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자꾸 뭘 안 챙긴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니 지난 번에 분실했던 보안경 때문인 것 같다. 빌어먹을
2만원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엄청나게 뼈아프군. 오늘도 역시나 출근 의욕 없었는데 보안경 잃어버린
것을 떠올리니 비게 되는 잔고만큼 일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이 일으켜질 정도였다. 꿈에서 분실한
보안경을 되찾기까지 했으니 미련이 말도 아니다.
탈의실에서 보안경을 되찾았다. 개꿈이 아니라 개꿀이구만. 이후 오전 작업 조회에서 1동 345라인에서
10층 통로의 물기를 깔짝 제거해달라는 지시를 받아 마침 좀 눈길이 가던 일 잘하는 준기공급 반장님과
터덜터덜 걸어가서 후딱 처리하고 1시간 정도 돈 얘기하면서 쉬었다. 이후부터는 지하층으로 내려가서
다른 2인조와 합류했다. 물이 꽤 많더라.
설렁설렁하니 어느 정도 끝나가긴 했는데 도중에 갑자기 한 명이 지게차 신호수로 끌려가서 덩달아 다같이
지게차 운전수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인데도 우리나라 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중국어를
말하는 것처럼 쏘아붙이는 아저씨였는데 태도 및 말투가 시비조였다. 다른 반장님들도 부글부글 속이 끓던
와중에 운전수가 "이거 치워."라고 말하면서 내 키만한 목재를 돌아보지도 않고 나를 향해 투창하듯 던졌고
다행히 목재는 내 발치 앞에 떨어졌지만, 이를 본 다른 반장님들이 결국 폭발해서 싸움이 났다.
지게차 기사 양반은 "내 원래 말투가 이런 걸 어떡하라고."라며 일관했고 결국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는데
어차피 별로 주변에 관심끄고 있던 나로선 별 감흥 없었지만 돌이켜보니 나를 위해 화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이후 지게차 신호수로 불려간 1인 외 다른 2명의 반장님도 기사님 요청으로 다른 장소에 파견갔고 혼자서만
남아서 꿀 빨다가 이후 신호수에서 복귀한 인력과 함께 설렁설렁 물 지우다가 밥 먹으러 갔다.
오후에도 계속 지하의 물을 제거하는데 진척도 없고 팀 전체에 활기도 없다. 나도 이번에는 어중간한 위치라
그냥 닥치고 꿀이나 빨았다. 14시부터 15시까지 거진 1시간동안 앉아만 있었다. 그래도 기사가 점검차 와선
잘해줬다며 따봉 주고 가더라. 후로도 쭉 쉬엄쉬엄했다. 내일도 이렇게만 한다면 출근하지.
돌이켜보니 역시 일을 많이 안 하긴 했다. 그렇지만 보안경도 찾았고 몸도 편했어서 내일 일한대도 무리조차
없고 의외로 대학교 과제들이 순풍 맞는 돛단배처럼 진행되니 기분 좋아서 옆집 동생이랑 밥이나 한 끼 했다.
이게 인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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