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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아무 얘기

122회차 헌혈과 누적 봉사 시간 631시간

by 레블리첸 2023. 3. 19.

 

 

 

 

 

 

등은 많이 나아졌지만 앉거나 누워있을 땐 여전히 집중하기가 힘든 상태였다. 가렵고. 각질은 계속 떨어지면서 흩뿌려지고.

가만히 집에 쳐박혀서 공부나 하면 좋았겠지만 당장 내일부터 다른 팀에 업무 지원을 가야 하는 등등 제정신으로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지 도저히 뭔가 작업이 손에 안 잡히더군. 심지어 오전에는 라스트오리진의 팬픽을 위해서 한땀 한땀

이미지를 가공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평소라면 "앗 벌써 이런 시각이"하며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점심 먹는 흐름이었으련만

시간 드럽게 안 가서 차라리 회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할 일도 없는데 헌혈이나 해야겠다 싶어서 헌혈하러 갔다. 다만 몸상태도 안 좋고 기분도 저기압이었어서 간호사분들에게

싹싹하게 굴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리네. 딱히 만인에게 예쁜 미소를 띄고 상대해야 한다는 법이 제정되어 있는 건 아니니

스스로를 옥죄는 흐름일 뿐인 것은 알고 있다만.

 

 

 

 

 

 

 

 

 

122회. 만약 지금이 22회차 헌혈이었다면 매우 설렜겠지. 3번만 더하면 은장을 수여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125회째 해도

딱히 보상도 없고 150회차의 헌혈에서도 특별히 주어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거 같다. 보상이 없으면

흥이 식어버리는 자신을 알고 있는데 헌혈 관련되어 내 이야기를 하면 착하다며 칭찬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을 때는 그저 웃어넘기고 만다. 또는 어이없거나 살며시 화가 나면 웃는다. 좋은 일로 웃을만한

일은 좀처럼 없는데 또 웃어주면 사람들은 겸손하다면서 칭찬에 칭찬을 거듭한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선한 인상이 유리하게도

작용한다. 덕분에 인생 참 순탄하게 살아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란은 이제 종식되었지만 여전히 헌혈 센터에서는 간식이 보급되고 있지 않고 있다. 헌혈 끝나니까 딱 종이

상자 과자 하나랑 오렌지 음료 하나 건네받은 것을 보니 또 실소가 터졌다. 차라리 귀한 초콜릿 간식이라도 주지. 마치 군대의

종교 행사 참여했을 때처럼 감동하며 먹었을텐데.

옛날에 간식이 사실상 무한 제공이 됐을 때 헌혈 끝나면 그 자리에서 한끼 식사를 간식으로 해치우는 게 참 좋았다. 자리에서

과자를 집어먹고 있으면 간호사 님이 살며시 음료수 한개 주고 가시는 것이 고마웠다. 한끼 식사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동시에

지구상 어딘가에 있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자긍심과 선행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나오는 뿌듯함. 내가 헌혈하는 동안에

한량처럼 게임 같은 데에 시간 허비하고 있을 불특정다수를 연상하며 얻는 선민의식. 그런 게 달콤했었는데 메리트가 많이도

사라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봉사 활동 시간이 어느새 500시간은 넘겼네. 군인이었을 때는 봉사 시간 1,000시간을 찍어보는 게 꿈이기도 했지. 그런

말을 듣고 누군가는 그딴 거 해서 뭐가 남냐고 물었었는데 이제는 봉사활동하고 다닐 시간에 차라리 일용직 알바 한탕을

뛰어서 통장을 더 부풀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동의한다. 그런 질문을 던진 당사자는 나랑 같은 1,000시간을

과연 어떻게 사용했을런지 궁금하긴 한데. 샤워하면서 곰곰히 생각해봐도 이름도 얼굴도 안 떠오르니 접어두자.

아마 등이 정상이었거나 피부과에 안 갔었다면 후딱 작업 장비 사서 일용직 일하러 나갔을지도. 지금 적잖이 글이 날 선

것을 보니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긴 한 모양이다. 앞에 아무도 없는데 계속 찌르는 시늉만 하고 있군. 몸상태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한데 등이 자꾸 따갑고 가려워서 도저히 할 수가 없군. 어쩔 수 없이 잠이라는 약에나마

취해야겠으나 잠을 삼키면 그밖에 아무런 작업도 할 수 없으니 참 진퇴양난이다.

어쩌겠어. 이런 날도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