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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근무 일지

20220430 일용직 현장 노가다 근무 일지 (그라인더)

by 레블리첸 2022. 5. 5.

 

 

 

 

 

오랜만의 현장이군. 요즘 너무 앉아만 있었던 것 같네.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하여 출발. 버스가 딱 봐도 현장

근무하시는 분들로 만석이다. 이래 보여도 산업 인력의 선봉을 이끄시는 분들이지. 다같이 현장 가면 좋겠네.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에 있을 때가 그 어느 때보다도 떡툰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식당에 가니 이모님이 주방에서 일하시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다. 왜 꼭 저승사자 같이 하고 다니냐더라.

조금 많이 빨리 도착해서 정식으로 가게 열기도 전이라 점포 내가 어두컴컴한 것도 한몫했을 듯.

 

 

 

 

 

어떤 현장인지 모르겠다만 어차피 다음 출근하는 날은 다음주가 될까 말까라서 마음이 가볍다. 속단은 금물이나

왠지 현장도 마음에 드는군. 적당히 넓지도 않고. 다만 조금 서늘하다. 바깥보다야 따뜻하지만 지하라 스며드는

한기는 막을 수 없나.

 

 

 

 

 

오늘의 할 일은 쓰레기 반출. 쉽게 말하면 쓰레기 내리는 일이다. 머리 비우고 하라는대로만 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라서 마음이 더 편해졌다. 다만 같은 팀원이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나이가 많은 분도 있고 일 하기

싫어보이는 분도 계시는데 작업 반장 눈에는 그나마 내가 말이 통해 보이는지 자꾸만 나를 소환한다.

안 다치려고 했는데 다쳤다. 손을 살짝 긁혔구만. 조선족 혐오 조장하자는 의도는 아닌데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작업이 힘들다. 한국말을 우수하게 구사했다면 한국인인 내가 알아먹었겠지. 뭔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되물어보니 오히려 역정을 내면 어떡하냐.

 

 

 

 

 

 

현장이 협소한데 호이스트는 2개뿐이고 그나마도 느려터져서 상당히 작업이 더뎌졌다. 여기에 환상의 팀원

조합이 더해지니. 그런데 갑자기 작업 반장이 나만 불러서는 왜 이렇게 일이 느리냐, 일 하기가 싫으냐, 다른

현장에서 이러면 쫓겨난다는 등 꾸지람이다. 나름 열심히 하고자 했는데 불려가 욕을 먹으니 억울했다. 보아

하니 다른 작업자들은 어차피 뭐라고 해도 들을 것 같지도 않고 내가 현장 지휘를 하고 있는 듯 보이니 나를

불러서 이야기한 모양이다.

 

 

 

그러고는 그라인더를 쥐여주더군. 시범 한번 보여주시더니 가버렸다. 한 번도 안 써봤다고 말했지만 속수무책.

어떻게든 써보면 알 것이라는 투로 말씀하시고는 사라지셨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고민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일단 장비 숨겨두고 갈갈이 찢겨 결국 단둘이 쓰레기 내리고 있는 팀에 협조했다.

 

 

 

 

짜장밥 맛있더라.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핀 제거 작업을 실시했다. 다시 작업 반장 찾아가 한번도 안 해봤어서

장비 쓸 줄 모른다 하니 보안경에 전등까지 장구류는 완전히 갖춰놓고 이걸 왜 모르냐며 타박이다. 일을 잘하여

갖춘 게 아니라 안전을 위해 준비한 것이거늘.

그래도 일을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힘을 덜들이며 핀을 제거할 수 있게 되긴 했다. 다만 그라인더날이 떨어져서

갈아줘야 하는데 교체 방법을 몰라서 물어보려니 어느덧 15시더군.

 

 

 

 

 

 

 

먼저 고정되어 있는 핀을 제거하기 위해 시누로 망치처럼 두들겨서 간극을 만들고 긴 쇠막대기를 틈에 넣고

간격을 더욱 벌려 핀을 뺀다. 이후에 경칩 같은 녀석을 다시 쳐서 반듯하게 만든 뒤 그라인더로 잘라내는 일.

핀 제거하려다 몇번이고 손을 벽에 부딪히니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흐른다. 물집도 잡혔고.

안 쓰던 근육을 쓰니 심히 근육 피로가 누적된 모양. 조금 쉴까 싶던 도중 전화 오더니 내려오라고 하더구만.

내려가니 다른 근로자들은 내일이 근로자의 날이라 조기 퇴근하는 모양이다. 근데 우리 인력들은 그동안에

많이 밉보였는지 가지 말고 현장 청소하라더군. 까라면 까야지.

 

 

 

 

 

 

일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집에 와서 쉬는데 전신 근육통에 시달렸다. 먹은 게 체했는지

새벽에는 전부 토해내고 일요일동안 고열로 고역을 맛봤다. 하기사 안 쉬고 계속 망치질을 해댔으니까.

그러고 보니 물도 안 마셨네. 덕분에 일요일은 내내 침대에 뻗어 신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