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매일 써도 좋겠지만 역시 조금은 일상과 텀을 두고 올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분간
원기옥처럼 기를 모을 생각이다. 그렇게 하기로 했더니 블로그에 쓸 글이 없어졌다. 그랬다간 광고용
포스팅에 블로그가 잠식되어서 어쨌든 악영향이 가고 말텐데. 그런 걱정이 들면서 뭔가 매일 쓸 것이
없을까 궁리를 하게 됐다.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려도 좋겠지만 그림은 상당한 양의 시간과 정신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영 쉽지
않고 공부한 과정을 작성하자니 항상 결과만을 전시하듯 운영해왔기 때문에 어쩐지 어색한 기분이다.
그 결과 옛날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렇게 읽으나 마나한 넋두리들을 늘어놓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은
이런 글들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되지만 알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읽을 힘에 부쳐서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더군다나 이런 영양가 없는 글따위.
여기까지 읽을 시간에 차라리 참고서 한 줄이라도 더 읽는 게 유익할 거다. 이런 거 쓸 시간에 자격증
필기 자료에 한 줄이라도 더 보태는 편이 보람찰 거다. 이런 생각이 들며 우울해진다. 쓰고 있는 글이
의미가 없는데 무슨 이유로 매일 쓸 글을 찾고 있는 걸까. 쓸곳이 없는 쓸글을 찾는 내가 예쁜 쓰레기
모으는 광대 같다. 내 글을 읽는 행위는 서점에 널부러져 있는 불쏘시개급의 자기개발서를 정독하는
시간만큼 낭비다. 그나마 칭찬해줄 만한 점은 나무라는 고귀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부분 정도.
모든 행위와 행동에는 의미가 있다는 말이 있고 당장 부질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먼훗날에는 교훈이
된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당장 부질 없는 짓을 한 후에 곧장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이후 또 무의미한
반복하는 행위는 변명할 수단조차 없는 헛짓거리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의미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쓸모 없는 글을 쓰고 있고 또한 쓸 궁리를 하고 있는 나는 구제할 길이 없는 우자인
셈이다.
쓸만한 글이 없다는 한줄 요약될 만한 이야기로 잘도 이만큼 헛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가 있는
것도 재능이다. 어쩌면 전생에 천일야화의 주인공 셰에라자드의 머나먼 친척이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로 목숨을 구했고 나는 내 이야기로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그녀가 본다면 아마
크게 한탄하며 내가 내게, 그리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꺼낼 거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궁리를 해보라고.
글 작성을 시작함과 동시에 초재기라도 시작했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남이야 이 글을 다 읽어내리는
데에 길어야 5분 남짓 쓰겠지만 분에 넘치게 창작자라고도 불릴 만한 나는 저자로서 꽤 많은 시간을
여기 쏟아부었다. 어느 정도냐면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고 듣던 제법 긴 음악 영상이 다 끝났을 정도.
지금쯤 시계를 한번 보고 경악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겐 좋은 동기부여가 됐을텐데. 아니 이딴데에
소중한 1시간을 투자했다니! 스스로를 나무라며 채찍질하듯 공부할 수 있을텐데.
우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바로잡을 생각 없이 견지하고 있으니 이것도 참 대단한 고집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까. 오늘 하루는 이렇게 쓸 글이 없다는 내용을 쓸 글로 삼았다만 내일은 또 어떤
글을 써야 할까. 당신은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내게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은 글 처음부터 여기까지
천천히 읽어내려온 당신밖에 없다. 대번에 헛소리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마우스 휠을 내려서 끝까지
내려버린 사람은 현명하지만 내 고뇌를 이해해주지 못한다. 헛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천천히 글을
읽어내려준 사람은 어리석어도 분명한 나의 이해자다. 그런 당신이야말로 자격이 있지.
과연 이해자가 나타나줄까. 당신이 나타나준다면 불쏘시개도 되지 못한 이 글도 의미를 부여받겠지.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이 글은 임무와 목적성을 띄게 되어서 이해자가 나타나기도 전에 이미 의미가
생겼구나. 비록 처음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쓰레기였지만 마무리에서 아무 기별없이 우화했다.
우행도 우화하여 의미를 부여받았는데 생각해보면 의미를 앞서서 부여한 것은 나 자신이다. 아무런
가치없는 나조차 창조해낸 쓰레기에 나름대로의 주관적인 가치를 메길 수가 있구나. 그리고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이건 객관적으로 가치가 있게 된다. 이런 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당신이 하는 일이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는 일이다.
이 글에는 3줄 요약따위 없다. 가끔씩은 장황한 글을 읽으면서 시간을 죽여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이 글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나중에 화장실에서라도 느긋하게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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