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어려서부터 원대한 꿈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누워있는 채로 작업부터 시작해서 수면까지 모든 일과를
해결하겠다는 소박한 꿈이었다. 그 꿈을 이루는 것은 돈의 힘을 빌리면 그다지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예상했었던
만큼의 고난이 뒤따랐다. 일단 누워있는 자세가 부러졌던 허리에는 좋았으나 위장에는 안 좋더라고. 몇번씩이나
일기에 작성했다시피 식사를 마치자마자 누워버리면 소화 불량 때문에 주말 내내 끙끙 앓아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누워있는 상태로 모니터를 볼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천재적이고 악마적인 발상이 떠올랐다. 바로 머리맡에 압축선반을 설치하고 거기에다가 모니터암이나 태블릿용
거치대를 연결하면 어떨까. 방법이 떠올랐으니 곧장 실천에 옮겨봐야겠지. 어떠한 제품이 좋을까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끝에 '헤이안신도'라는 브랜드의 압축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일본 아저씨가 자기 얼굴을 내세워서 팔고 있다는 점에서 부쩍 신뢰감이 상승했다. 압축선반 검색하면 죄다
제품명만 바꾼 중국산 물건만을 찾을 수 있는데 중국 물건이랑 일본 물건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일제를
선택하는 편이 올바른 소비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중국놈들은 땅덩어리가 넓어서인지 배짱도 상당해서 A/S따윈
신경도 안 쓰고 아무리 소비자 센터에 전화 걸어도 먹통인데, 심지어 받으면 조선족이 어눌한 한국어로 응대하는
경우가 많아 그냥 포기하고 당근마켓에 저가로 올리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에 반해 일본놈들은 섬에 갇혀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꼬투리가 잡히면 뒤질 때까지 시달릴 것을 DNA의 수준에서 알아서 딴말이 안 나오게 A/S만큼은
확실하게 해주고, 같잖은 장인 정신으로 자존심이 높아서 절대 하자 있는 물건을 출시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이게 내가 헤이안신도 압축선반 구매를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역시 뒤로는 넓은 대륙의 기상을 지고 앞으로는 드넓고 푸른 남해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은 한마리 매와 같은
통찰력을 지녔다고. 무엇보다도 헤이안신도 압축선반 제품은 유일하게 최대 허용하중에 대한 정보가 명시되어서
더욱 믿음이 갔다. 다른 제품에는 최대 허용하중이 몇이나 되냐고 직접 문의하면 따로 생산 공장에 알아보겠다고
대답한 뒤 함흥차사가 되거나 경우에 따라 다르다며 어물쩡 넘어가기 일쑤였는데 말이다.
일본 제품에는 그러한 감동이 있다.
포장부터 깔끔하다. 그냥 구질구질한 비닐이나 박스에 넣은 상태로 보냈어도 충분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전용 포장으로 도착한 것을 보고 뜯으면서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가방처럼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니 획기적이고 역시 변태스러운 일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꾸로 뜯어서 쓰레기봉투 대신 섰으면 좋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IQ가 낮아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올려져 있는 물건은 1.2kg의 미니 PC인 맥미니, A8W 공기청정기, 태주산업 클릭탭, 선풍기, 아이패드 프로와
니케 아이패드 프로 자석 거치대, 태블릿 거치대다. 전부 합쳐도 10kg을 넘기지 않기 때문에 거뜬하다. 저 아래
베게가 있는 것을 보고 유추할 수 있듯 머리를 뉘이는데 아무리 단단한 두개골을 갖고 있다 해도 앞서 나열한 위
제품군이 한꺼번에 머리 위로 쏟아지면 곧장 이승 하직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 감고 잘 잔다.
왜냐하면 끄덕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년 10월에 구매한 이후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는데다.
출근할 때에는 침낭과 깔개를 정리해서 압축선반 위에 올려두기도 한다. 일본인 사장이 얼굴까고 팔고 있어선지
매우 든든하다. 혹여 떨어져서 얼굴 뭉게진다한들 이미 빻은 얼굴이라 한번 빻으나 두번 빻으나 똑같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광경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
단두대에 오르기 전 루이 16세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매우 평온하고 불편했다. 일어나고 누울 때마다 허리를
접어서 머리를 먼저 아래로 뺀 다음 천천히 빠져나와야 한다는 게 재법 귀찮더군. 심지어 가끔 아무 생각없이
누웠다가 뒤통수에 태블릿을 박는 일도 자주 있다. 다행히 이정도 충격으로도 압축선반은 고꾸라지지 않았고.
어언 구매하고 사용한지 반년 가까이 지나고 지금에서야 깨달은 사실인데 그냥 다시 슬라이딩 테이블을 사서
거기에 거치대를 거치한 후 쓸 때만 끌어오는 게 훨씬 낫겠더라고.
하지만 헤이안신도 압축선반 구매를 후회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간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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