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너무 달콤한 말이다. 그냥 침대에 몸을 뉘여서 사고를 멈추고 스마트폰 화면이나 바라보다가 잠들기.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일상이다. 아직 페달을 열심히 밟아 발전해도 모자랄 판국이지만 바쁜 일 다
제쳐놓고 벌어야할 돈 잠시 망각한 채 일단 눈부터 붙이고 있다. 안락한데 왜 마음은 안 편할까.
나이가 들었기에 무기력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구슬퍼진다. 학창 시절에는 전신에 활력이 돌아서
심지어 오른쪽 발가락이 전부 부러지고 발바닥에 대쪽같은 금이 간 상황에서도 불꽃같이 게임하며 무언가
글을 썼었지. 그때와 지금은 대조해보면 겨우 회사를 마쳤다고 기진맥진해서 침대에 뻗어버리는 스스로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때문에 나이 때문이 아니라 그저 회사 일이 바빠 현생에 치여 살기 때문이라며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긴 연휴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여겨지던 어느 휴일. 스스로 남아도는 시간에 무얼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이 드는 찰나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대체
무엇을 고민하는가. 자격증을 위해 중국어도 공부해야 하고 어플 개발 공부도 해야 하고 블로그에 글 쓰고
영상 편집하고 하다 못해 노가다를 뛰어서 돈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데 지금 누워서 배나 긁을 여유가 있나?
그렇게 한참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나는 결국 어리석게 그만 잠에 들었다. 어쩌면 그리 되길
바랐겠지. 애시당초 움직일 마음이 들었다면 몸부터 일으켰을테니. 지독히 후회할 일만 거듭한다.
학생일 때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한 게 후회되지 않느냐고 혹자가 묻는다. 안 하지. 그 당시엔 친구들과 놀고
오늘날 봐서는 무의미할지라도 무언가 창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었고 이에 따랐을 뿐이다.
그렇지만 지금 후회가 드는 이유는 자기개발이 최우선 사항이라고 여기고 있음에도 전혀 육신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할 일에 소중한 시간이나 낭비하고 있는 자신을 결국 어렸을 때
어른들이 날 보는 듯한 시선으로 되돌아보게 되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최근 정말 간만에 꽤나 좋은 음악을 접해서 영상 편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열정의 불씨를 키우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으나 마침내 한줌 재뿐만이 남았다. 그마저도 손바닥 위에 잠시 뜨거웠다는
미적지근한 온기만 남기고 전부 기우에 흩날려 사라져버렸다. 잠시 남았던 검댕이조차 어느새 다 지워져서
마치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다는듯이 되어버린 일이 서글프다. 만약 내가 더 젊었다면 아집과 패기로라도
이 불씨를 죽이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여유를 즐기면서 놓아줌의 미학을 아는 멋진 중년의 가면
뒤에 그저 게을러빠진 돼지를 숨기고 있을 뿐인 게 아닌가.
채찍질과 같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한데 맞기는 싫은 그런 이기적인 생각뿐. 어떻게 추진력을 얻을 수가
있을까 고민하던 도중, 문득 찾아온 불화와 갈등을 도리어 반갑게 여기어 분노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면서
마지못해 자기개발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더 나아지기 위해 꾸준히 못난 모습 비추어 적을 만들고 이런
나를 향한 모멸에 대한 분노를 소재로 발전하는 자신의 안에서 느껴지는 모순을 감내하기 어렵다.
'시간이 많아지면 꼭 해봐야지' 그리 다짐했던 약속은 시간 아래 뽀앟게 덮여 완전히 잊혀져버리고 말았구나.
처음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 언제 어디서라도 글을 쓸 수 있겠다며 천진난만하게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생겨버린다. 과거의 너가 그리던 미래의 나는 이런 나태한 모습이 아닐텐데.
그런 죄악감과 죄책감에 무언가 하기 위해서 몸을 일으키려다가도 결국 난 또 쉽사리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내게 만약 달려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면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가족을 위해 노가다를
뛰는 가장들을 보면 어쩐지 부러워지는 한편, 이젠 분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수단으로 사용할 셈이냐며
스스로를 질책하고 생각을 접는다. 이렇게 생각을 다 마치고 나면 아무 것도 하기 싫어져서 결국 침대 위에
뻗어버리고 만다. 악순환은 악순환이구만. 그저 즐기면 낙순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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