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Diary/▶ 아무 얘기

창녀, 창놈의 시대

by 레블리첸 2022. 2. 1.

 

 

 

<세줄 요약>

1. 요즘 예능인을 꿈꾸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2. 근데 그 수가 너무나도 많고 기술이 하대를 받고 있다.

3. 기술직은 줄고 예능인만 늘어나니 이대로는 나라 망한다.

“ 경찰, 대통령, 의사는 싫어요. ”

요즘 아이들의 꿈을 물어보면 죄다 유투버, 연예인이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방송인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고 개중엔 방송을 타는 음악가인 예를 들면 래퍼나 댄서를 희망하는 아이가 상당수다. 의외로 아이돌이

되기를 꿈꾸는 수는 줄었는데 왜냐하면 수많은 매체를 통해 아이돌로서 무대에 서는 일이 매우 고된 일이란

사실이 알려졌고, 오랜 기숙사 생활과 연습의 나날을 버티기가 힘들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아이돌은 미모가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쉽지 않다고.

유투버는 어쩐지 남들이 봐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기 방송, 자기 콘텐츠만 주구장창 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빛을 볼 것 같고 래퍼나 댄서들도 당장은 알려지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하면 언젠가는 뜰 거라고

믿으며 그 진입 장벽이 만화가나 소설가만큼 낮고 어쩐지 크게 힘든 요소도 없는듯 보이기 때문에 희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결정적으로 편하게 돈 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경찰이 되겠다는 아이나 의사가 되겠다는 장래희망은 줄었다. 아이들은 본래 처음에는 거창한 꿈을 가진 채

살다 자라며 현실과 현재에 타협하며 점차 당장 분수에 맞는 진로를 탐색하기 마련인데 이러한 현실의 벽을

마주하여 방송인과 예능인으로 진로가 바뀌는 시기가 지나치게 빨리 온다. 근데 문제는 이 꿈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거다. 그것도 오랫동안 깨지 못하는데 이후에 환상통까지 남기는 매우 지독한 꿈이다.

“ 정 안 되면 기술이나 배우지, 뭐. ”

꿈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개인적으로 나도 공부하다가 쉴 때나 식사를 할 때에 심심풀이로 볼만한 콘텐츠가

늘어나면 좋고 길을 걸으면서 아무 생각없이 들을 노래가 늘어나면 좋다. 그렇지만 부풀려진 꿈이 청년들을

지나치게 잠식하고 안에서부터 썩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참고로 청년이란 뭣도 모르는 10세부터

만 나이로 36세까지를 가리킨다. 방송에 곧잘 나오는 어린 재벌이자 예능인들을 보면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기 시작한다. 부러움과 동시에 자괴감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필자와 동갑인 방탄소년단의 멤버,

슈가는 전세기를 타고 전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며 콘서트를 열고 비싼 집, 차를 소유했는데 본인을 옆에다가

세워두면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난 그 연예인이 부럽고 난 그동안 무엇을 했나 초라하게

느껴질텐데 그러다 보면 스스로가 해온 일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망연자실하게 된다.

너무 극적인 예를 든 것 같다면 구독자수 몇만 명이 되는 유투버를 두고 봤을 때 그는 매일을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며 그것으로 일반 회사원의 연봉을 웃도는 돈을 벌어들이니 이것을 보면 '나도 하던 일 다 관두고 한

번 방송이나 시작해볼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쉬워보이는데다 즐겁게

비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꿈꾸는 예능이 남들에게 진정으로 인정받아 예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남들은 전혀 모를

자신만의 역경과 부모조차 모르게 흘렸을 피, 땀, 눈물이 필요하다. 꿈꾸는 청년에게 대놓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건 이 말이 각오를 다졌냐는 질의가 아닌 날개를 꺾으라는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탓이다.

정신 차리게 바늘로 한번 찔러주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스스로도 자존감 깎아가며 거의 바닥난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을 게 뻔한 녀석에게 이 가벼운 일침이 마지막 일격이 될까봐 걱정이 되서다.

그러나 월면의 뒷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달을 향해 무작정 달려나가는 청년이 그리던 성공가도의

좌절에 놓이는 선택지가 '기술직'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나도 어이가 없다. 이 말의 연장으로 기술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 앞에 대놓고 방송이나 창작 활동을 하면 더욱 쉽게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요즘

청년들이 너무나도 한심하다. 아직 스스로가 성취하지도 못한 꿈에 완전히 취해버려서 내뱉은 망발이라는

사실은 이해한다.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지만 마치 오징어 1마리가 죽어버리면 집단 폐사로

이어지듯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내부에서 썩어들어가게 만든다.

“ 무엇을 팔 것인가. ”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것은 기술이다. 음악과 웃음, 춤은 세상을 굴러가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다

풍요롭게 만든다. 온 몸짓과 목소리에 가치를 매기기에 세상의 자원이 너무나도 한정적이고 언제나 팔리는

것은 기술이다. 춤과 노래, 웃음은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가

돈을 찍어내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팔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한번 판 것은 돌이킬 수 없으며

환불할 수 없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으니 예를 들자면, 공대를 졸업하여 관련 전공 지식을 획득한 학생은 경력을

쌓고 자신의 기술을 사줄 회사를 찾아서 입사한 뒤 자신의 기술을 팔기 시작한다. 모든 노동은 즉 기술인 셈.

식당 서빙도 경력이며 기술이고 매대에서 계산하는 것도 경력이고 기술이다. 하지만 모두가 할 수 있는데다

어렵지 않기 때문에 구매자인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을 부리는 일임에도 상대적으로 헐값에 이 기술을 살 수

있었다.

춤과 노래는 예능이고 마찬가지로 모두가 할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예능도 오랜 시간 연마하면 예술로서

승화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부터 사람들은 가치를 매기고 구매하게 된다. 하지만 춤과 노래는 독보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가 없다. 창법, 곡조, 춤선 모두가 인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세상에는 인간이

단어 그대로 수십 억이 있다. 독보적인 것 같은 인간이 억 이상 있다.

“ 누가 살 것인가 ”

나쁜 소식을 하나 더 더하자면 세상 굴러가는 데에 예능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예능인은 파이 싸움을

지속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과거 1명이 예능으로 벌어들일 수 있던 10억이 있었다면 벌 수 있는 돈은

그대론데 예능인만 1명에서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확천금과 불로소득이라는 꿈에 두 눈

멀어 예능의 꿈을 꾸고 있는 아이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재미있는 건 노래나 춤 모두 얼굴이 알려지고 나서야 대중의 재평가를 받고 그 뒤에서야 성공가도를 밟을 수

있다는 거다. 그말인즉슨 인지도에 걸린 싸움이라는 건데 일부에서는 이런 것을 두고 '얼굴을 판다'고 말한다.

얼굴은 속어로 쪽이라고 한다. 그러니 속된 말로 쪽 팔리는 일이라는 거다. 꿈에 취한 어릿광대들이 하대하는

직업들을 살펴보자. 우리들이 자는 동안에도 택배를 운반하는 기사님들과 도시락을 만드는 공장 노동자분들,

건물을 올리는 공사장 인부들. 다들 대중에 얼굴이 알려질 일 없이 묵묵히 기술을 파는 직업들이다.

“ 거지들로 가득한 나라 ”

무엇을 팔 것인가. 노래를 하거나 집에서 춤을 춘다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진 않는다. 언젠가는 대중이 알아

줄 수 있겠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고 당장 월세와 같은 지출은 발생한다. 하지만 죽어도 허드렛일만은 안 하고

싶거나 하기가 겁나는 청춘들이 많은 모양인데 덕분에 우리나라에 기술자들은 점점 줄고 있고 묵묵히 기술을

팔고 있던 사람들의 단가는 높아져만 간다.

아무리 AI의 발전으로 매대에서 계산을 하는 카운터나 음식을 자리에 가져다 주는 서버와 같은 최하위의 단순

노동 직업군은 사라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관리자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게 우리 세상의 법칙이다.

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청년들은 이제 자신의 꿈을 팔 기회가 없게 됐다는 현실에 몸서리치며 잠에서 깨었다.

이제 쪽은 팔 수 없고 기술마저도 쉽게 팔 수 없게 됐으니 몸이라도 파는가 보다.

기술로 먹고 살 생각 없이 오로지 가지고 있는 몸뚱아리로 먹고 살 계획인 청춘으로 가득한 나라꼴을 보아하니

바야흐로 창녀, 창놈의 시대가 도래한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