한 처리에도 불구하고

행사 이름이 생일 파티인만큼 참석자들, 간단히 말해서 팬분들이 축하를 하기 위해 기쁘게 내방해주셨기에

크게 내색하지 않고 기다려주셨고 싫은 소리 한마디도 없으셨다. 덕분에 나도 정신적이나 육체적 피로감을

덜느끼고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

 

 

 

 

 

 

 

 

 

 

 

팬 사인회가 병행되는 건지 많은 분들이 선물을 지참해오셨고 몇몇 분들은 나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하셨다.

붕어빵, 약밥, 홍삼 추출물 등등 정말 다양한 간식을 제공 받았다. 커피 사주려고 하신 팬분이 매우 많았는데

카페인을 과다 섭취했다가 밤에 잠을 제대로 못자면 내일인 월요일 회사 업무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이 앞서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초밥, 김밥, 빵까지 주셨다. 원래는 친구랑 퇴근하면 근처에서 밥 먹고 헤어질

생각이었다만 배불러서 그냥 쿨하게 헤어졌다.

팬심이라는 게 나한테는 생소한 개념인데 직접 보니 사랑의 영역이란 합리를 초월하는 게 분명하더군. 내가

남자라서 애시당초 산문집을 읽거나 볼일이 없을테니 구매하지도 않겠지만 혹여라도 사게 된다면 아마 1권

정도 사지 않을까 싶었는데 같은 책을 무려 50권까지도 구매하신 분들이 상당수라서 깜짝 놀랐다.

몇몇 분들은 책에 하자가 발견되어 옆에 쌓아 두었는데 그 불량 재고까지 자신이 구매해서 처리해줘도 되냐

괜찮겠냐고 제의할 정도였다. 무시무시한 구매력이었다. 엄청 고된 일을 예상했기 때문에 친구랑 밥 든든히

먹고 갔는데 점심 안 먹었어도 됐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일개 일용직인 우리까지 너무 살뜰하게 챙겨주셔서

감개무량했다.

모두가 애정을 가지고 축복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먼걸음을 해주셨음을 알고 있어서 나도 역시 최대한 해맑게

응대했는대 응대 업무를 해본 경험이 없어서 방문객들이 어떻게 느끼셨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특별히 소란이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겠지. 리더님이 막대한 도움을 주셨고 이솔로몬 님의 팬분들도 높은 시민 의식을

가지고 계신 덕에 난생 처음 엔터 업계에서 훈훈함을 느끼며 퇴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리더님이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느꼈는데, 처음에는 팬카페 회장님 정도 되는 분이신 건가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배부한 산문집를 출판한 회사의 직원분이신 듯하더라.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집필한 가수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음이 느껴질 정도였다. 호의로 충만한 수많은 팬들 및 관계자에게

둘러싸인 이솔로몬이라는 가수는 참 축복받은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