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0일인데 밀린 일기를 쓴다. 주말동안 뭐했는지 기억도 없군. 특별한 일은 하지 않았는데 아마
등짝 때문에 괴로워 제정신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월요일인 지금은 진짜 다 나았다 말할 수 있을
수준이다. 이제 그간 공부 못한 게 양심을 때리니 말이다. 주말에 일기 못쓴 건 그런 거고 17일에 일기
못쓴 건 더럽게 바빴기 때문이다. 진짜 더럽게 바빴다.
아침 8시에 회사 도착하자마자 바로 업무 시작하고 오전에는 한번도 안 일어나고 업무 속행하고 점심
20분만에 해치우고 올라와서 일해서 겨우 제 시간 안에는 테스트를 마칠 수 있었다. 하루동안 등록한
이슈만 51건. 진행한 테스트 케이스는 2000건. 혼자 했다고 하면 못믿거나 대충 처리했다고 의심사도
충분한 수준이다. 열이 받는 건 테스트레일에 이걸 일일히 등록하고 반영까지 해줘야 한다는 거. 결국
이 작업 때문에 1시간 잔근해야만 했다.
부글부글 속이 끓더군. 원래라면 다음주 월요일까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정확히 16시간은 훨씬
여유가 있는 일인데 그걸 8시간만에 해치우라고 하니 풀악셀을 밟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이러는
와중에 리더는 무슨 자신감인지 긍정감이 하늘을 찌른다. 가능성의 한계를 시험하고 싶은 건지 어려운
일일 거라고 대답해도 의심은 전혀 하지 않고 나라면 할 수 있을 거라며 진행하고 본다. 더럽게 바쁜데
내가 작성한 테스트 케이스에 문제가 있어 전부 뜯어고쳐야 한다던가 너무 지나치게 내용이 상세하며
불필요한 것까지 확인한다며 문서 수정을 하고 있으니 눈물이 나더군.
당장 달리지 않았다면 1시간 잔근은 커녕 2-3시간은 초과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왜 이리 태평한가 싶다.
1시간 잔근은 애교이고 2시간을 넘기면 그때부턴 살인 예고가 된다고. 일정 안에 못맞추면 업무 지원을
없었던 이야기로 하면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땐 눈앞이 깜깜해졌다. 회사 상사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한 게
어제 퇴근하면서인데 딱 하루만에 '안 된다'고 말하면 듣는 상사는 지금 내게 말장난하는 건가 생각하지
않을까.
반응이 다소 격해졌는데 점심 먹으면서 서로 눈치 살피다가 리더가 사과에 제스쳐를 취했고 나도
사과 드렸다. 리더랑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겨우 이런 일로 사이가 틀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눈물이 날 것 같더군. 아무튼 오후부터는 다시 힘을 내서 업무를 진행했다.
그나마 1시간 조기 출근하고 점심 시간 반납해서 겨우 1시간 잔근하는 것으로 끝냈군. 우리 리더도
나름 심란했던 듯하다. 그야 같은 사람인데 나만 1시간 잔근이 열받겠어. 참고로 잔근은 연장 근무
수당도 없고 식대 지원도 없는 주제에 초과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인사 고과에는 악영향만 있으니.
아무튼 집에 가는 길에 과자 사서 밤늦게까지 '더 글로리' 보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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