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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ry/▶ 아무 얘기

변명의 신

by 레블리첸 2023. 4. 2.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욕심이 한가득하다.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은데 몸을 움직일 기력과 열정은 부족하고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변명거리만 잔뜩 늘어난다. 놀랍게도 그 변명 하나 하나가 전부 그럴듯해서 듣는 사람 전부 내게 몸을 쉬게

하라고 달콤한 상투어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기본적으로는 회사원이라는 점. 학생이랑은 궤가 다르다.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 개판 치고 자기 취미에 몰두하면 결과적으로 망치는 건 약 10년 후의 자신이니 인생 조지고 싶으면

공부 안 해도 되는데 회사원이 회사에서 일 개판 치고 자기 취미에 몰두하면 업무랑 인사고과를 조지게 되기 때문에 직장

잃고 당장 굶어 죽게 된다. 그러니 회사원으로서 학생 때와 달리 업무 시간에 내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일이 끝나면 당연히

기진맥진해서 집에 도착하여 식사하고 청소하고 기기 등을 정비하고 샤워하면 금새 21시. 그 후로 약 4시간 정도의 여가

시간이 주어진다. 이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당연히도 놀고 싶지. 그럼에도 이 4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하고

싶은 게 사람으로서의 욕심이고 이 4시간동안 무익하게 놀고만 싶은 것이 인간으로서의 욕망이다.

혹자는 말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니까 놀라고. 근데 안주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세상은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데

제자리에 멈춰 있으면 결국 뒤쳐지게 된다. 열심히 발을 놀리지 않으면 가라앉게 되는 건 당연하지. 더군다나 나는 맥주병

이라 몸을 띄우는 방법도 모른다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라며. 흐름을 따라다니다가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낙원에 정박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니 부럽네. 나는 섬으로 열심히 노를 저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걸랑. 그럼 그렇게 생각하면 노가 되었든 발이 되었든 열심히 물살 가로저으면 될 것을 왜 뭘 이리

궁상맞게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느냐. 그건 머리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육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바쁘다. 절찬 바쁜 와중이다. 수확은 있었다. 85쪽 분량의 CSTS 필기 자료는 완성했다. 그리고 회사도 열심히 다니고 있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 CSTS 필기 자료의 개요 스타일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그 틀을 이용해서 중국어 문법

필기 자료도 재정리해야 한다. 블로그에 글도 써야 한다. 6월에 있는 시험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그날이 오기 전에

후다닥 HSK 3급 시험이나 한번 응시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림도 그려야만 한다. 이제 AI가 모든 것을 처리해주지만 손으로 직접 그려낸 그림만이 부여하는 무언가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구구절절 계획만 떠벌려 놓으면 뭐하냐. 결과적으로는 아무 것도 해내고 있는 게 없는 것을. 이러한 자괴감이

스멀스멀 머리를 들기 시작할 때 즈음에 하늘에서 몇가지 변명거리가 내려온다. 포상인지 목을 메라면서 내린 동아줄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알고 있겠지만 피부과에서 등짝을 갈아엎는 시술을 받았었다. 등 전체에 선인장 가시를 찔러 넣은 것 같은 고통 속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지냈는데 좀 나아지나 싶었더니 곧 그 따가움은 마치 모기 수천 마리가 등을 문 것처럼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들 정도의 가려움으로 변모하더라. 그렇게 1주일 내내 고통 받았다. 1주간의 고통이 다 나았나 싶었는데 그동안

제대로 못쉰 게 억울해서 1주간 푹 쉬었다.

그런데 이제 그 다음에는 갑자기 목감기가 엄습해오더군. 감기 정도야 하루 이틀 후면 낫겠지 생각했는데 이게 오늘까지

거진 일주일은 지속되었다. 사람 미치게 만들려고 한 건가. 일기에도 썼었지만 혹여나 외세가 독극물을 살포하기라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이정도로 오랫동안 감기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3주간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군. 이런 나를 두고 누가 감히 일하라던가 공부하라던가 왈가왈부할 수 있겠나. 내가 타인이었더라도 등의

모든 피부가 서서히 벗겨져가면서 괴로워하는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차라리 눈을 붙이고 안식에 들라고 조언했었을

것이며 감기 때문에 온종일 콧물과 기침에 시달리는 내가 공부라도 하려고 하면 만류했을텐데.

 

 

 

 

 

 

 

 

 

 

 

그야말로 변명의 신이 아닐 수가 없다. 이렇게나 완벽한 변명을 대가면서 해야 하는 일들로부터 눈을 돌리다니. 너는 참

변명을 잘 하는 친구로구나.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아직 살아있는 한조각의 양심은 알고 있다. 비록 등껍질이 벗겨져서

몸을 뉘이는 것조차 매우 버거운 상황이다 하더라도 사실 혀 꽉 깨물면 대충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고 숨을 들이마실 때

목젖이 따끔거려도 눈에 힘 꽉 주면 어떻게든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결국 그냥 누워서 영상이나 보다가 잠들기만 반복했던 원인은 아픈 육체가 아니라 의지박약이었다. 만약에 지금의 내가

10대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그야 당연히 학교 조퇴하고 집에 와서 부모의 걱정이 어린 시선과 맛있는 간호 음식을 받아

먹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했겠지. 영상 편집이나 작문 같은. 하지만 이제는 내 안에 그런 열정의 불씨 같은 게 다 죽어서

싸늘한 잿더미만 남아있을 뿐인 모양이다. 훗날에는 이제 나이를 들고 변명거리로도 삼겠구만. 나이가 들어 작문하지도

못하겠다는 등, 나이가 들어서 그림이나 영상 작업을 할 수 없겠다는 등.

그럴싸하게 맛있는 변명거리 하나만큼은 요령있게 잘 찾아내는 것을 보니 변명의 신이라도 될 심산인 모양이다.